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조각] 밤과 꿈을 줍는 시간

어릴 땐 밤을, 커서는 꿈을 줍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글 입력 2021.04.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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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온기를 빚는 시간



일괄편집_일상조각.jpg

 

 

장인이 공방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주변의 소리가 점점 사라지며 오롯이 내 손끝과 그 손끝에 맞닿아있는 흙에만 집중하는 시간. 그 시간은 마치 타인과 세상의 시선이 묻지 않은, 나 자신을 빚어야 하는 글을 쓰는 일을 닮은 것 같다. 잠시 삐끗해도 괜찮다. 열심히 매만지다 보면 다시금 만들고자 하는 모양을 찾아가니까. 그렇게 그 어느 도자기와도 똑같지 않은 단 하나의 도자기가 완성되듯이, 단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지금부터 이곳에 써 내려가는 글은 ‘나’라는 하나의 그릇을 이루는 작고 작은 조각들에 대한 기록이다.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그릇은 어떤 일상들로부터 만들어진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찬찬히 더듬어가고자 한다. 결국엔 어떤 그릇을 만들고 싶은지 자신에게 묻는다면 온기(溫器), 따뜻한 그릇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컵을 감싸 안은 차가운 손이 녹아 따뜻해지는 순간 혹은 손과 손을 맞잡을 때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진 손들이 어느 정도 같아진 온도를 공유하게 되는 순간들이 좋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조금씩 조금씩 문장을 다듬는다.

 

 


일상 조각 첫 번째. 밤과 밤



 

# 밤을 줍는 시간

 

저화질의 사진처럼 모든 것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기억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한 장면들이 있다. 어린 시절 나의 태몽이 밤나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밤나무와 밤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집 마당에는 내가 태어났을 때 심었다는 밤나무가 내 나이와 같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난 나와 닮아서 아직은 작고 푸른 잎사귀가 그나마 자랑거리인 아기 밤나무보다는 마당 초입에 있는 큰 밤나무를 더 좋아했다.

 

그 밤나무는 가을이면 큰 밤송이들이 나무 잎사귀의 푸름과 섞여 그 사이사이로 매달려 있었다. 장대로 나무를 쳐서 밤송이들을 떨어트리는 건 아빠의 몫, 그 아래 스스로 떨어진 밤송이들을 찾아 까는 건 나와 동생의 몫이었다. 엄마는 행여 우리가 밤송이의 가시에 손가락과 발가락을 찔릴까 봐 빨간 목장갑을 씌워주고 없는 어린이 장화 대신 할머니의 장화를 신으라고 한 뒤 우리들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다가 그 밤들을 삶아주었다.

 

장갑의 빨간 면이 손바닥으로 가도록 껴야 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뒤뚱뒤뚱 오리걸음으로 걷도록 만들었던 큰 장화를 신고도 나와 동생은 밤나무 아래를 열심히 헤집고 다녔다. 마당 뿐만 아니라 할머니 집의 뒷산에도 밤나무들이 여럿 있었는데, 조금 더 커서는 부모님 없이도 우리 자매는 종종 올라가서 떨어진 밤송이들을 장화 바닥으로 열심히 헤집고서 누가 더 큰 밤을 주웠는지 대결하고는 했다.

 

혹은 밤송이 안에 더 많은 밤이 든 사람이 이기기도 했다. 하지만 밤송이 안에 밤이 많으면 꼭 하나는 쭉정이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지금이라면 미련 없이 버릴 쭉정이들이 그때 당시엔 왜 그렇게 눈에 밟혔는지, 그것들까지 소중하게 모아 집으로 가져갔다. 동생도 나도 그 쭉정이들까지 개수를 인정해 주었던 것은 속이 비었더라도 어쨌든 그건 밤송이 안에서 함께 자란 밤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엄마의 손안에서 그 작고 홀쭉한 밤알들은 버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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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에서 찾아낸 오래전 대결의 흔적

 

 

토실토실한 밤을 알맞게 삶으면 찜기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그 냄새가 흘러나올 때면 신문지와 유명한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의 분홍색 스푼을 준비한다. 그것들은 밤을 먹을 때 기꺼이 좋은 도구가 되어 주었다.

 

잘 삶은 밤은 이로 밤의 한가운데를 자르면 딱 반으로 나뉘었다. 그걸 사이즈가 딱 맞는 분홍 스푼으로 떠먹었다. 열심히 먹느라 바닥에 포슬포슬한 밤 부스러기를 흘려도 괜찮다. 신문지 위에서 잘 먹으면, 다 먹고 나서 신문지를 접기만 하면 끝이었다. 이렇게 저녁을 먹고 삶은 밤을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먹었던 장면은 오래된 필름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것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가을에 태어나서 가을에 열리는 밤을 먹는다는 것. 가을과 밤을 좋아하게 되는 일은 어쩌면 나에게는 불가항력인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나의 어린 밤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할머니의 집이 비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떠난 그곳엔 다른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이제는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더는 밤나무 아래서 밤송이를 볼 수 없게 되고 나서야 가을의 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그때처럼 밤을 자주 삶아 먹지 않는다. 그렇게 밤을 줍는 시절을 잃고 왠지 나는 어린이라고 불릴 수 없게 된 듯했다. 밤과의 거리를 벌리며 서서히 나이를 먹어갔다.

 

 

# 꿈을 줍는 시간

 

밤을 먹지 않는 그 대신에 밤의 시간에 오랜 시간 동안 깨어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밤 열 시만 되어도 잠자리에 반드시 누워야 했던, 잠이 안 와도 잠깐 양 몇 마리 세고 나면 곧바로 잠이 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잠은 점점 밤의 시간의 뒤로 밀려 나가고 있다. 기나긴 밤의 시간을 가장 또렷하게 감각하게 되는 것은 계절감이다.

 

봄의 밤, 여름의 밤, 가을의 밤, 겨울의 밤. 계절마다 이부자리의 이불과 베개를 바꾸는 일을 기다린다. 바뀐 침구의 감촉을 느끼며 달라지는 밤의 공기와 온도를 느낀다. 아직은 찬 공기를 가진 봄밤에는 겨울 이불보다는 얇아도 덮으면 어느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이불이 좋다. 까무룩 잠에 들던 시간이 그립기는 하지만, 밤의 눈이 밝아지자 계절에 따라 밤을 둘러싼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겨우내 잠이 들면 꼭 꿈을 꾸게 된다.

 

꿈의 세계는 갈수록 신비로워지고 있다. 잠에 빠져 있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어떠한 시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꿈의 세계를 흥미롭게 만든다.

 

재미있는 꿈은 깨어나자마자 어딘가에 적어 놓는다. 이렇게 주운 꿈들로 꿈 사진첩을 만들고 있다. 문장으로만 남고 흐릿한 인영만 남은 이미지의 꿈 조각들이 종종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꿈속에 유명인이 나오면 친구들에게 자랑할 쏠쏠한 이야깃거리가 되고(하지만 꿈속에 연예인이 나온 적은 손에 꼽는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면 일기장의 한구석에 적는 그 순간까지 꿈에서의 설레었던 여운이 남아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꿈속에서 본다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한동안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야속하게도 내가 그때 좋아했던 연예인은 단 한 번도 내 꿈에 나타나 주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가 그들을 생각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했고 나는 부정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어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꿈속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걸 이제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어리석게도 꿈을 꾸고 나서야, 현실의 마음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자기 전에 꿈속에서 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다 자면 꿈속에 그 상대가 나타나 준다는 미신을 믿지 않았었던 나는 이제야 과거 친구들의 말을 인정하고 그 미신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나의 꿈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을 허투루 잊지 않으려고 꿈을 줍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어떤 꿈들은 한 권의 판타지 소설 혹은 영화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 든다. 이럴 때는 다 기억하고 기록해놓지 못해서, 꿈속의 나만 재미있는 일들 겪고 현실의 나는 이 일들을 몽땅 까먹어버려서 속상하기도 하다. 꿈을 줍는 사람, 꿈을 주울 수 있게 되면서 잠드는 일이 기다려지고 더는 악몽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때때로는 악몽도 하나의 내 안에서 누군가에게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은 운이 좋게도 어떤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는 악몽만을 내가 만나서 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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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꿈의 세계는 어떨까. 누군가의 꿈들도 밤이 기다려지는 이유, 잠드는 것이 무섭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이유가 되어줄까. 꿈을 많이 꾸면 잠을 잘 못 자는 것이라던데, 꿈을 꾸지 않는 밤은 왠지 상상할 수 없다.

 

어린 시절 산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밤을 줍던 아이는 밤의 시간에 부지런히 꿈을 줍는 어른이 되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꿈에서 그 어릴 적의 밤나무를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린 나와 키가 비슷했던 그 어린 나무는 얼마나 컸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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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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