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복제된 먼로의 얼굴이 의미하는 것은? [미술]

질문하는 미술 감상 - 앤디 워홀의 마릴린 두 폭 화
글 입력 2021.06.21 16:4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필자의 예술 작품 감상은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난다. 예를 들어 회화 작품이라면 왜 이런 재료, 색, 구도를 선택했을까, 왜 이런 요소들이 이런 느낌을 줄까, 그렇다면 이것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등 개인적인 궁금증을 풀어나가며 작품을 이해하곤 한다. 오늘 그 질문의 대상은 캠벨수프 캔과 코카콜라병으로 친숙한 작가, 앤디 워홀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마릴린 두 폭 화(Marilyn Diptych)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Marilyn Diptych.jpg
앤디 워홀, 마릴린 두 폭 화 (Marilyn Diptych), 1962

 

 

늘 그렇듯 예술작품은 궁금증을 안긴다. 이 작품을 보고 떠오르는 질문들을 나열해봤다.

 

- 왜 마릴린 먼로일까?

- 왜 두 폭 화일까?

- 왜 같은 이미지가 반복될까?

- 왼쪽과 오른쪽 면은 어떻게, 왜 다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해 보고 (일명 뇌피셜), 자료를 참고해가며 (오피셜) 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추적해봤다. 서로 얽혀있는 위의 질문들 각각에서 힌트를 얻어 전체를 읽어나가보도록 하자!

 

 

 

1. 왜 마릴린 먼로일까?


 

loreleilee-2009062521525-mm_halsman1_1_-original.jpg
영화 <나이아가라> 홍보용 사진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초상을 여러 점 남겼는데 마릴린 두 폭 화가 그것의 시작으로서 먼로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1962년에 만들어졌다. 지금까지도 환풍구 위에서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움켜잡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마릴린 먼로는 19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 배우, 가수, 모델로 활동했으며 전에 없던 섹시 아이콘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작품 속 마릴린 먼로의 초상은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나이아가라> (1953년 작)의 홍보용 사진을 얼굴 부분만 자른 것인데 우리가 떠올리는 먼로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유명 인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마릴린 먼로라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도가 담겼다고 생각된다.

 

 

 

2. 왜 두 폭 화일까?


 

Diptych with tabernacle frames.jpg
Diptych with tabernacle frames, ca. 1400–1410

 

1VS5CDT3O9_1.jpg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부부의 초상, 1465-1466

 

 

두 폭 화(diptych)는 기독교미술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로 성당과 교회의 제단 뒤편에 위치하는 제단화(altarpiece)의 한 종류다. 제단화에는 주로 성인(聖人)이나 성가족(아기 예수, 성모 마리아, 성요셉) 등이 등장하고 성경의 장면이 묘사한다. 종종 왕족이나 귀족 부부의 초상을 소형 두 폭 화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두 폭 화는 성경의 장면처럼 순서가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거나 두 인물을 함께 보여주는 것처럼 두 면 간의 관계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매체다.


두 폭 화의 역사는 잠시 제쳐두고, 워홀 작품을 바라보자. 우리는 어떤 형상이 나란히 보일 때 자연스럽게 그 두 가지를 비교하게 된다. 두 면에 각각 칼라와 흑백으로 프린트된 마릴린 먼로의 초상은 이 둘이 마치 같으면서도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같으면서도 다른 두 종류의 마릴린 먼로 사이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온전하고 쨍한 색감의 왼쪽 먼로와 흑백의 잉크가 번진 오른쪽 먼로가 무엇을 의미할지는 뒤에서 더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다.


또한 마릴린 두 폭 화는 대중문화 속 신격화된 마릴린 먼로에게 걸맞은 매체인 것 같기도 하다. 성스러운 예술 형식을 빌려 그 안에 기계적으로 복사, 붙여넣기 한 듯한 인공적인 이미지들을 나열해 흥미로운 긴장감이 유발된다.

 

 

 

3. 왜 같은 이미지가 반복될까?



white-burning-car-iii-1963-silkscreen-on-canvas.jpg
앤디 워홀, 흰색의 불타는 차 III (White Burning Car III), 1963

 

Marilyn Diptych.jpg

 

 

캔버스 위 복제된 이미지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불릴 만큼 워홀은 이런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똑같은 것을 계속해서 보다 보면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당신의 기분은 더 공허하고 좋아진다”거나 “섬뜩한 사진을 반복해서 보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아무 효과를 갖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어떤 것의 반복적 노출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효과를 흐린다는 것을 표현 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워홀이 믿는 반복의 기능이라면 마릴린 두 폭 화는 관객이 이 작품을 통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도록 한 것일까? 혹은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이미지가 반복되어 나타나고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에도 무뎌지는 이미지 과잉 시대를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신문에서부터 잡지, 광고판까지 미디어를 도배하는 마릴린 먼로의 사진들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는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까지도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대중문화 사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반복되는 동일한 형상들 사이에는 틈이 없다. 문자 그대로 캔버스에 이미지가 빼곡하게 꽉 차있다는 의미이자 은유적으로 한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 사이에서 사유할 틈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이미지들이 생산, 복제되기 때문에 범람하는 이미지들 속 그것 하나하나를 마주하고, 이해하고, 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틈이 없다. 하나의 사건 혹은 인물이 채 이해되기도 전에 이미지와 정보의 홍수 속에 휩쓸려가는 것이다.

 

 

 

4. 왼쪽과 오른쪽 면은 어떻게, 왜 다르고 이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왼쪽과 오른쪽 면은 한눈에도 대조된다. 우선 왼쪽의 높은 채도와 인공적인 색감은 오른쪽의 흑백 톤에 의해 더 도드라진다. 먼로의 얼굴이 왼쪽에서는 온전히 보존된 반면 오른쪽에서는 곧 사라질 듯 흐릿하거나 잉크가 번져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남아있다. 왼쪽 형태는 화려하고 매력적이고 사랑받는 유명인의 모습처럼 내면보다는 외면에 치중한 듯한데, “기계가 되고 싶다”던 작가가 진정 기계가 되어 마릴린 먼로의 모습을 피상적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먼로의 가장 아름답고 섹시한 순간에 그녀를 박제해 놓는 것,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아두려는 욕망이 왼쪽 화면에서 표현됨과 달리 오른쪽 화면 속 먼로 형상은 완벽한 복제에는 실패했지만 오히려 사라져가는 얼굴들이 한 인간의 부재, 그녀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먼로를 서서히 흐려지게 두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인다. 두 화면의 형태적 차이는 그녀의 인간으로서의 삶과 유명인으로서의 상징적 기능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크다. 이러한 불로장생의 아이콘과 죽음이라는 현실의 대조가 이 작품에 표현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죽음이 문득 다가옴으로써 그제서야 진정 그것을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규정하기 어렵고 불확실한 삶 자체를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끝나지 않은 질문


 

앤디 워홀이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정확히 아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이런 수수께끼 같은 질문들에 답을 해 나가면서 세상의 무언가를 하나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글은 끝났지만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위의 네 질문에 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가지 치듯 생겨날 것이다. 워홀의 작품은 무엇이든 빠르게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우리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가진다. 잠깐 멈춰 서서 스스로 질문해보고 진득하게 생각해 보는 틈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여기 마릴린 두 폭 화를 시작으로 앤디 워홀의 다른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본다.

 

 

[이서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