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문화란 무엇인가 - 문명과 문화, 그리고 생존

글 입력 2021.03.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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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다는 말은 문화를 포장하기에 적절하다. 가끔 포장지를 잘못 뜯으면 ‘미지’라는 흔적이 남는 것도 비슷하다. 분명하지 않거나 확실치 않거나, 혹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맥락에서의 막연함은 나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고 호기심을 동하게 할 때도 있다. 내가 문화를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도 이러하다. 얼추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답답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궁금해진다.


‘미지’라는 것은 양자택일이다. 알지 못하여 흥미롭거나 알지 못하기에 무서워진다. 익히 알고 있는 문화권 속에서는 편안하지만 지루해진다.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문화권으로 발을 내디딜 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리는 사람도 있고, 완전히 낯선 환경으로 내던져짐에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기대하는 사람도 무서워하는 사람도 그 대상이 되는 문화라는 놈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우리는 문화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은 거의 없다.


 

 

문화와 문명: 상호 보완



문명화된 사회나 문화시민 같은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아도 대단히 문제가 되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책을 읽는 와중에서야 그 문제점을 깨달았다. 이 별것 아닌 두 단어의 깊은 곳에 “계급”과 “차별”이 숨어 있음과 이런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다. 지나친 비약이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미안하다. 사실이다.


우리가 보통 도시 문화권을 문명이라 부르는데, 근대 이전까지 시민이라는 계급은 가장 발달 된 지역에 거주하면서 그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살던 지역은 주로 “도시”였는데, 그 안에서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엘리트” 계층이 되어 피지배 계층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잔재로 우리는 지금도 문명화된 사회를 위한 “시민 교육” 따위를 행한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그 교육 앞에 시민을 붙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이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명제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의미가 된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차별과 계급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모순적인 사태가 발생해버린다.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소설책이 필요하고, 소설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제지 공장과 인쇄기가 필요하다. 문명은 문화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교회와 국가의 구성에 대하여>에서 도덕적 안녕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를 언급함으로써 문화와 문명 중 문화가 더 근본적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 문화는 자신이 일정한 정신적 기반을 대여해주려 애쓰는 대상인 바로 그 문명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다.

 

- 본문 발췌

 

 

문명은 도시의 부산물처럼 여겨지지만, 도시가 없던 시절에도 문화는 존재했다. 부족사회에서도 그 부족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 족장의 말을 따르며 우두머리가 무리를 이끌어 가던 것도 문화의 일부다. 계급 사회가 당연하던 시기에 신분의 차이가 있던 것도 문화다. 사람이 변하면서 사회도 변하니 문화가 달라졌을 뿐이다.

 

문명화된 사회를 우상화하는 패러다임이 생긴 덕택에 우리는 무의식중에 문명이 아닌 곳에서 태어난 문화를 다소 저급한 것으로 인식하게 됐으나, 모든 사람의 평등을 추구하는 지금의 사회가 추구하는 문화에 그 시절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그저 우리는 그 오류에 대한 수정이 필요함을 알아야 하며,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인지하고 어떤 모습의 문화를 언급할지 잘 선택해야 한다.

 

 


아방가르드와 관습의 공존



우리는 모순되는 것이 함께 있다는 것에서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 “아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읽을 때 미처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한탄이 더 잘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좀 더 친숙한 예시로는 짜장면과 짬뽕을 섞은 짬짜면 따위가 있다. 짜장면이나 짬뽕이냐의 갈등 속에서 태어난 위대한 유산을 마주할 때의 식도락은 중추신경에 훌륭한 자극이 된다. 동시에 가질 수 없다. 여기던 것을 동시에 갖게 됐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그 모순에서 오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술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는 아방가르드가 될 수 있으나, 생활 방식으로서 문화는 대개 관습의 문제다. 종종 예술적인 문화에서는 소수의 것으로서, 당연히 접근이 쉽지 않은 작품들이 포함된다.


- 본문 발췌

 

 

두 개만 가져도 이토록 행복한데 문화에는 그 이상의 것이 공존한다. 현재의 것을 거부하며 보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미래지향적인 것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와 역사와 전통 속에서 꾸준히 쌓여 어느 사회의 기반이 되는 관습이라는 놈은 문화라는 틀 안에서 함께 공존한다. 어떤 경우에는 진취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관습으로 자리를 잡는 일도 벌어진다. 원래 있던 것에 머무르는 것이나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나 어느 한쪽이 맞고 다른 하나는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갈등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곧 문화다.


내 경우에는 관습보다는 아방가르드 쪽에 가깝다. 늘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맨다. 심할 때는 어제는 재밌던 것이 오늘 아침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날도 있다. 작든 크든 변화는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문화를 좋아한다. 예술의 문화이건 사회의 문화이건 상관없이 문화를 좋아한다. 빠르게 변한 뒤 달라진 모습에 머물러 있다가 적응할 때쯤이면 다시 한번 변한다.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나에게 변화하는 것이 관습인 대상은 고양이 앞의 생선과 같다.


 

 

문화: 생존 수단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던 시대에서 1년이면 변하더니 이제는 한 달이면 변할 정도로 사회가 달라지는 속도에 브레이크가 없어졌다. 유연한 사고로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하는 시대가 됐다.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나 사람들의 취향 따위였지만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문화다. 내 것만을 고집하는 배타적인 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변화가 다가왔을 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몰라 살아남지 못한다. 새로운 것과 교류하는 개방적인 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애초부터 변화에 익숙하니 그 어떤 변화에도 나름의 적응법을 찾아낸다. 이것이 문화가 가진 힘이자 문화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다.

 

 

문화는 (1) 예술적이고 지적인 작업들 전체 (2) 정신적이고 지적인 발전 과정 (3) 사람들이 살아가며 따르는 가치, 관습, 신념, 상징적 실천들 (4) 총체적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일례로 ‘라플란드 문화’라고 하면 아시아계 소수민족인 라프족이 사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및 러시아의 일부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의 북부 지역, 라플란드에 사는 사람들의 시, 음악, 춤을 의미하기도 하고, 혹은 그들이 먹는 음식, 그들이 즐기는 스포츠, 그들이 행하는 종교의식일 수도 있다.


- 본문 발췌

 


문화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예술적인 것, 지식에 대한 것, 보편적 가치, 그리고 우리 삶의 방식까지 문화에 담겨있다. 그렇기에 문화를 알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동시에 공부하는 것과 같다. 쉽지는 않지만 여러 번 갈 길을 한 번에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고 다양한 것을 포용하는 능력도 키워낼 수 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기에 중간중간 실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잘못이 되기 전에 바로잡으면 될 노릇이다. 그 복잡한 과정을 끝내고 나면 우리는 문화라는 도구로 사회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차별은 어떤 것을 부당하게 비하하면서 다른 것을 왜곡해서 절대화하는 행위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교황 프란치스코보다 덜 겸손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독선적으로 트럼프를 바깥 암흑에 몰아넣는 일이고, 따라서 비차별주의라는 절대 가치를 어기는 일이 된다. 도대체 내가 누구기에 그런 권위를 가진단 말인가?

 

도대체 내 관점이 얼마나 끔찍할 정도로 전능하기에 애완용 쥐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그 쥐를 전자레인지에 집어넣는 것보다 더 낫다고 거들먹거릴 권리가 있단 말인가?


- 본문 발췌

 

 

문화를 접하고 배워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이 차별이다.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에 비해서 더 뛰어나다거나 발전됐다거나 하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을 곧잘 만난다. 그런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서 나는 통쾌함을 느껴 그대로 말해 주고 싶다. 정말 무엇이 그리 잘 났기에 평가를 할 수 있는지, 그 평가에 어떤 권위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차별이 아닌 척하는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 익숙해지면 잘못된 문화를 배워 미래의 세대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전달해야 할 것은 올바른 문화이지 잘못된 문화가 아니다.


차별하지 말라는 것은 평가하지 말라는 것과는 다르다. 모든 문화를 무작정 수용하는 태도도 올바르지는 않다. 차별과 차이를 인식하고 어느 문화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과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그 누구도 모든 문화를 다 수용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그 문화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는 선에서 내가 받아들여도 괜찮겠다 싶은 것만을 받아들이면 된다. 이 복잡한 과정을 위해서 우리는 문화를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그렇게 문화를 배워가며 결국 우리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성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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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무엇인가

 

지은이 : 테리 이글턴

 

옮긴이 : 이강선

 

분야 :  국내도서 > 인문 > 인문/교양 

 

판형 : 130 * 210

 

면수 : 216쪽 | 가격 : 15,000원

 

출간일 : 2021년 3월 8일

 

ISBN :  978-89-310-2157-8  (03100)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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