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먼지 위에 피어나는 예술, 더스트맨 [영화]

결국 지워진다는 것의 의미
글 입력 2021.04.0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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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결국엔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그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파도가 치면 흔적없이 사라질 모래사장 위의 이니셜이나 김 서린 유리창 위의 낙서와 같이. 나 역시 그렇기에 ‘더스트 아트’를 다루는 영화임을 확인하고는 과거 어느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홀린듯이 시사회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3월 들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어쩌면 그래서인지 더더욱, 잠시나마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원인에서 벗어나 나만의 감성이 온전히 충족된 상황이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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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무대 인사 뒤에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자주인공인 태산은 스스로 떠도는 삶을 선택한 서울역의 홈리스로, 도입부에서 자신이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는 충격적인 독백을 읊조린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내뱉는 연유는 무엇일지,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개에 따라 천천히 이야기된다.


그는 평소와 같이 무기력하게 굴다리를 지나다 벽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미술 전공생 모아를 만난다. 얼떨결에 태산은 순찰을 돌던 경찰로부터 도망치는 그녀에게 작은 도움을 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계기로 그녀와 서서히 가까워진다.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이 누군가의 손에 속절없이 사라지는 게 아쉽지 않냐 묻는 그에게 그녀는 그저 티없이 웃으며 그러려고(지워지려고) 그리는 것이라는 쿨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녀의 한마디는 삶에 대한 의욕이 나날이 꺼져가던, 심지어 자살 시도를 자행하던 그에게 하나의 불씨로 자리 잡으며 먼지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나가는 계기로 작용한다.


뛰어난 그림 실력 덕에 그의 그림들은 sns 상에서 큰 화제가 되지만, 막상 그는 자신이 그 작품들의 작가라는 사실을 그다지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들에게 그저 빨리 털어버리고 싶고 한없이 쓸모없는 존재로만 치부되던 먼지에 자신의 삶을 이입하며 상당한 동질감을 느껴서일까, 창작의 과정에서 그는 분명한 치유를 경험하며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이해해주는 모아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서로 온기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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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산과 모아의 관계에 전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태산은 크나큰 정신적 상처와 감당이 되지 않는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겨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살갑게 다가오는 그녀에게 본능적으로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자신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고, 이 선만은 절대 넘지 말아달라 온몸으로 암시하며. 그러다 자신이 쌓아놓은 벽이 허물어질 것만 같다고 자각한 순간, 그는 그녀에게 의도치 않게 큰 상처를 입히고 만다. 자신의 잘못이 명백했기에 그는 그녀에게 다시 사과의 손길을 내밀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화해를 한다.


태산과 모아는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해답이 되어준다. 그녀는 어릴 때는 그저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지만 졸업전시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자신이 과연 무엇을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불분명하게만 느껴지고, 남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의 고민을 종종 토로한다.

 

그러나 그녀는 더스트 아트를 통해 예술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초심을 되찾게 되고 성공적으로 졸업전시를 성공적으로 끝 마치며 한단계 더 발전한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의 상처를 덮어두거나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용기를 얻은 뒤에 비로소 해당 사고의 관련인을 찾아가 사과를 건네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사실 나는 영화를 끝까지 다 보지는 못하였다. 마스크를 쓴 상태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한동안 괜찮아졌다 생각한 공황장애 증상이 상영 중간에 다시 나타났기 때문에. 나 또한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려있어 그랬는지 몰라도 초반부 남자주인공의 모습과 나 자신이 겹쳐보였다. 일상에서 꾸역꾸역 억지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고 있고 나 역시 내 삶의 무게가 무겁기만 하다. 태산이 누군가의 시나리오에서 탄생한 허구적 인물일지라도 충분히 개연성을 띠고 있지 않은가.


그는 부인할 수 없이 이 시대의 타자이다. 빈번히 소외되어지고는 하는 우리 사회의 주변적 존재. 하지만 그렇다해서 그를 무가치한 삶을 이어나가는 생명체라 할 수는 없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속하는 지와는 별개로 모든 개별적 삶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함에도, 우리는 관성적으로 타인의 삶의 양상을 손쉽게 가치판단하고는 한다.

 

누군가의 삶을 나만의 협소한 잣대로 단정하고 싶어질 때마다 먼지라 할지라도 빛을 받을 시엔 더없이 반짝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싸움을 해나가고 있을, 나를 포함한 모든 타자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리뷰글을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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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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