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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우리 할머니에게 여행이란 낯선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10쪽)라고 이 글은 시작한다.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를 읽는 동안 이 문장을 계속 떠올렸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읽는 일이 마치 낯선 곳에서 내가 떠나온 곳과는 다른 물맛을 느끼는 경험과 같았기 때문이다.

 

 

 

언어 사이를 유랑하는 작가, 다와다 요코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와 일본어, 두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다. 그의 이름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들었기에 익숙했다. 『헌등사』 『태양제도』 등 그의 대표작을 아직 읽어보기 전, 단편을 가려 뽑은 이 책으로 다와다 요코의 세계에 들어가 보았다.

 

책 『영혼 없는 작가』는 『유럽이 시작하는 곳』, 『부적』,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 이 세 권에서 스물세 편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세 권 모두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쓰인 작품이기에 다와다 요코 초기작이 가진 결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다와다 요코가 어떻게 언어와 언어 사이를 건너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글을 써내려갔는지 알아가기에 좋은 출발점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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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곧 바라보는 세상이 된다


 

이 책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작가의 ‘언어적 정체성’이다. 일본어와 독일어,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쓰는 다와다 요코는 각각의 언어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 섬세하게 묘사한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는 날씨를 표현하는 단어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24절기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다. 반대로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나라는 그 극한의 날씨와 관련된 표현이 발달한다고 한다. 내가 우리나라에 계속 살고 한글이 아닌 다른 언어를 배우지 않는 한, 저 먼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계절 어휘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계절 어휘에서 뻗어 나온 표현들 역시 말이다.

 

이렇듯 한 언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절, 사고방식, 정체성, 문화 등 그 언어를 쓰는 사람과 주변 환경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다.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에 수록된 「빈 병」에는 일본어와 독일어의 지칭어 차이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일본어에서 ‘아타시’, ‘와타시’, ‘보쿠’는 각각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반면 독일어의 ‘이히(ich)’는 이런 성별 구분이 없다고 한다. 단편적으로 이 차이만 보더라도 언어마다 가진 사회적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나이의 소녀들은 대부분 자기를 “아타시”라고 불렀고 조금 더 성숙한 애들은 “와타시”라고 불렀다. 상류층 출신의 아이 하나는 자기를 “아타쿠시”라고 불렀는데, 이 말에서는 측백나무 향기가 났다. (...)

 

“나”를 의미하는 이 모든 말이 내가 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나를 소녀나 소년 그중 어느 하나라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 만약 내가―예를 들어 독일어 같은― 다른 언어를 말했다면 내 유년 시절은 얼마나 간단했을까. 나는 아주 간단하게 그냥 “이히(ich)”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히”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느낄 필요가 없었다.

 

_「빈 병」, 233쪽

 

 

여기에는 자신을 “보쿠”(일본어로 남자아이가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라고 부르는 여자아이가 나온다. 왜 그렇게 자신을 지칭하는지 묻자, 그 아이는 자신이 스스로 ‘여자애’라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드물었다고 답한다. 이 글에서 ‘나’(혹은 다와다 요코 본인) 역시 자신이 소녀 혹은 소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결국 ‘나’라는 표현 자체를 쓰지 않고,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기를 선택한다.

 

두 아이가 자신의 모어에서 모순을 느끼고 그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탈출하려는 시도가 흥미롭다. 두 아이의 모어가 일본어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은 주변 사람 모두가 쓰는 언어를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굳어진 언어는 그 언어 사용자의 사고방식이 된다. 

 

이처럼 다와다 요코는 두 개의 다른 언어를 비교하면서 언어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그리고 언어가 곧 자기 인식의 토대가 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 일본어를 배웠을 때,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이 다르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모국어에는 없는 표현이 주는 낯섦은 생각보다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언어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영화나 드라마 속 “아타시” “보쿠”라고 부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억양과 분위기는 나와 내 주변의 아이들이 "나"라고 발음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 스스로를 "아타시" "와타시" "아타쿠시"라고 부르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고를 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자랐을 것이다.


 

 

단어의 생김새를 곱씹다


 

평상시 아무렇지 않게 쓰던 일상어가 낯설어지는 경험, 내가 무심코 쓰는 언어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는 자각은 그 일상어와 나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처음으로 단어의 아름다움을 느꼈던 문장이 떠올랐다.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 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는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ㅜ-ㅍ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 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_『희랍어 시간』, 14쪽


 

이 문장을 읽고 단어의 형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후 ‘숲’이라는 단어를 보면 '그녀'가 ㅅ-ㅜ-ㅍ을 발음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간혹 절에서 석탑을 볼 때마다 탑의 상단-탑신-기단을 따라 글자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 글은 내가 주변 환경을 더 오래 응시하도록, 단어의 생김새를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 모국어인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와다 요코의 글은 낯선 언어에 대한 호기심과 그 언어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다.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는 그 언어의 철자부터 시작해 전혀 다른 생김새와 발음을 가진 단어를 배우는 기쁨이 있다. 일본어를 처음 봤을 때, 히라가나의 생김새가 유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각진 구석 없이 둥글게 이어지는 선이 마음에 들었다. 발음 역시 글자의 생김새처럼 혀 위에서 매끄럽게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일본어를 모어로 쓰던 다와다 요코는 처음 독일어를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단편 「엄마말에서 말엄마로」에는 ‘나’가 일본어로 인지하던 단어를 독일어 단어로 새로 인식했을 때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독일의 연필은 일본의 연필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연필을 일본어 “엔피쓰”가 아니라 독일어 “블라이슈티프트”라고 부른다. “블라이슈티프트”라는 단어는 내가 완전히 새로운 물건을 다룬다는 느낌을 주었다. (...)

 

이 감정은 이제까지 잘 알고 있던 사람을 결혼 후 새로운 성으로 불러야 하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곧 나는 엔피쓰가 아닌 블라이슈티프트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해졌다. 그때까지는 나와 연필의 관계가 언어로 맺어진 관계였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_「엄마말에서 말엄마로」, 42쪽

 

 

이와 같이 다와다 요코는 익숙하고 낯선 단어 사이를 끊임없이 걸어다니며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옮긴다. 이 책에는 단어의 생김새를 들여다본 경험이 곳곳에 나온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픈 욕망이 생긴다.


다와다 요코는 말한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외국어를 쓸 때는 단단히 들러붙어 있는 것을 떼어내는 도구를 갖게 된다.”(49쪽)


책을 덮으며, 다와다 요코의 글은 낯선 언어 속에서 단어와 사유를 분리해내어 그것을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한다고 느꼈다.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자신이 늘 쓰던 언어를 낯설게 바라보게 된다. 『영혼 없는 작가』를 읽는 내내 내가 여행지에서 낯선 물을 마시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다와다 요코의 언어 실험은 모국어라는 가장 익숙한 세계를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 되어, 우리가 말과 사유를 다시 시작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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