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조각] 나에게서 멀어진 모든 것들이 행복하기를

사진첩 속 사진을 구경하듯이 멀어진 것에 대해 생각하는 법
글 입력 2021.07.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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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조각 네번째. 소원과 소원(疏遠/所願)


 

 

소원(所願) :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 또는 그런 일.

 

소원(疏遠) : 지내는 사이가 두텁지 아니하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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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남기는 행위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흘려버리기 쉬운 순간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시간의 지남에 따라 흐릿해지는 과거를 선명하게 복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보통 사진은 행복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록하기 때문에 사진을 보는 일은 대체로 과거의 행복했던 나와 하루들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구경하다가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것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인연이란 정적인 사진의 속성을 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움직이는 영상을 닮기보다는 그 순간에 멈춰있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다가오는 인연을 마주하는 방법은 그렇다. 내 곁의 소중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타인과는 좋았던 순간을 찍어 사진으로 남기듯 만나고 헤어졌다. 그렇게 지난 시간 동안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내가 사진으로 남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 흔적을 남기고 떠나갔다.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고, 우연히 마주칠 일도 없을 사람들이 문득 생각나는 날이 있다.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다소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번 떠오르기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 없다. 어느 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이고, 그 관계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 사뭇 다르다는 점은 언제나 신기하게 여겨진다(덧붙여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나 자신이 아닌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나를 스쳐 지나간 동물과 식물과 공간, 책과 영화 속 인물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에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게 느껴짐에도 말이다.

 

 

# 연락하지는 않지만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사람의 기억은 어디까지나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믿는 편이다. 특히 관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살면서 누구에게 큰소리 내본 적 없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매사 노력했다고 생각해도 나의 마음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건 상대방의 몫이다. 소원해진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보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혹은 둘 중 한 사람의 상처로 비롯된 일이었을지 도무지 혼자서는 알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하게 되는 이유는 누군가와 멀어지는 일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쉽게 상처받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쉽게 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이상하게도 어느 시절의 인연들은 계기를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부재를 상상할 수 없도록 곁에 머물러왔는데, 또 다른 어느 시절의 인연들은 가까워졌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멀어진 인연들, 이 인연들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 편인지.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닿을 일 없는 사람들이 기록된 사진 속에는 그들과 쌓았던 행복한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상대방과 어떤 일을 계기로 멀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덮을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그 사람은 끝내 내게는 그런 좋았던 기억을 준 사람으로만 남는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아까운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사진으로조차 안 남아있기에 그들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핸드폰이 없어서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 지난밤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어린 시절과는 멀리 떨어져 이제는 SNS를 통해 다가서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되었지만, 과거의 인연을 다시 현재로 불러올 용기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소설에서 화자가 과거의 일을 회상하듯이, 회상하며 직접적인 언어가 아니어도 마음으로나마 그 사람을 그리워하듯이 멀어진 인연들을 과거의 그때에 남겨두고 싶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도 반갑고 살갑게 다정한 안부를 묻고 싶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길가를 걸어가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보다는 다른 것들을 보고 곧잘 생각에 빠져있는 편이라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언제나 낯설다. 하지만 그런 나의 거리감을 훌쩍 허물고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의 표정과 언어는 이후 오랫동안 남는다. 물리적인 시간의 거리를 뛰어넘고 다가오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대체로 좋은 영향을 미쳐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그런 에너지로 반가운 상대를 향해 웃어주기보다는 그렇지 못하는 쪽에 가깝지만 적어도 다시 만난 우연을 놓치지 않고 과거의 좋았던 순간들을 잊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라도 전할 수 있으면 한다.

 

친해지고 싶었지만 결국엔 친해지지 못했던 사람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친해지고 싶었던 이유는 그 사람이 다정한 사람이라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 혹은 딱히 이유가 없기도 했지만 어쨌든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그 사람들이 결국 지금 내 곁에 없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다들 내게 좋은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끌어주었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로 인해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멀어진 인연들은 내게서 멀리 떨어진 위치와 시간에 고정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지게 된다.

 

 

# 반려식물 혹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나요

 

선택하기보다는 선택당하는 편을 좋아하는, 인연 앞에서는 수동적인 편이다. 그래서 나와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상대의 의사를 물어볼 수 없는 식물이나 동물과의 인연을 맺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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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식물 혹은 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용기와 책임감을 부러워한다. 반면 책임감 없이 함부로 그들의 생명을 위협에 빠뜨리는 사람들의 악한 면에는 같은 사람이지만 진저리가 나기도 한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많다. 밤에 간혹 길고양이들이 우는소리에 흠칫 놀라게 되는 동네이기도 하지만, 그런 소리로 항의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느릿한 주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네라 어린 시절부터 고양이와 우리 동네는 공존하고 있었다. 이 동네를 벗어나면 길 위의 고양이들은 사람에 의해 쉽게 다치고, 버려지고, 죽었다.

 

인간들이 한 해의 시작을 맞이하며 지인들에게 신년인사를 보내고 있을 때, 내리는 눈을 맞으며 길 한 편에 누워있던 고양이. 한여름의 도로 위 고양이,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인간이 타고 다니는 차의 바퀴에 치인 어린 고양이. 그리고 그 어린 고양이를 들어 올릴 때 느껴지던 희미한 무게감. 그 무게에 반비례하여 생기던 생명에 대한 마음의 무게를 생각하면 반려동식물과 함께 살 수 있을까, 라는 마음은 희미해졌다.

 

인간 중심적인 세상에서 인간이 아닌 동물들의 마음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본다. 과연 나 같은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해왔다. 그런 이유로 지금껏 내 곁을 지켜준 반려 동식물은 로드리게스, 단 하나다. 공부 외에는 별다른 일상이 없는 하루들 속에서 낙이 되어주었던 식물의 존재는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있다. '로드리게스' 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다소 무심하게 물을 주면서 챙겼던 이 아이는 일 년의 수험생 생활 동안 거의 자라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일 년 내내 신기해하면서도, 다정한 듯 무심한 주인의 곁을 죽지 않고 지켜주어서 그 아이를 마치 나만의 부적처럼 여겨왔다.

 

수능이 끝나고 거짓말처럼 시들기 시작해서 교실이 아닌 집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이후 오랜 시간을 살지 못하고 끝내 죽었다. 말이 없는 상대에게 끝내 단 한 번도 묻지 못했지만 크지도 못하고 어린 주인의 곁을 지켜준 로드리게스에게 품은 고마움은, 그 아이가 처음으로 새겨준 사람이 아닌 생명의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생명을 잃는 슬픔을 알려준 것 그 이상으로 남아있다.

 

이후로 아무 생명도 책임지지 못하고 살던 나는 최근에 애플민트 모종 하나를 집에 들였다. 반려동식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데, 아직 반려동물과 함께할 자신이 없는 난 작은 식물의 모종부터 다시 함께해보려 한다. 부디 사람이 아닌 모든 것들이 사람에 의해 다치고 죽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보다는 덜 무심하고 좋은 반려인이 되어주고 싶다.

 

과거와 비교해 함께 사는 동물을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고 표현하며 자연스럽게 사람이 아닌 생명의 존재를 더욱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반려견, 반려묘에 대한 상대적 표현으로 사람을 ‘반려자/반려인’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다양한 생명과 함께 공존하고 그들을 인식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 자기 인생의 롤모델이 있으신가요

 

롤 모델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인생은 온전히 내가 꾸려가고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타인의 삶을 좇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서였다. 일단 지금은 롤 모델은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인생을 꾸려 나가면서 좇고 싶은 인물을 참고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그 지점이 남들보다 조금은 일렀던 것 같다.

 

책 속의 인물들은 살아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만-작가가 독자에게 보여주는 만큼만-을 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더 쉽게 롤 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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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의 글에서 언급했지만, 중학생 때 『트와일라잇』의 벨라를 보면서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마법모자를 쓰게 된다면 기숙사 그리핀도르에 분류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츠메우인장의 나츠메처럼 따뜻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고, 백만엔걸 스즈코의 스즈코처럼 천만 원을 모아 훌쩍 떠나는 상상을 하기를 즐겼다. 작품과 인물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아도 누군가의 말들은 어딘가에 남아서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하게 해주었다.

 

나에게서 멀어진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한 것 같다. 어린 시절 모두가 책장을 함께 넘기며 읽던 책들은 이제 사람의 손을 타기보다는 서가의 한구석에서 먼지가 쌓이기를 기다리는 일에 더 익숙한 듯 보였다. 책과 글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삶을 찾던 나는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지 혹은 참고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지 궁금하다.

 

*

 

어린 시절에 읽거나 보았던 책과 영화 속 인물들의 한 부분들이 나의 일부를 이루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생각하는 사람들, 나를 떠나간 길 위의 동물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했던 식물까지. 오래된 인연이 아닌 것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어떠한 것도-설사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되고, 소원해졌다고 해서 놔버릴 것만은 아니다.

 

인연은 사진과 비슷하다고 다시금 느낀다. 그 사진을 찍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사진은 영원히 남는다. 소원해진 인연들이 행복해지길 감히 바라본다. 이것이 나를 스쳐 간 모든 것들에게 기만이 아니기를 소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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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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