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리에서 피카소보다 먼저 인정받은 한국 화가가 있다? [미술/전시]

한국인 화가, 남관
글 입력 2021.06.2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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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연히 갤러리 현대에서 남관의 그림을 본 순간, 남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화가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나를 한순간에 사로잡았으며 그 당시 느꼈던 인상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자료들은 별로 남아 있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남관’이라는 화가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대부분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를 하면 김환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김환기 보다 먼저 파리에서 기반을 다지고 활동했던 사람이 남관이다. 그는 1960년대 파리에서 추상미술을, 김환기는 1970년대 뉴욕에서 추상미술을 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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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출생 : 1911. 11. 25 ~ 1990. 3. 30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

 

주요 수상 : 망퉁 국제비엔날레 대상(1966),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주요 작품 : <고향의 노인들>(1951), <대화>(1963), <푸른 반영>(1972)

 

1937. 도쿄 다이헤이요 미술학교 졸업

1955.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드라그랑드쇼미에르 입학, 추상미술에 몰입

1958. 한국인 화가 최초로 살롱 드메전에 초대 받음. 이 후 국제적인 화가로 인정받음

** 살릉 드 메(Salon de Mai/5월 전시회) : 파블로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을 발표함. 이 때 피카소는 초대작가에 불가했다.

1966. 망퉁 국제비엔날레에서 피카소, 뷔페 등 세계적 거장들을 물리치고 대상 수상

 

 

그는 희로애락, 생명의 영원성 등을 정제되고 세련된 색채에 담아, 인간상을 마치 상형문자와 같은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파리 활동 당시, 그는 자신의 심상주의 형태를 심화시키면서 독특한 작업을 구현했다. 그 내면적 순수 형상은 6.25의 비극적 상황 체험에서 비롯된 정신적 표현 의지의 상징성과 시공간 및 역사의 어떤 표상을 내재시킨 것이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그는 종군화가로서도 활동했기 때문에 전쟁의 비참함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962년 무렵부터 고대 상형문자와 한자를 떠올리는 형상을 화면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서체 모양으로 자른 종잇조각을 캔버스에 움직이며 화면을 구성하는 실험을 전개하는데, 마음에 드는 구도가 결정되면 그 위에 안료를 뿌리고 칠했다. 1968년 귀국 후에는 콜라주와 데콜라주 기법으로 자시만의 추상 언어를 완성해나갔다. 이를 통해 독특한 인간상과 색채를 탐구하며 핵심 조형 언어 중 하나인 얼굴 이미지가 등장했고 파리에서의 어두운 화면이 점차 청색을 중심으로 환하게 밝혀졌다.

 

- 아트조선, 윤다함 기자

 


그는 자신이 고안한 상형문자를 그림에 담았으며, 상형문자를 바탕으로 한 추상화를 그렸다. 이에 그의 추상화를 ‘문자 추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그림에 파란색 색채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는 당시 서울의 우울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회색이나 자색 또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세월이 흘러 마모되거나 비바람을 맞아 녹슬고 부식한 듯한 표면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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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

 

 

남관은 동서양을 융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파리 화단의 앵포르멜 미술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양적인 색채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동양과 서양을 가장 잘 융합한 화가라는 극찬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망통 비엔날레에서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으로 대상을 받은 이유이다.

 

** 앵포르멜 미술 :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회화 운동으로 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의 한 형식이다.

 

 

“남관은 서양 문화를 흡수하고 동양 문화는 희생시키지 않는 동시에 동서를 분리하고 또 융합하는 독보적인 예술가이다”

 

- 가스통 딜(평론가)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두 작품을 소개하고 각 그림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조금 덧붙여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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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겨울풍경>, 1972

 

 

전체적으로 남관의 그림은 하이데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분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이 그림은 겨울날 눈 오는 풍경을 그린 작품인데, 눈의 형상과 사람의 형상이 모두 글자로 표현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자연(눈)과 인간이 가장 근본적인 상태로서 완벽한 합입을 이룬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데거의 유명한 어구 중 “언어는 존재의 집”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존재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언어적 존재”라는 표현은 언어가 인간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즉 언어는 인간에게 존재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데, 언어는 인간에게는 존재와의 만남 또는 존재의 비춤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는 존재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존재자가 현존재로서 정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현존재(Dasein)는 항상 일정한 세계 안에서 존재하며, 특정한 시간의 지평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는 존재론적, 시간적 의미를 담지한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

 

여기서는 더 구체적으로 하이데거를 다루지는 않겠지만, 위의 하이데거의 견해를 바탕으로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왜 그가 상형문자를 이용하여 어떤 현상 또는 형상을 표현하려 했을까라는 의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의 본질은 언어로서 나타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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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음영>, Oil on Canvas, 1984

 

 

두 번째 그림은 마치 사람이 달 밑에서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늑대들이 달을 향해 울음을 짖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 이 그림을 봤을 때는 후자의 느낌이 강해 뭔가 스산한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전자의 느낌이 강하다.

 

고대 동양에서는 사람들이 달빛 아래에서 종교의식을 하거나 공연을 했다. 즉, ‘밤’이라는 시간 동안 인간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돌아가 그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위 그림의 하이데거 해석과 마찬가지로, 현존재로서의 인간이 비본래적 자아에서 본래적 자아로 향했고, 이 과정 속에 언어가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로써 인간의 형상은 언어로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의 해석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남관의 그림은 하이데거의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다가왔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지 않고, 작가의 세계관이 확고한 만큼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림의 인상은 강렬하게 지금까지 남아있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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