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후를 억제해야 우리가 산다 - 기후의 힘 [도서]

인류를 진화시키고 문명을 멸망시킨 기후 변화의 힘
글 입력 2021.11.2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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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힘_편집2.jpg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인종으로서의 알권리를 얻고자 하시는 분

- 인류의 진화과정이 대부분 서양 중심이었던 게 아쉬우셨던 분

- 인간 진화에 기후 변화가 얼만큼이나 영향을 끼쳤을까 궁금하신 분

- 특히 ‘빙하기’에 관심 있는 분들

- 학자의 객관적이고 집요한 사고방식을 엿보고 싶으신 분들도 대환영입니다!

 

 

박정재 교수의 『기후의 힘』은 지구 태초의 생명과 소멸이 어떻게 순환되었는지 기후 변화를 근거로 설명해낸다. 이는 260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빙하기)에서부터 시작되며 연구범위는 말 그대로 ‘전 지구적’이다. 비슷한 여타 서적들과 차별점이 있다면 선사시대부터 거슬러온 연구가 한반도에까지 정착한다는 것. 바빌론, 폼페이에서나 발견되던 환경 이상 징후가 우리나라 제주도, 광양, 울산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사실 『기후의 힘』을 해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기후·지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에겐 꽤 어려운 수준의 내용이다. 각 논제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도표와 저명한 학자들이 쓴 논문 인용으로 이루어진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며 책을 소개하는 것보단 그냥 책 자체를 읽는 것이 (당연하게도) 훨씬 전문적이다.


다만 독자로서 흥미로운 점이라면 오랜 연구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 ‘기후 변화와 미래’, 그리고 저자가 가진 ‘학자로서의 태도’다. 본 리뷰에선 책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간단한 축약을 곁들인 뒤, 위 특징들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밝히려 한다.

 

 

 

얼었다 녹았다, 덕분에 똑똑해지는 인간들


 

약 280만 년 전, 호모의 첫 단계 호모 하비리스(Homo habilis)가 등장한 후로 이들은 여러 번의 빙기와 간빙기를 겪는다.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흔히 말하는 빙하시대가 되었다가 다시 날이 풀리길 반복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다 따뜻한 기후를 찾아 떠나기 위해 직립 보행을 시작했고, 이로써 손과 팔의 자유를 얻는다. 도구로 가공된 음식물을 섭취하며 소화가 촉진됐고, 남은 여분의 에너지로 두뇌를 발달시켰다. 손짓을 이용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며 타인과의 협동,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수준이 높아졌다. 왜소하고 연약한 호모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육체의 힘이 아니라 생각의 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후 가장 극한이었던 최종빙기 최성기 때 빙하의 변화에 대지도 변한다. 계곡의 모양이 변하거나 대륙이 뭍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다시 따뜻해진 지구에선 선사인들의 농경과 정착이 시작된다. 기후에 적응한 인간은 곧 동물의 멸종을 야기한다. 안 그래도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겪으며 약해져 있었던 거대 동물들은 인간과의 자리싸움에서 밀려난다. 공격적인 맹수들도 협동으로 무장한 인간들을 이길 순 없었다. 이후 인간들은 비옥한 땅에서 성공적인 농사를 진행하며 다양한 품종의 말과 쌀이 전 지역으로 퍼진다.


다시금 대홍수와 함께 강추위가 찾아오지만 인간은 다시금 중심을 잡는다. 물론 태양의 흑점이 변했다는 이유로 해수면 온도가 불규칙해지거나 가뭄 등의 문제가 찾아온다. 다시금 중세 온난기가 시작하고 끝을 내며 이 과정에서 바이킹의 소멸, 유럽의 밀농사 기근이 영향을 받는다.

 

 

 

지구 온난화를 믿지 않을지언정 과거는 신뢰하세요


 

지구 온난화가 허구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기후 변화 음모론’. 예를 들면 기후게이트(climategate)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 기후연구소(CRU) 연구자들의 사적 이메일이 해킹 당했는데 기존 기후변화 데이터가 조작되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던 일이다. 기후과학계에서 높은 신뢰를 자랑하는 기관이 뒤에선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는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회의론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과학자의 내부 윤리와 정치 문제로까지 번졌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인간 때문’이라는 주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증가가 주원인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이 주장이 과학적 정당성을 획득하자 전 세계 국가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다. 생각보다 역사가 짧은 지구 온난화 담론, 우리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할까?

 

 
“기후가 인간 사회의 진행 방향과 성패를 좌우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265p
 

 

저자는 지구 온난화가 “자연적인 기후 변화에 화석 연료 남용과 같은 인위적 요인이 겹쳐서 나타나는 기후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이때 중요한 건 ‘자연적인 기후 변화’다. 수백만 년 동안 반복됐던 해빙과 동결, 그로 인한 동식물의 진화. 인간이 간섭할 수 없는 필연적인 기후 변화마저도 그렇게 큰 영향을 줬었는데 인위적인 가속화까지 더해지면 얼마나 큰 파장이 일어날 거냐는 거다. 실제로 4200년 전 발생한 가뭄은 이집트 고왕국, 아카드 제국, 인더스 계곡 문명 등을 무너뜨렸다. 불가사의한 멸망으로 손꼽히는 마야 문명 또한 내부 분란과 환경 문제가 동시에 작용하며 쇠퇴했다. 막강한 힘과 높은 수준을 자랑하던 문명이 한순간에 몰살될 수도 있는 게 기후의 힘이라는 걸 책은 앞부분에서 내리 설명했다.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 미래의 기후와 관련된 정보들은 대부분 근거가 부족하고 수많은 가정이 포함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연구자들은 연구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가용한 자료가 불확실하고 불충분하더라도 사회에 반향을 불러올 수 있는 결론을 내고 싶어 한다. 또 설령 연구자가 결과를 단정 짓지 않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해도 언론은 이 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시나리오를 골라 대중에게 전할 때가 많다.” 301p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과장하여 강조하는 사람들은 과학 기술을 통한 인간의 문제 해결 능력을 무시하고 기후 변화의 불가항력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기후 변화는 허구’라는 말로 선동하는 사람들은 회의적인 생각에 휩싸여 자기주장에 맞는 자료만 수집하는 확증편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302p

 


지구 온난화는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맞다. 하지만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시나리오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거나 극도로 흥분시키고 있다. 이때 필요한 건 ‘비판적 사고’다. 저자는 직립 보행으로 뇌가 발달하며 빙하기를 이겨냈던 선사인들처럼 고도로 발달한 현재의 과학 기술이 분명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암시한다. 현재는 그 중간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해볼 가치가 있다.

 

 

 

현재엔 희망이 있을까?


 

아쉽게도 없다.

 

 
“2015년 파리 협정에서 의결한 기온 목표치(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유지)는 선진국 몇 나라가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 그리고 후진국까지 모든 나라의 협조가 필요한 지난한 작업이 될 터이므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06p
 


전 지구적 문제에 전 지구인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다만 최근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위에서 언급된 2015년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이하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최근 영국 글래스코에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렸다. 10월 31일부터 열린 총회에서 G20은 탄소중립 합의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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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와대)

 

 

주요 20개국 정상들은 “기온 상승폭을 섭씨 1.5도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공동 성명문은 채택했지만 탄소중립 실현 시기를 확언하진 못했다. 미국과 유럽의 탄소중립은 2050년,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2060년, 인도는 2070년을 목표치로 설정하며 각국이 다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 1위인 중국과 4위인 러시아 정상들이 불참하며 미온적 태도를 보여준 게 관건이었다. 이번 COP26은 ‘실망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효과가 불분명한 선제적 대책 마련에 아까운 자원만 낭비한다는 지적이 항상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는 점점 피할 수 없는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는 지구 온난화와 후폭풍이 조금이라도 우려된다면 적극적으로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 없이 넘어갔다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307p
 


전 인류의 적극적 도모, 조금 어리석고 무모하고 낭비에 가깝다 할지라도 무조건 준비되어야 할 선제적 대책. 저자가 주장한 해결책(희망편)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현실에 우린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내 말을 믿지 않아도 됩니다


 

 
“과거를 다루는 글을 읽을 때는 항상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고환경·고고학 연구자들은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기 위해 가용한 과학적 방법을 총동원해 다양한 자료를 확보한다. …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한 책을 쓰기 위해 너무 쉽게 환경 결정론적인 인과관계에 빠져드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려 한다. … 책의 내용을 믿고 안 믿고는 독자의 몫이다.” 310p
 


책을 다 읽었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저자의 태도였다. 그는 수없이 많은 데이터와 근거를 제공하고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책 본문에는 비전공자인(사실 조금 멍청한) 내가 베껴쓸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과학적 이론들이 담겨있다. 이는 모두 기후 변화의 역사를 주장하는데 쓰였다. 저자는 하나의 의견에도 여러 개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단일 연구만으로 밝혀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 관점과 기준을 달리한 타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기에 이것이 가설로서의 신뢰를 가진다는 것을 꼼꼼히 알려준다. 독자에게 요구했던 객관적, 이성적, 비판적 사고를 위해 저자 또한 객관적, 이성적, 비판적 자료를 제시하려 애쓴 것이다.


자신의 위대한 연구에 권위를 세우기보단 또 다른, 더 총명하고 새로운 가설이 언제든 나오길 기꺼이 기다리는 모습. 학문에 대한 학자의 애정을 느꼈던 부분이다.

 

책 뒷면의 추천사처럼 『기후의 힘』은 간단히 슥슥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다만 우리 지구가 얼마나 여러 번 얼어붙었다 녹기를 반복했는지, 기후 변화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문명이 멸망하고 태어났는지, 그 중 한반도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한 번에 읽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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