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라이브 ; 난 오늘도 달린다 [드라마]

지금을 살고 있는 청년들을, 위하여
글 입력 2021.03.1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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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러한 시간의 틈을 잠깐 빌려 유튜브를 즐겨봤다. 유튜브에서 주로 보는 내용은 영화나 드라마의 요약과 해석이다. 그래서 난 종영한 드라마를 좋아한다. 굳이 시간을 들여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유튜브를 통해 숨겨진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접한 드라마는 ‘라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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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특히나 한국 드라마를 안 본 지 굉장히 오래되었다. HBO 드라마를 좋아하는 취향 탓에 내 기억 속 마지막 화까지 챙겨본 한국 드라마는 시그널이 거의 유일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드라마 ‘라이브’가 조금 생소하게 다가왔다. 종영한 지 꽤 오래된 드라마지만 오랜만에 접하는 한국 드라마였기에 긴장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안녕, 오양촌씨


 

드라마 속 인물 간의 갈등 관계는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드라마 ‘라이브’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계 중 하나는 오양촌(배성수)과 염상수(이광수)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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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실수로 경감에서 경위로 강등당한 구(舊) 레전드 오양촌과 꽉 막힌 제 인생을 조금이라도 펴보고자 경찰이 된 염상수는 첫날부터 삐걱거린다.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오양촌의 눈에 마음만 앞선 불같은 염상수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드라마 초반에 오양촌이 염상수에게 하는 말은 정해져 있다. ‘나서지 마라’, ‘제정신이냐’ 등 칭찬의 ‘ㅊ’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투성이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 변화는 아마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사명감 하나로 온갖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경찰로 남아있는 오양촌과 그런 오양촌의 밑에서 일을 배우며 점점 사명감을 느끼게 되는 염상수는 언뜻 보면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뻔한 관계로 발전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현실은 보는 사람이 괜히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라이브’의 마지막화에서 그 관계가 절정에 달하는데, 범죄자를 옹호하는 언론에 의해 염상수는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한다. 오양촌과 피해자를 구하고자 했던 염상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다수의 여론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염상수를 향해 오양촌은 똑같은 일이 발생했을 경우, 그때는 도망가라며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진행된 징계위원회에서 오양촌은 ‘나의 사명감을 누가 빼앗아갔냐’며 울부짖는다. 나는 이것이 아마 아주 단편적인, 대한민국 경찰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범인이 위험한 도구를 들고 있었다 해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그런 와중에도 범인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경찰’이라는 직업의 어두운 뒷면이다. 결국 사건이 무엇이든 언론과 그 언론의 소비자들은 ‘탓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내뱉은 오양촌의 설움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찰’의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준다.

 

 

 

라이브가 전하는, 엿 같은 인생


 

‘인생이란 원래 엿 같은 거예요’라고 이야기하던 기한솔(성동일)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엿 같은 만큼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악용된 독직폭행으로 큰 금액을 부담하게 된 민선배가 방화와 함께 분신하려 하자, 기한솔은 엿 같은 인생이지만 술 퍼마시고 함께 털어내자. 그리고 다시 살자며 민선배를 설득한다.

 

이 장면은 현직 경찰뿐만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거친 손길로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억울한 일을 당한 날을 세는 것보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은 날을 세는 게 더 빠른 사람들이 많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 보면 저마다의 이유로 어깨가 축 처져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억울한 일을 툭툭 털어버리고 싶은데, 그렇게 쉽게 털어지는 건 억울한 일이 아니다. 곱씹고 곱씹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럴수록 더욱 억울하기만 한 일들로 가득 찬 하루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모두에게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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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인생 1회차이기에 서툴 수밖에 없다. 서툴고 힘들고 억울한 삶의 연속일지라도 대충 털고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그 일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되어있지 않을까.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건 쉽고 그 일로 인해 남겨진 ‘나’는 어렵다. 바쁜 하루 보내기도 힘든데 지쳐버린 ‘나’를 달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한솔이 남긴 메시지는 더욱 특별하다. 멋진 말들의 나열은 아니지만, 우리 인생 아직 안 끝났으니 다시 이 엿 같은 인생에 발 담가보자는 기한솔의 말은 죽어가는 불씨에 땔감을 던져준 것이다. 엿 같은 인생에 대한 기한솔의 짧은 고찰, 그리고 더 짧은 해결책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엿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라이브(活), 라이브(生)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라이브’도 100% 완벽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페미니즘 논란도 있었고 경찰 미화 논란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드라마 라이브를 추천한다. 18부작이라는 짧은 드라마 안에 많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며 현실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힘든 경찰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라이브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슬픔을, 분노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그 많은 사람을 위로로 다시금 감싸 안는다. ‘여자’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불리한 질문을 받은 정오, 어렸을 때부터 구겨질 대로 구겨진 인생 한번 펴보고 싶은 상수, 옳은 일을 했을 뿐인데 강등당한 양촌, 그 외에도 저마다의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많은 등장인물. 그 등장인물들을 넘어 TV 밖의 사람들까지 가득 껴안은 ‘라이브’는 손이 닿는 부분까지 그들을 향해 투박한 손길을 건넨다.

 

‘라이브(Live)’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그중에서도 난 라이브를 ‘살다’와 ‘생’으로 정의하고 싶다. 생방송 할 때의 ‘생’, 그리고 현재를 보내고 있다는 것의 ‘살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많은 청년에게 ‘라이브’는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박수를 받은 청년들은 다시금 털어낼 힘을 얻게 된다. 다시 또 이 순간을, 살기 위해서.

 

 

[안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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