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쓰라린 기억의 조각들이 작품으로, 루이즈 부르주아 [미술]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글 입력 2021.06.1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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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유독 좋아한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3살 무렵 할머니 품에 안겨있었을 때이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풋풋하게 느껴지는 할머니의 살 내음, 주변은 시끄럽고 분주하지만 나만 고요한 품에 안겨있던 그 시절이 아직도 그립다.
 
이렇듯 기억은 상호 교감을 통해 얻은 경험들을 담은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저장된 기억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보관되어 있다가, 순간순간 일상생활에서 드러나게 된다. 물론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거나 잊힐 수 있으며,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기억은 크게 의미론적 기억과 일화적 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의미론적 기억은 일반적 개념과 지식에 대한 기억이고, 일화적 기억은 시간과 공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사건들의 기억이다. 앞서 내가 좋아하는 기억들의 유형은 일화적 기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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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작품은 일화적 기억이 작용된 것이다.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자화상으로 표현한 프리다 칼로, 전쟁의 아픈 기억을 담은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자신의 꿈을 소재로 삼아 작품화한 초현실주의의 대표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를 보자.
 
공통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꿈이나 회상, 감정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했다. 즉 예술가는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이미지를 표현하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관람객에게 들추어 보이는 것이다. 예술가의 기억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그들의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이는 대중과 작가의 거리를 좁히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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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 엄마 Maman (1999)

 

 
오래전 리움 미술관에서 보았던 작품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야외에 전시된 거대한 거미 조각 작품인 <엄마 Maman>(1999)이다.

거대한 거미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면 대리석 흰 알들이 보인다. 거칠다 못해 기괴함을 가진 이 작품의 이름이 의문을 자아낸다. 거미를 자신의 어머니에 비유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떠한 기억을 담아 작품을 표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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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Spider (1996)

 

 
비슷한 소재를 이용한 작품 <거미 Spider>(1996)도 작가의 어머니를 상징한 것이다.

거미는 자신의 몸에서 실을 자아내어 집을 만든다. 즉 거미를 어머니에 비유한 것은 작가의 어머니가 자신의 정신적 지주이자 헌신적인 사랑을 바친 인물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거미를 혐오스러운 이미지로 다루지 않고 모성애 가득한 이미지로 해석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엄마로서의 자신에게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식을 향한 걱정과 사랑이 담긴 작가의 자화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게 조각은 신체다.
내 몸이 곧 내 조각이다.
 
 
이 작품들을 표현한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는 어머니를 향한 경의를 표한 작품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파괴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1974)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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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 아버지의 파괴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1974)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가족 만찬에서 온 가족들이 아버지를 잡아먹는 장면임을 암시한다. 이 비극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반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품 속 고깃덩어리는 아버지의 신체 부위를 표현한 것이며 이를 가족 구성원들이 식탁 위에 올려놓고 먹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다소 잔인하고 폭력적이나, 작품 속 처참하고 파괴된 장면은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작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부르주아의 작품을 보았을 때,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무척 상반된다. 작품 속 주제에 대한 감정은 바로 부르주아의 기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외도에 대한 기억과 상처, 그리고 불완전한 가정환경에 의한 정신적 외상을 예술 작품으로 치유하고자 했다.
 
작품은 그녀의 기억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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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 나를 버리지 마세요 Do not abandon me (2000)

 

 
앞서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담아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려 했던 작품들과는 달리 부르주아는 바느질 작품으로 표현한 <나를 버리지 마세요 Do not abandon me>(2000)를 통해 이제껏 분노를 표현했던 것들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하고자 했다.
 
탯줄로 연결된 어머니와 아이는 출생 후에도 끊어짐 없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신뢰와 희망을 담은 듯하다. 재료가 차가운 금속성에서 바느질된 섬유 조각으로 바뀐 것도 인간관계를 더욱 애절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작품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바느질을 선택한 부르주아는 이를 통해 절단과 봉합, 상처와 치유의 반복을 보여주었다. 예술 치료의 성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루이즈 부르주아, 그녀는 유년 시절의 쓰라린 기억 한 조각을 작품으로 표출하여 아직도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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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겪은 경험에 의한 기억이 작품에 드러나는 경우, 우리는 기억의 흔적을 좇아 작품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특히 솔직하고 정직한 자기 성찰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부르주아의 성숙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누구나 꺼내기 두려운 기억이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그 두려운 기억과 상처를 드러내어 작품으로 치유하려고 했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예술 작업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그 기억조차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자신만의 예술성과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한 그녀가 더욱 돋보인다.

 

예술은 정신적 외상의 경험이다.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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