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 지옥 [드라마]

글 입력 2021.11.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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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을 위한 소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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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된 <지옥>이 공개 첫날 전 세계 드라마 순위 1위를 기록했다. 공개 하루 만에 1위로 오른 것은,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 사상 처음이다. 지난 53일간 1위를 지켰던 <오징어 게임>은 2위를 기록했다. 앞서 9월 1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된 또 다른 한국 드라마로 전 세계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국제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한국의 TV 및 영화산업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오는 11월 19일 공개된 <지옥>도 이러한 흐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필자는 그 유명한 <오징어 게임>도 아직 보지 않았을 정도로 한국 드라마를 부지런히 챙겨보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지옥>만은 예외적으로 공개일에 맞춰 챙겨본 이유가 있다면 첫째, <부산행>과 <사이비> <돼지의 왕>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고, 둘째, 2021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을 관람한 관객들의 평이 대체로 좋았기 때문이다. 총 6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 <지옥>은 앞서 10월에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화까지 관객들에게 미리 공개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지옥>을 보고 싶었던 세 번째 이유는 기존 넷플릭스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간 넷플릭스에서 자체 제작되었던 한국 드라마 <킹덤> <인간수업> <스위트홈> <오징어 게임>만 떠올려보더라도 그렇다. 넷플릭스는 분명 기존의 드라마와는 차별화되는 과감하고 독보적인 소재의 작품을 많이 다뤄왔다. 이와 더불어 6시간 내로 전 회차를 끝낼 수 있는 6부작 드라마라는 점이 재생 버튼을 누르게 하는 또 하나의 매력점으로 다가왔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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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에 걸쳐 관람을 끝마친 <지옥>은 예상만큼이나 파격적이고 새로운 작품이었다. 미지의 생명체가 인간 세계에 위협을 가하는 디스토피아로 서막을 열면서 <지옥>은 작품 내내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조명한다.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설정만을 제하면, <지옥>의 세계관은 압도적이다.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괴생명체의 등장이라는 비현실적 요소를 투입하여 사회가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더없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기에 <지옥>은 그 어떤 작품보다 날카롭게 현실을 간파한다.

 

인간의 자율성과 사회집단의 역할에 대해 자문하고, 진정한 정의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지옥>의 철학적 세계관은 종교단체와 깊숙이 연관된다. 때로는 종교인의 눈으로, 때로는 비종교인의 눈으로 바라본 <지옥>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필자로 말할 것 같으면, 종교인에 가까운 비종교인이요, 비종교인에 가까운 종교인이기도 하다. 신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양측의 시선을 견지하며 관람한 <지옥>은 보다 고차적이고 다각적인 측면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때로는 다수의 군중에 물 흐르듯 동조되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공의 곁에서 사건의 본질을 함께 파헤쳐보기도 하며 기존의 신념 체계를 완전히 뒤틀어버리는 <지옥>의 세계관에 어느덧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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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작품 세계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1부에서는 혼란의 시대가 도래한 직후의 시점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힘을 압도하는 괴생명체가 별안간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지옥에 끌고 가기 시작하자 이를 ‘신의 개입’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단체 ‘새진리회’가 급격히 부상한다. 새진리회의 1대 의장 정진수(유아인)는 사자의 출현과 더불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원리를 오래전부터 대중에게 설파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옥으로부터의 부름을 받는 이들은 앞서 몇 날 몇 시 지옥에 가게 되리라는 천사의 ‘고지’를 접하게 된다. - 의도된 것인지는 몰라도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천사의 모습은 기존의 원작 만화 이미지와도 상당히 거리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 고지를 받은 대상자는 정확히 해당 날짜와 시간에 지옥의 사자들로부터 처참히 공격받고,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새진리회는 이를 지옥에서의 ‘시연’이라고 부른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첫 번째 ‘시연’ 이후 고지를 받는 이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1부는 자신이 천사로부터 고지를 받았음을 새진리회에 알린 박정자(김신록) 씨의 이야기가 주축이 되어 전개된다.


새진리회의 원리에 따르면 고지를 받은 박정자 씨는 죄인이다. 새진리회의 추종 세력이자 종교적 급진 세력인 ‘화살촉’ 역시 고지를 받은 이들이 모두 죄인이라며 방송을 통해 지속해서 대중을 선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품을 보고 있던 필자도 의장이 제시하는 일련의 사건들과 종교단체의 일관된 주장, 그리고 ‘중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일종의 선입견을 통해 ‘박정자 씨가 정말로 범죄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일관성과 논리성, 확신을 가진 사회집단의 주장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작중에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이들이 반드시 죄를 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다시 말해 신의 의도나 천사의 ‘고지’에는 아무런 규칙성도 의도도 없다는 것. ‘고지’로부터 주어진 시간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몇 초 후, 몇 분 후, 며칠 후, 몇 달 후, 심지어는 몇 년 후까지 그 시간이 다양하게 예고된다. 말 그대로 고지를 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법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자연재해, 불치병과 같은 사회적 재난 내지는 천재지변의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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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생명체가 출현한 직후의 전반부를 지나 <지옥> 2부는 그로부터 일정 시간이 흐른 뒤의 시점을 묘사하고 있다. 그사이 막대한 세력을 구축해온 새진리회는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가 절대적인 선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경직된 사회 구조를 조성하고, 통제한다. 새진리회의 권한과 입지가 강화되면서 ‘고지를 받은 자’는 ‘죄를 지은 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 고지를 받는 즉시 고지 대상자와 가족은 ‘범죄자’ 프레임이 씌워지며 사회에서 즉각 차별당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고지는 사회에서 절대적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됨을 뜻했다. 이로써 <지옥>의 세계는 이중적인 공포에 휩싸인다. 훗날 사자들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표면적인 차원의 공포를 넘어 고지 대상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적인 시선과 냉대, 모멸이 집단적 광기의 공포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쩌면 전자의 공포보다도 후자의 경우가 지속성의 측면에서 사회를 더욱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는지도 모른다.


<지옥>은 초자연적 현상에 따른 집단행동의 맹점과, 그릇된 신념을 가진 집단이 불안정한 정국을 주도할 경우 이어지는 사회적 위기를 명석하게 뒤흔들고 꼬집는 작품이다. 새진리회는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단순한 원리와 사회의 기현상을 긴밀하게 연결 지어 –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 꾸준히 일관된 사례를 제시했기에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새진리회의 굳건한 믿음과 주장은 사건이 진행되면서 점차 어긋나고 뒤틀리기 시작한다. 일차적으로 천사가 고지를 내리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고지 대상자는 단지 몇 날 몇 시 지옥에 간다고만 통보받을 뿐이다. 고지 내용에는 당사자가 어떠한 죄목으로 지옥에 가는지 나열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명제는 손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사안이 된다. 앞서 새진리회에 자신이 고지받았음을 알린 박정자 씨가 진정 가족을 해친 범죄자였는지 혹은 그저 선량한 시민이었는지 알 방도가 없는 까닭이다.


<지옥>이 흥미로운 이유는, 실제 지옥의 형상을 그려내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지옥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표면적인 괴물을 의미하면서도 부패한 한국 정부와 미 제국주의 사이에서 탄생한 이데올로기적 괴물을 의미하듯 <지옥> 역시 마찬가지다. <지옥>은 사자들에 의한 지옥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릇된 신념이 사회를 지배할 경우 재현되는 지옥도의 모습을 철저하게 구사하고, 묘사한다. <지옥>은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작중에서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는 어떠한 인과관계나 규칙성 없이 무작위적으로 ‘고지’를 내리고, 사람들을 지옥에 데려간다. 그렇다면 신은 정의가 없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정의로움’이라는 단어 자체도 인간 스스로가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명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준이므로 신에게는 일절 적용되지 않는 사항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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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모습은 흡사 중세시대 벌어졌던 마녀사냥과 매우 유사한 결을 띤다. 마녀사냥은 15세기 이후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광신도적인 현상이다. 마녀사냥은 농촌 사회가 분열되고 개인들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렀을 때 으레 나타나곤 했다. 종교 전쟁, 30년 전쟁, 악화하는 경제 상황, 기근, 페스트와 가축들의 전염병이 당대 농촌 사회를 휩쓸었던 불행으로 대표된다. 사람들은 연속된 불행에 납득할 만한 설명을 찾아 헤맸고, 마침내 불순한 자들로 여겨지던 마법사와 마녀의 불길한 행동에서 그 빌미를 찾았다. 그리스도교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을 당시에는 신에 대한 반역이나 모독이 그 어떠한 범죄보다 중죄였다. <지옥>에서나 중세시대 당시 사람들은 기현상이 난무하는 사회의 비극적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 그럼으로써 기어이 삶의 의미를 붙들기 위해 – 그럴듯한 명분이나 구실을 찾아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진리회는 왜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원리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일까? 새진리회가 절대적인 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실상 새진리회는 공포로 사회를 조성하고 지배하기 위해 해당 논리를 계속해서 대중 앞에 제시한다. 죄를 지으면 고지를 받으리라는 공포감, 과거의 행적으로 인해 자신도 언제든지 고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나아가 그 어떤 공포감보다도 더욱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고지 이후의 삶. 새진리회는 사소한 악행이나 과실도 존재하지 않는 표백된 세상이라는 – 불가능하지만 가능해 보이는 –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고 정죄하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공포로 지배되는 세상은 그 허상만큼이나 매 순간 위태롭기 마련이다. 어쩌면 시연을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보다 고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구성원들, 그리고 고지를 받은 이후 사회로부터 평생 낙인찍힌 삶을 살아야 하는 고지 대상자와 가족에게는 지금 바로 이 현실 세계가 ‘지옥’ 그 자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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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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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하는곰
    •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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