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름 없는 가족의 조각난 이야기 [공연]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6.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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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에프 경제 위기’는 한국인들의 일상에 상상할 수 없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큰 상흔을 남긴 사건이다. 두산아트센터는 아이엠에프 이후에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된 가족을 무대에 올려 성실히 살아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랄함 가운데 보여주었다.

 

‘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 발랄하고 명랑한 소녀의 모습이 연상되는 양갈래 머리와 떠올리기만 해도 암울한 아이엠에프, 나란히 놓기엔 생경한 두 단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극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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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백색 텅 빈 무대 위에 놓인 의자와 중앙에서 푸른빛을 내뿜고 있는 수조가 눈에 띤다.

 

시선을 사로잡는 수조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있기에는 낯선 하얀색 러닝셔츠가 그것을 입었던 사람이 지나온 시간만큼 차곡차곡 쌓여있다. 공연이 꾸려나갈 이야기가 예상되지 않는데서 비롯한 낯선 감정을 비롯한 여러 감각을 안고, <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는 시작되었다.

 

연극은 한 가족 구성원의 일상과, 이들과 관계 맺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적당히 벌어 적당히 살자는 구호는 주인공 가족에게 유효하지 않다. 이들은 죽을 만큼 일해야 죽지 않을 정도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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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에프 때 실직해 여러 가게를 영업해봤지만 모두 실패해 경비원으로 취직한 아빠와 콜라텍 주방에서 20년 넘게 일한 엄마, 대졸자이지만 집에서 쉬고 있는 오빠,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마음먹은 동생 등,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숙함을 느끼는 전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야기는 치매를 앓은 채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시절의 추억와 아이엠에프로 인해 콜라텍에서 일하기 시작하던 시기만을 간직하게 된 엄마 기억 속 파편처럼 조각나있다.

 

엄마는 가족이 재기하는 데 실패한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실패의 경험만큼 겹겹이 쌓인 러닝셔츠를 품고 있는 횟집 수조 위를 부유하듯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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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미래를 예상하게끔 만드는 구성은 IMF 경제 위기라는 국가적 재난 이후 긴 세월동안 가족이 겪었던 수난을 가늠할 수 있게 이끈다.

 

무대 위에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뛰어넘은 다양한 시간대가 존재하지만 이들의 일상은 수레바퀴를 돌 듯 고착화되어있다. 개선의 여지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린 채 계속된 이야기는 그렇게 지금까지 반복되어 왔다.

 

이 가족뿐만 아니라, 군인 시절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청년 무주와, 아빠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공원 아저씨의 이야기 또한 뒤섞여 지난한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에 주목할 수 있다.

 

이렇게 파편화된 시간 구성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극 안에서 조각난 시간들을 포개고 이어주는 연극적 연결점이 여럿 등장한다. 연극 안에서 중첩을 이루며 시간을 연결하는 것은 인물이 될 수도, 사건이 될 수도, 감정이 될 수도 있다.

  

대학을 나왔지만 의사에게 폭언, 폭행을 당해 직장을 그만둔 큰 오빠는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품을 바꿔 사용하며 언제든 청년 무주로 변신할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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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중첩되면서 그들이 겪은 사건 또한 포개진다. 친아들인 큰오빠보다, 아빠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무주는 오빠가 의사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군대 선임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오빠와 무주가 동시에 사용하는 딱딱한 말투는 외부의 폭력으로 인해 삶을 향한 희망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은 젊은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인물이지만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두 청년의 모습 위에 폭력으로 인해 존엄성의 파괴를 겪은 청년들의 모습이 또 한 번 겹쳐진다.

 

과거와 현재, 또 미래의 사람들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기억을 잃은 엄마의 모습은 치매를 앓아 자신의 손자와 아들을 헷갈리는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소녀시절을 추억하며 양갈래 머리를 땋은 엄마의 모습에서 똑같이 양갈래 머리를 하고, 학생 시절 엄마처럼 발랄하며 에너지 넘치는 막내 동생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인물의 중첩은 이들 가족이 현재까지 겪고 있는 가난의 대물림을 조심스레 전달하며, 개인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었던 굴레에서 오는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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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엿보는 듯 잔잔하다가도, 그들이 삶의 ‘평범함’을 지탱하기 위해 희생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그들의 일상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허탈함과,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야기라는 서늘함이 덮쳐온다. 이러한 감정 또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 데 간직한 채 극장을 나갈 수 있게 했다.

 

이야기 중간 중간 배우들이 가창하는 음악 또한 웃음 속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이 모든 이야기를 지켜보고 난 후, 이들의 지난한 일상이 조각보처럼 머릿속에 수놓아져있었다.

 

‘기억’이라는 요소, 그 기억을 따라가는 이야기의 구성이 중요했던 만큼, 엄마가 실제로 잃었던 것이 아니라 잃은 척했다는 사실을 밝힌 채 끝나는 연극의 결말이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이는 기억을 잃어야만 쉴 수 있는 엄마의 지친 일상을 대변한다.

 

그뿐 아니라, 엄마가 치매를 앓는 척하며 유일하게 기억하기로 한 소녀시절과 아이엠에프 사이의 괴리감을 통해 어린 시절 희망에서 멀리 떠나온, 아이엠에프부터 만들어진 기억이 20년간 똑같은 자리를 맴돌고 반복되며 노동하는 엄마를 지치게 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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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는 개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재난으로 일상의 희망과 존엄성까지 잃어버려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여준다.

 

 

[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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