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오랜 상처 [사람]

내 유년시절과 현재
글 입력 2021.11.2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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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한탄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봐도 그만, 보지 않아도 그만인 글이다. 올해는 집에서 대학교 강의만 듣던 작년과 다르게 밖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서 인턴도 하고 전시장 아르바이트도 했다.


인턴을 했던 미술관에는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오셨는데, 그중에 할머니, 할아버지 관객도 있으셨다. 그분들은 내가 미술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전시장을 안내할 때마다 나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주시고 마지막에 가실 때는 고마웠다고 말씀하고 가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조금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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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선호사상. 외가고 친가고 할 것 없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사상이다. 외가는 그래도 보살핌도 받고 사랑도 조금 받았는데, 친가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늘 친가에 가면 구박받고 미움받고 쫓겨나기까지 했던 내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서지 못한 내 아빠, 그 옆에서 눈치 보고 신발 하나 제대로 벗지 못하고 언제든 쫓겨날 준비를 하고 있던 나와 언니.


내가 고3이 되고 언니가 유학을 가면서 자연스레 우리 집은 친가에 가지 않게 되었다. 고3 시절 모든 것이 싫었지만, 딱 한 가지 좋았던 점이 있다면 수험생이기 때문에 가족행사에 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 친가를 가는 장면은 차 안에서 싸우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 쫓겨나면서 들렸던 할아버지의 고함, 이 두 가지뿐이기 때문에 다 커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장례식장에서 한 생각은 ‘아, 너무 안 울면 이상해 보일 텐데, 어쩌지. 고개 숙이고 있자.’가 다였다. 그리고 남은 조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두 분께, 그리고 엄마와 아빠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크게 슬프지 않을 것 같다. 근데 요즘 밖에서 나이가 지극한 사람을 많이 만나고 그들을 대하는 내 모습과 그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례식장에서 많이 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우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이 우는 이유가 아닌, 억울함에 울 것 같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사람의 선함을 믿고, 누군가를 보면 그 사람의 장점부터 보는 사람이다. 조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채워주고자 노력하신 부모님 덕분에 사랑 많은 사람으로 자랐다. 조금만 나에게 잘해줘도 나는 고마워하고 훨씬 잘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만약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에게 조금의 사랑이라도 주셨다면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많이 좋아하고 그리워했을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렇게 죽어라 미워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밖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나이도 모를, 어디서 사는지도 모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예쁘다는 말을 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나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며칠 전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외할머니가 심각한 병에 걸리셨다는 내용의 짧은 연락이었다. 위로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평소의 나답지 않게 그냥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만 말하고 말았다. 이렇게 내 주위 애들이 나와 똑같은 여자임에도 조부모님께 사랑받는 모습은 어렸을 때부터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하지 못했고 여전히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자아랄 게 없던 아주 어릴 때부터 조부모님은 날 미워했고, 그때는 왜 미움받는지 몰랐다. 그저,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드니까 그게 슬펐다. 조금 자라서 초등학교 때 남아선호사상을 배우면서는 왜 내가 미움받는지 알게 됐다. 그때는 나를 미워하니까, 나도 미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에 가서는 그 당시 시대배경을 배웠고, 그 당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다들 그랬다고 생각하며 그분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끝나고 할머니 집에 간다고 신이 나거나 집에 할머니 오신다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며 모든 여자아이가 조부모님께 미움 받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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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by. 영서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금은 억울하다.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였는데, 그리고 그분들이 주신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돌아가셨을 때 눈물 한 방울 안 나면 엄마, 아빠한테 죄송스러워서 어쩌지 같은 걱정이 아닌, 내 친구들처럼 할머니, 할아버지 안부를 걱정할 수 있었을 사람이었다.


그냥 요즘 계속 그런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하고 고맙다는 애정 어린 눈빛을 받을 때마다, 그분들이 나에게 고맙다고 하실 때마다 나는 억울하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사랑받고 싶은 것 같다. 불가능한 것을 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다가가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먼저 다가갈 생각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이럴 것 같다. 앞으로도 친구들의 조부모님을 걱정하는 연락에 어떻게 반응해야 정상일지를 고민하는 날이 계속될 것이고 평생을 여자이기에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을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조금 슬픈 일이다.

 

 

[이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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