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의 공간을 넓히다 [미술]

김홍도와 마크 로스코
글 입력 2021.05.0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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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 마크 로스코
 
최근 그림으로 마음의 휴식을 얻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동양과 서양에서도 그러한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본 글에서는 김홍도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상관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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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주상관매도

 
 
우선 <주상관매도>는 조선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가 그린 작품이다. 작품 소개에 앞서 김홍도는 저명한 조선의 화가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였던 강세황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고, 20대 초반에는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됐던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29세의 나이에 영조와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특히 정조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홍도는 산수와 불화, 초충 등 여러 분야에서도 우수했으나 서민의 삶의 모습과 애환이 담긴 풍속화를 유독 잘 그렸다고 한다. 그는 작품 속 숨어있는 요소를 찾아보는 재미를 선사했고 관객과 소통하길 바랐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일상을 그린 <씨름>, <벼 타작> <무동>을 보면 그가 세심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그들을 관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포의풍류도>를 보면 선비가 악기를 연주하며 고즈넉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소탈하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 <황묘농접도>에서는 자연 속 생물들을 세밀하고 정갈하게 표현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온화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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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황묘농접도, 간송미술관

 
 
<주상관매도>는 종이에 수묵 담채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노년 시기, 두보의 시에 감명받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그림 속 화제인 “노년화사무중간(老年花似霧中看)”은 “노년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을 보는 것과 같다.”라는 의미로, 이를 통해 노인이 된 김홍도가 안개가 피어난 산에 있는 꽃을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홍도가 감상한 두보의 시는 어떤 내용일까? 두보가 쓴 “소한식주중작(小寒食舟中作)”은 “소한식 날 배 위에서 짓다”’라는 의미이다. 소한식은 우리나라 명절 중 ‘한식’의 다음날이며, 한식 전후 3일 동안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날이다. 이 시를 지은 해는 두보가 세상을 떠난 해로, 노년의 쓸쓸함을 담고 있다.

그렇게 배 안에서 차가운 음식을 먹으며 먼 산을 바라보는 두보의 모습 또한 김홍도의 그림 속에서 연출된다. 노년의 김홍도 역시 그런 두보의 심정을 이해했고, 그도 시조를 지었던 것이다.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우회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보이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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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소양이 풍부했고 서예에도 출중했던 까닭에 김홍도는 이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작품을 들여다보자면, 유독 수직적으로 빈 여백이 많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배 위에 앉아 있는 노인과 산자락의 사이를 과감하게 생략하여 거리감이 느껴진다.
 
또 비스듬히 위치된 배의 방향과 산 위의 꽃이 향하는 방향이 좌우ㆍ상하로 위치되어있어 안정감을 준다. 더구나 살짝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방향으로, 관객도 노인의 입장처럼 산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균형과 여백은 화자 자신도 마치 안개로 둘러싸인 풍경 안에 있는 느낌이 들며 여유로움 속에 침묵하게 된다.
 
 
마크 로스코
 
예전에 하나의 그림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뛰어난 묘사력이 있는 그림은 아니었고 그저 거친 들판을 파란색으로 드로잉을 한 것뿐이었는데, 마치 마음에 바람이 부는 것처럼 감정이 시원해졌다. 울적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그림 속 들판에 서 있는 것처럼 그 그림만 계속 뚫어질 정도로 봤던 경험이 있다. 그 작품을 보면서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가끔 생각을 비워두고 싶을 때 찾아보곤 한다.

그런데 필자와 같이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의 한 내셔널갤러리에서 “미술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질문한 사람의 70%가 대부분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그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로스코는 왜 이런 단색화를 그렸으며 어떻게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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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Orange and Yellow, 1956, 올브라이트녹스미술관

 
 
마크 로스코는 현대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색채를 덩어리째로 배열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그림은 어떠한 형태도 없이, 면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다. 이러한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으로는 그가 유럽에서 퍼지는 나치 정권에 위협을 받고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부터라고 한다. 당시 유럽의 현대 화풍에 매료된 로스코는 작품에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예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왔다.”

로스코의 이 발언은 그 시기 암울했던 사회상과도 관련이 깊다. 전쟁의 위협이 주는 두려움과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머물렀던 그는 어두운 그림들을 많이 그려냈다. 로스코 작품 속 형태가 있는 그림 <로드코 초상>은 그 사회적 이면에 담긴 한 인물의 고뇌가 느껴지면서 감상자 스스로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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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로스코 초상, 애버리, 1933년, 출처: 미술대사전(인명편)

 
 
위 작품 속 인물의 얼굴은 형태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길어서 다른 초상화와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어내는 그의 모습이 어둡고 차갑게 느껴지고, 그 연기의 한숨이 전해오는 듯하다. 무섭도록 그림의 감정을 전달하는 로스코는 점점 더 추상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 비극이 거룩하고 초월적인 아름다운 감정을 전달해주는 것처럼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이러한 감정을 전달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 재현보다는 색과 면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추상으로 실현하고자 하였다.

한편 전시장에 있는 실제 작품들의 크기는 전시장의 한 면을 채울 만큼 크며 압도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규모의 작품 아래 관객들은 침묵을 지키며 그림을 유심히 보게 된다. 이것이 로스코가 바라던 효과였을 것이다. 마치 드넓은 초원이나 한없는 우주 광경과 닮은 로스코의 그림을 깊게 눈에 담아내면서, 관람객의 감정은 채워지거나 비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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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워라밸’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만큼, 현대인의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휴식 시간이 많이 부족해졌다. 이 시기, 우리도 <주상관매도>의 노인처럼, 로스코 작품의 관객처럼 잠시만이라도 마음의 공간을 넓히고 휴식을 취해보는 것이 어떨까?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 속 조용한 침묵의 그림이 주는 울림은 우리의 뇌를 쉬게 하고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하곤 한다.

 
참고자료
*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푸른역사, 2017
* 유튜브 채널 ‘예술의 이유’, “로스코 작품을 보고 왜 눈물을 흘릴까?”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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