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분 좋게 마침표 찍기 위해

글 입력 2022.01.1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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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친구가 말했다. "너는 대단한 사람을 보면 좋아하잖아." 놀랐다. 맞는 말이다. 한 번도 정리된 생각으로 떠올리지 못했지만, 나는 대단한 사람을 보면 좋아하고, 알고 싶고, 닮고 싶어 한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이유도 그런 성질의 연장선 위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글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뛰어난 언어 능력에 반해서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된 건지, 사람이 좋아서 글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만족했던 건지 모르겠다. 좋아함의 인과관계를 분명히 파악해 본 적은 없다. 중요한 건 결국 난 그들의 잘난 부분을 닮고 싶어서 완성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단어 선택, 표현 방식, 문투를 일부 흡수해서 비슷하지만 나의 글로 쓰려 한다.


시간을 내어 언제나 겨우 글을 완성했다. 하지만 한 편의 글을 쓰고 플랫폼에 기고하기 시작한 후로 만족스럽게 끝맺은 경우는 거의 없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늘 힘들게 했다. 나도 처음 글 쓰게 한 사람들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이 내가 지금껏 글을 쓰게 한 힘이 되었지만, 반대로 내가 마침표를 찍는 걸 어렵게 만든 마음이기에 자주 미웠다.


분명한 답을 찾고 싶었다. '좋은 글'은 어떤 것이며, 내 글이 안정적으로 그곳에 도달하는 경지에 이르려면 무엇을 보충해야 하는지 알고자 했다. 나보다 먼저 글 쓰던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작법서를 찾아보아도 마땅히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내가 소비하던 '좋아하는' 글들을 떠올렸다. 글을 쓰기 전, 온전히 '소비자'의 마음으로 읽었던 글들을 떠올렸다.


나는 어떤 글을 읽는가, 다시 찾게 되는가, 마음에 울림을 주는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가. 사고의 전환으로 난 '좋은 글'에 대한 주관적인 갈피를 잡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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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설명서



'좋은 글'은 글쓴이 자기 생각을 솔직한 언어를 빌려 분명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작가가 솔직할수록 독자에게 이야기가 진정성 있게 전달된다. 이는 감정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작가가 글을 쓸 때 느낀 감정을 독자가 느끼고 공감하게 만든다.


나에게 좋아함과 글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이때 '왜 글인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사람을 만날 때 멀리서도 보이는 의상, 행동, 자세처럼 외적 요소에 끌릴 수 있고, 대화를 나눌 때 보이는 표정과 눈빛 그리고 목소리도 상대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요소이다. 이런 것들로 표면적인 파악이 이루어졌다면 다음이 중요하다. 대화의 내용이다.


이야기 소재 선정과 함께 드러나는 감정들도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만, 흘러 지나가 버리는 말과 달리 글은 쓰인 자리에 머문다. 사람들이 글쓰기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관만 잘하면 영원히 그곳에 있을 언어이기에 신중을 기해 작성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 훗날 다시 그 사람 혹은 문장이 생각났을 때도 찾아볼 수 있는 불멸의 기록. 누군가에게 받는 손 편지가 특별하고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글은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잘 쓰인 글은 한 사람을 상세히 안내하는 설명서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선택이 글자 하나하나 담기고, 연달은 선택들이 모여서 단어를, 구를, 문장을 이룬다. 나열된 단어들은 글을 쓰는 주체가 어떤 표현에 익숙한 사람인지 보여준다. 예를 들면 어떤 일에 대해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지, 상황을 기술하는지, 본인을 얼마나 솔직하게 표현하는지 등을 통해 외적으로는 알 수 없던 내면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인터뷰가 아닌 경우라면 글은 모니터 앞에서 온전히 자신에 집중해서 쓰게 된다. 나는 이를 '나에게 가장 솔직한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글을 쓰면서 좋은 문장, 아쉬운 문장을 판단하는 건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매 순간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글이 흘러가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공개되기 전까지는 나와의 내밀한 대화로만 나아가는 글은 작가를 있는 그대로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탄생한다.

 

 



예술의 설계도



좋은 글은 어렵지 않게 글의 상황이 상상되는 글이다. 읽으면서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의 모습이 떠오르거나 이야기가 진행되는 배경이 그려지는 것을 말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비문학이든 그곳에는 누군가 존재하고 독자가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유희를 즐기는 대중적인 방식에 영상 시청이 있다. 보고 싶은 자료를 찾아 플레이 버튼 한 번만 누르면 감각을 즐겁게 하는 콘텐츠가 화면에서 흘러나온다. 가만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행되는 내용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쉽다.


이에 반해 글을 읽는 건 연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시선이 닿는 곳에 글이 있어야 한다. 문장을 따라 글자를 받아들이고 내용을 머리로 정리하며 이해해야 한다. 때가 되면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 중 하나의 순서라도 어그러진다면 내용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어렵다.


만약 영상과 글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누구나 간편한 영상을 소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두 예술이 지닌 가치가 동등하다면 말이다. 재밌는 사실은 영상 없이 글은 존재할 수 있어도, 글 없이 영상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은 예술의 설계도 역할을 수행한다.


단 예외를 인정한다. 짜인 상황을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담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경우는, 글 없이 홀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 외는 글로 화면 밖의 사람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된다. 글이 창작의 기초적인 매체이고, 큰 자본 없이도 메시지의 핵심을 다룰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작성하고 수정하고 이해하기 좋다는 점도 글이 1차 창작물이 될 가능성을 만든다.


어떤 글은 읽히면서 내용 진행이 선명히 그려지지만, 어떤 글은 건조하게 글자만 날아다닌다. 문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장면을 완성하면 영상으로 구현된 모습을 본 것처럼 글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일부 책을 원작으로 한 영상 작품들이 혹평을 받는 원인 중 하나는 이미 글을 통해 장면을 그린 독자들의 상상력에 영상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작성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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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세상에 좋은 글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나의 글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글을 볼수록, 나의 글을 쓸수록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세상을 살아가며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20대를 살면서 그나마 꾸준히 이어온 글인데 이마저도 힘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새로운 강점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고민한다.


나와 글쓰기의 처음은 무엇이었을까. 제대로 된 글은 아니었지만, 내가 '글'이라는 세상과의 소통 방식에 처음 친해진 건 중학생 때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답답함을, 노트에 끄적이는 짧은 낙서들로 풀기 시작했다. 주로 마음 깊이 담아두었던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문장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글이 되지는 않았지만, 모자이크처럼 모인 감정 조각들은 당시의 나를 파악하는 정보가 되었다.


좋은 글이 뭔지 혼자 사고해 보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반쯤 알 것 같다가도 이내 힘이 빠진다. 마지막 기운을 내어 '기회는 위기 속에서 찾아옴'을 믿으며 자발적 강제성을 부여하며 글을 쓰다가 해가 바뀌었다. 나를 소개하는 표현 중 하나가 '에디터'인데 몇몇 사람은 나를 '작가'라고도 부른다. 무슨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1년 넘게 쓰는 걸 보니 뭔가 대단한 작업을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책 몇 권 썼다고 작가가 아니오. 작가는 문학을 가르친다고 작가가 아니오. 작가란 지금, 오늘 밤, 지금 이 순간 쓸 수 있을 때만 작가요.' 찰스 부코스키가 <콜로라도 노스 리뷰>의 편집자에게 보낸 글이다. '작가'라는 호칭에 민망할 때마다 찾아본다. 언젠가 나도 글을 멈추고 작가'였던'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해도 되지 않을지 인용으로 당위성을 부여한다.


어쩌면 내가 쓰는 글이 좋은 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대단한 사람’을 닮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나의 글이, 좋은 글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한 번쯤 다시 찾아보고 싶은 글이 될 때까지 계속 써볼 생각이다. 기술을 갈고닦는 것이다. 그렇게 매번 어제보다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 쓰다 보면 언젠가 내가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마주하게 되지는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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