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봄은 다시 찾아온다 :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

글 입력 2022.03.0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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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첫 공연이 무사히 마무리된 뮤지컬 <하데스타운>.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 온다고 했을 때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캐스팅이 뜨고서 더욱 기대하게 된 작품이다.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는 내용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 처음이었다. 마침 교양 강의에서 찰스 디킨스의 Hard Times를 공부하고 있던 터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이라는 얘기에 궁금증이 생겼다. 거기에 말 그대로 믿고 보는 초호화 캐스팅이 공개되어 사람들도 환호했을 정도였다. 나는 총 두 번 관람하였는데, 첫 번째는 9월 18일에, 두 번째는 2월 20일에 관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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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감상평에 줄거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신화 속 이야기가 현대로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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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두가 흔히 알고 있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이기에 이미 거의 줄거리를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이때 세부적인 배경과 디테일을 어떻게 각색하였는지가 작품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신화의 원형적이고 판타지적인 내용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된다. 예를 들어 신들은 똑같이 전지전능한 권능을 가진 존재이고, 페르세포네가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계절이 바뀌는 것,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 심지어 자연까지 감동하게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배경은 상당히 현대적인데, 하데스가 있는 지옥, `하데스타운`은 일꾼들이 일하는 상당히 자본주의적이고 산업화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인간들의 세상은 마치 식당처럼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는 공간이 된다. 의상도 우리가 입는 옷처럼 익숙한 차림이다.


등장인물의 변화도 주의 깊게 지켜볼 만하다. 오르페우스는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는 순수한 음악가, 에우리디케는 현실적인 가치관을 따르고 있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여인, 하데스는 일꾼들을 통해 부를 축적한 하데스타운의 주인, 페르세포네는 그러한 하데스타운의 모습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술로 마음을 달래는 여인이 된다. 특히 신화에서는 평면적으로 보였던 에우리디케가 상당히 적극적이고 생활력이 강한 이미지로, 순수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여신으로 나타났던 페르세포네가 장난기 넘치고 술에 취해 몽롱한 모습으로 변한 것이 인상 깊었다.

 

 

 

2. ‘하데스타운’이 이야기하는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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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굉장히 잘 짚은 극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신화에서는 독사에 물려 죽은 에우리디케가 현대적으로는 어떻게 해석되는지, 즉 '독사'는 무엇으로 대변될지가 궁금했는데, 결국 에우리디케가 하데스타운으로 가게 되는 궁극적 요인은 '가난'이 된다. 다른 일꾼들도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안정적으로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하데스타운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하데스타운에서는 반복적으로 같은 일을 하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잃게 되는데, 이 점이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비판점, 인간의 기계화를 명확히 집어낸다.


하데스는 자유를 위해 벽을 쌓는다는 모순적인 선전을 계속 주입한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를 포함한 일꾼들은 멍하니 이를 따라 한다. 물론 이들이 자아를 되찾고 하데스에게 저항하려고 해도 쉽게 저항할 수 없다. 결국 그들은 가난을 피해 이곳으로 왔고, 계약서에 서명하며 하데스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그저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물건 취급을 받게 된다. 하데스는 그들의 가난을 이용하여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부를 더욱 쌓아가고 도시를 발전시키지만, 일꾼들은 여전히 가난한 약자에 위치한다. 이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결국 자본주의 현상의 일종이다.

 

 


3. 사랑 안에서 생겨나는 확신과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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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첫 번째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두 번째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이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는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통해 전개되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작품에 표면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다. 두 이야기의 첫 번째 공통점은 바로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고, 두 번째 공통점은 그 안에서 의심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통해 전개되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지상으로 올라온 하데스가 우연히 페르세포네를 보고 사랑에 빠졌으며, 그녀를 지하로 데리고 온 것, 그리고 계절의 유지를 위해 페르세포네는 1년에 한 번씩 지상에 나와야 한다는 것. 그러나 <하데스타운>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 그 이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가 다시 지하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하데스는 직접 페르세포네를 데리러 오며 봄과 여름은 점점 짧아지고, 혹독한 겨울은 더 길어진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관객들이 <하데스타운>을 보면서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아마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결말일 것이다. 과연 오르페우스는 <하데스타운>에서 뒤를 돌아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처럼 뒤를 돌아보고 만다. 안타까운 것은 처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만났을 때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가난한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확신이 있지만, 이야기의 말미에는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랑에 대해 확신을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오히려 에우리디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거라는 의심이 생겨나며 처지가 반대된다는 점이다.

 

결국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며 에우리디케가 다시 하데스타운으로 돌아가는 결말은 우리에게 탄식을 자아내게 하지만, 앞서 이어진 선례를 보면 신들조차도 그 의심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보이는 것에 확신을 가지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확신을 가지는 것이 훨씬 어려운 법.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만 그 안에서 의심이 피어나며 서로의 생각이 어긋나고 그로 하여금 비극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신들의 이야기와 인간들의 이야기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4. 다시 반복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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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결국 신화처럼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하데스타운으로 들어가지만, 그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기에 두 번째로 관람했을 때 이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이야기를 처음 보는 게 아닌, 다시 시작되는 시점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극은 두 번째 관람부터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관람은 그 극을 바라보는 내 감정의 깊이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알기 때문에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첫 만남은 단순한 첫 만남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수백 번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서 돌고 돌아왔지만, 다시 운명대로 헤어질 그들의 사랑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사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서로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내용이 계속 등장한다. 우리는 이들이 얼마나 이 이야기를 되풀이했는지 알기에 이러한 대사도 쉽게 넘겨짚을 수 없게 되었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도 서로 사랑했지만 의심이 생겨나며 갈등을 빚었지만, 헤르메스의 ‘오랜 친구’였던 칼리오페에 이어 그의 아들인 오르페우스가 되풀이한 둘의 사랑 노래를 통해 둘은 잊고 있었던 확신을 되찾으며 서로를 순수하게 사랑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또한 <하데스타운>을 통해 계속 되풀이되며 노래하고 있으니, 언젠가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에우리디케와 함께 나갈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5. 다시 돌아오는 봄을 기다리며



비록 지방에서도 공연할 것이지만, 서울 공연을 기준으로 이 작품은 공연 시기를 기가 막히게 잡은 것 같다. 가을에 시작해서 봄이 올 때쯤 끝이 나다니. 마치 페르세포네가 하데스타운으로 돌아가 우리가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봄이 돌아와 되풀이되는 <하데스타운>의 이야기를 이제 우리에게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다음에는 어떤 결말이 될지, 어떤 결말을 원하는지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또 어떨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익숙해진 이 시기가 이번에는 끝날지를. 우리도 늘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달라지지 않을까,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봄은 다시 찾아오고, <하데스타운>의 마지막에 다시 돌아온 에우리디케가 이미 오르페우스에게 받았던 꽃을 확인하듯, 우리에게도 무언가가 달라질 것이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다.

 

 

[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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