[에세이] 포항 세 조각

국수 가게와 베이스 치는 언니, 그리고 청하4 버스
글 입력 2022.03.1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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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무척이나 경계하는 편이다. 동시에 친근한 사람 옆에서는 한없이 마음을 놓는다. 그래서 혼자 떠나는 여행이 더 걱정이었다. 마음 기댈만한 사람 하나 없이, 경계할 사람투성이인 새로운 동네로 떠나다니. 너무 무모한 걸까. 전날까지도 걱정이었다.


내 몸만큼 큰 가방을 메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의 명성답게 다소 행색이 수상한 이들이 많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그들을 피하려고 열차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 넓은 곳을 줄곧 서성였다. 아휴, 시작부터 쉽지 않네. KTX에 털썩 앉아 부피가 큰 겉옷을 벗으며 생각했다.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 피로한 기분이었다.


포항은 뚜벅이가 여행하기 어려운 도시다. 주로 바닷가에 있는 유명 관광지에 가려면 버스로 한 시간은 기본이다.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20여 분을 기다렸다. 이동에 이동을 거듭하다가 거의 오후 한 시가 다 되어서야 첫 끼를 먹을 식당에 도착했다.

 

 

 

국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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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간 음식점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빠르게 미련을 버리고 맞은 편에 있는 국수 가게로 향했다. 국물이 맑은 면 요리는 어딜 가든 무난하게 먹기 좋다. 안녕하세요! 혼자 온 손님을 꺼릴까 싶어 일부러 발랄하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따뜻한 환영의 목소리였다.


혼자 앉을 만한 작은 식탁을 골라 앉았다. 잔치국수 소자 하나랑 계란 김밥 주세요. 감사합니다. 말끝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붙였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고 했다. 딱히 뭐가 감사한 상황이 아니어도, 혼자일 때면 그 속담을 자꾸만 방패처럼 사용하게 됐다.


국수를 먹으며 손님들을 구경했다. 어떤 음식을 더 주문해야 할지 고민하는 엄마와 딸 둘의 가족 손님을 보며 나도 우리 가족을 생각했다. 호박죽 하나를 나눠 드시는 두 할머니 손님을 보면서는 친구 생각을 했다. 난 혼자라서 호박죽 못 시켰는데. 달콤한 죽은 몇 입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 식탁을 힐금거렸다.


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앉았더니 제법 재미가 있었다. 문간에서 급히 김밥 몇 줄을 포장해 가는 손님부터, 찾는 메뉴가 없다는 말에 돌아서 나가는 이도 있었다. 서로 언니라고 칭하는 가게 주인들의 대화에 자꾸만 귀가 향했다. 밥을 느리게 소화하며 여유롭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공간에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심을 담아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돌아온 감사의 말이 스르륵 문을 닫는 내 뒤를 따라왔다.

 

 

 

베이스 치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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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포항 여행은 온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저녁 즈음 포항에 사는 언니와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가 지기 직전 바닷가에서 재회했다. 서울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만나니 새삼 신기하고 좋았다. 여기서 만나니까 되게 이상하네. 그런 비슷한 말을 거듭했다.


언니는 지금까지 어떤 여행을 했냐고 물었다. 여유로운 여행을 예상했는데,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또 바삐 돌아 다녀버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 여행 동안 읽으려고 가져간 책 한 권을 채 다 읽지 못했다.


그리고 외로워질 차에 언니를 만나 다행이라고 말했다. 종일 혼자 포항을 돌아다니는 동안 혼잣말이 늘었다. SNS에 끊임없이 사진을 올리고 다녔지만, 대화 욕구는 충족되지 않았다. 그래서 물꼬가 트이자마자 말을 늘여놓으며 언니를 귀찮게 했다. 종알종알 조개구이를 먹고 소주를 마셨다.


배를 채우고 나오니 해가 져 있었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 다녔을 거야. 시내임에도 온통 깜깜해진 길을 보며 생각했다. 어둠이 깔린 조용한 거리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어디서 자라난 걸까.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럴 때면 마음이 갑갑했다. 훌쩍 여행을 떠나서도 나는 고작 그런 걸 두려워해야 하는구나.


다행히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길에 있는 모든 걸 구경했다. 멀리 주황빛의 조명이 켜져 있기에 노선을 틀어 그곳을 구경했다. 계단을 오르니 야경이 멋졌다. 우리는 주황빛 전망대에서 ‘우와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즐겁다는 말과 춥다는 말을 번갈아 하다가 자리를 잡았다. 몸을 녹이며 차가운 커피를 마셨다. 여러 재미난 대화를 주고받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우리 조금 큰 것 같아. 반년여 만에 만난 탓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각자의 세상이 쑥 커져 버린 느낌이었다. 아쉬워. 난 영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건 아니다. 그저 멈추지 않는 시간이 야속했다. 우리가 지겹도록 시간을 보낸 지하 동아리방이 떠올랐다.


다음 날은 긴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 안녕, 안녕. 인사를 할 때 꼭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영영 못 볼 사이도 아닌데 왜 타지에서의 이별은 이렇게나 애틋한 걸까.

 

 

 

청하4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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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새로운 바다가 보고 싶었다. 추천받은 이가리 닻 전망대를 목적지로 정했다. 그곳에 가는 길에 작고 예쁜 해변을 발견했다. 전망대까지 가지 않고 그곳에 한참 앉아 물 멍을 했다. 밀려오는 파도의 모양과 소리가 전부 달랐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간이 재빨리 흘렀다. 느긋하게 움직이려면 이제 일어서야 했다. 마침 청하4 버스가 오고 있었다. 배차 간격이 40분인 버스인데 운이 좋았다.


안녕하세요. 포항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했다. 여행에서 만난 이들이 모두 친절해 긴장이 많이 풀어졌다.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여행이었다. 바다 위로 아른아른 지는 노을을 보며 생각했다. 관광지를 도는 버스답게 해안가를 쭉 타고 움직이는 경로였다. 맨 뒷자리였지만, 버스가 작아 덜컹거림이 심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낭만을 즐기고 싶어 헤드셋을 썼다. 평소 귀갓길에 자주 듣던 노래를 골라 들었다.


환승역에 가까워졌다. 음악 소리를 죽이고 핸드폰과 정거장 안내 화면을 번갈아 확인했다. 내 앞에 앉아있던 두 사람이 먼저 하차 벨을 눌렀다.


“여기서 환승하려고요?”

“네-”

“여기서는 버스 잡기 힘들 텐데. 흥해에서 갈아타요.”

“거기는 어떻게 가요?”

“내가 내려줄게요.”


흥해라는 낯선 단어를 황급히 검색했다. 흥해에는 버스 환승 센터가 있는 모양이었다. 앞사람들과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기사님은 세 정거장 정도를 더 가서 문을 열어주셨다. 감사합니다! 곧장 갈아타야 할 버스가 코앞이라 감사한 마음을 길게 전하지 못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부랴부랴 길을 건너 바로 버스를 탔다.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계획했던 곳에서 환승을 시도했다면 아마 2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을 거다. 까딱 KTX를 놓칠 수도 있었다. 다행이다. 이름 모를 청하4 버스 기사님의 미담을 친구들에게 알리며 포항 KTX역으로 향했다.


여행의 시작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의 선함을 느낀 지 너무 오래라 경계태세를 세우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포항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다정했다. 그게 나의 운인지, 포항의 평범함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느낀 따스함은 내게 어떤 용기가 되었다. 세 개의 조각으로 남은 포항의 기억을 잘 간직해야지. 그리고 머지않은 때에 다시 한번 두려운 선택지를 골라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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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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