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복수, 해보신 적 있나요?

우리는 왜 '복수'에 열광하는가
글 입력 2021.04.2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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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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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의 거장,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다. <친절한 금자씨>뿐만 아니라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까지 복수 3부작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너나 잘하세요~"를 따라 하고, 군만두를 먹을 땐 올드보이를 떠올릴 정도니 말이다.

 

 

 

복수, 해보신 적 있나요?

있어요. 아마.. 상상 속에서?


 

우리가 복수 소재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억울함을 배로 갚아주기는커녕 그대로 당하게끔 해주는 것마저도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인격적으로 무시했을 때, 나는 언젠가 그 사람보다 더 잘난 사람이 되어서 눈앞에 당당하게 나타나 그야말로 금자씨처럼 '너나 잘하세요~'라고 외치는 걸 머릿속으로 그린다. 현실은 모르겠다. 그 사람보다 더 잘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뭔가 분은 안 풀린다.

 

어딘가 모르게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 한구석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드라마나 영화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상상 속에서 엉성하게 그려냈던 복수의 모습을 드라마나 영화는 생생하게 내 눈앞에 보여준다. 복수하는 사람에 이입하여 마치 내가 복수에 성공한 것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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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회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로(심지어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시청자를 사로잡은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리즈의 큰 줄기는 '주인공 심수련의 복수와 악인들의 몰락'이다.

 

당장 우리 엄마도 이 드라마가 납득도 안되고, 말도 안 되지만 나쁜 사람들이 당하는 맛에 본다고 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악인들의 몰락을 쉽게 접하지 못할뿐더러, 악인에게 당해 온 '착한 사람'들이 악인에게 물리적으로 복수하는 속 시원한 일들을 보는 건 판타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펜트하우스>에서는 다르다. 역대 최악의 빌런이라고 손 꼽히는 '주단태'는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이 나쁜 짓만을 하는데, 그에 맞서는 '심수련'은 뼛속까지 착한 걸 넘어서 전략을 짜는 것까지 탁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퀸수련'이라고 칭하며, 주단태를 비롯한 나쁜 짓을 한 캐릭터들에게 치밀하게 복수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고 "대리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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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트하우스 시즌 2 11화 마지막 장면

 

 

많은 사람들이 심수련이 나애교일 것이라고 예측은 했지만, 주단태가 심수련을 2년 동안 감금했다는 시나리오를 짜서 주단태를 물 먹일 것이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은 막장드라마는 극혐이라고 펜트하우스를 보는 주변인을 이해하지 못하며 손사래 치던 나도 어느 순간 '이게 바로 순옥적 허용..?' '순옥드의 마라맛..?' 하면서 매료되게 했으니... 참고로 난 김순옥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다.

 

 

 

사적 정의 vs. 공적 정의

아직도 경찰, 검찰, 판사들의 정의를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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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모범택시>는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고 피해자들은 보호되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피해자들을 위해 모범택시를 운영하는 무지개 운수가 대신 복수해 주는 내용이다.

 

학교폭력, 직장 내 괴롭힘뿐만 아니라 성범죄나 연쇄살인까지 범죄의 경중을 따질 것 없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떵떵거리면서 살고, 피해자들은 괴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례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그래서 그런지, 법이 해결해 주지 못한 부당한 결과들을 이 드라마는 대신 해결해 주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사람들은 피해자가 당하는 모습엔 더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고 가해자에게 '참교육' 하는 장면엔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한편, <모범택시>는 기존 복수 소재의 작품들이 지녔던 "악인들의 만행 -> 주인공(선역)의 복수" 구조에 더하여, 복수를 잡고자 하는 또 다른 선역, '정의로운 검사'가 등장한다. (원작 웹툰과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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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전혀 나쁜 의도로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수는 엄연히 사회 질서에 반하는 행위다. 이는 드라마에서 검사 '강하나'가 복수를 하는 모범택시를 잡고자 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현실적으로 '복수'의 사례를 찾기 힘든 이유이자, 우리가 섣불리 복수를 행하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이러한 '복수'의 특징은 <펜트하우스>나 <모범택시>뿐만 아니라, 다른 복수 소재의 작품들이 비판을 받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첫째로 일단 개연성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일종의 '가학 포르노'가 된다는 것이다. 전자는 어차피 드라마나 영화가 가상의 이야기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후자는 꽤나 심각한 문제가 된다.

 

통쾌한 복수를 연출하기 위해 선역들이 당하는 모습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펜트하우스>와 <모범택시>는 모두 19금으로 편성하였지만, 영화보다 어린아이들의 진입장벽이 낮은 TV, 그것도 공중파에서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을 삽입하여 비판받았다.

 

특히, <모범택시>는 실화를 모티브로 하기 때문에, 아무리 현실이 더하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피해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건 통쾌함보다 불쾌함을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범죄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질서를 해칠 수도 있다. 매체에 영향받아 범죄를 저지르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우린 여러 번 목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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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좋다. 어차피 공적 정의에 엇나가는 복수가 우리 일상에선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니, 매체로나마 대리만족하는 건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매체는 생각보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할 때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도 복수에 너무 과몰입하여 실제로 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인생에서 최고의 복수는 "잘! 사는 것"이다. 현실에서 잘~ 살아서 속으로만 너나 잘하세요를 외치고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복수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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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 출처는 공식 포스터, 공식 영상 캡쳐본 및 공식 홈페이지.)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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