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8살, 무직, 잠시 휴식기를 갖겠습니다 [TV/드라마]

나기와 함께 휴식을, 드라마 <나기의 휴식>
글 입력 2020.11.0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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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왔느냐.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가위바위보!

 

 

어린 시절 한 번쯤은(혹은 수도 없이) 불러봤을 이 노래의 이름은 ‘꽃찾기놀이’라고 한다. 이 놀이는 누가 먼저 상대 팀을 전부 자신의 팀으로 데려오게 될지, 팽팽한 신경전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게임이다. 한편으로는 상대 팀이 가위바위보에서 이겼을 때 끝내 선택되지 못할까봐 내심 마음 졸이게 만들기도 했다.

 

여기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마지막까지 지목받지 못할까봐, 무리로부터 소외될까봐 두려워하던 어른이 있다. 예를 들면 ‘꽃찾기 놀이’에서 상대 진영으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언제쯤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지 계속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사는 어른인 것이다. 그의 이름은 나기.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는커녕 상대방의 말에 무조건 동의한다. 사람들과 모여 있을 때 모임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심하다가 결국 어설픈 동조의 반응을 취하는 인물이다.

 

 

나기 변신 전.jpg

 

 

자신을 감추고 사람들에게 맞추는 삶을 살아가던 나기는 결국 회사에서 과호흡으로 쓰러지게 된다. 드라마 <나기의 휴식은>은 쓰러진 일을 계기로 달라지기 위해 나기가 보내는 여름 한 철 휴식기를 담았다. 나기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는 동안 여름휴가를 즐기듯 볼 수 있는 드라마이다.

 

 

 

공기를 읽지 않아도 괜찮아



드라마를 보다 보면, ‘空気を読む(공기를 읽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을 번역하면 ‘공기를 읽다’는 직역이 아닌, ‘분위기를 읽다’는 의미로 번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분위기 파악, 눈치 보기 정도의 의미로 유사하게 표현되는 말이다.

 

공기를 읽기 위해 과하게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자신의 언행을 끊임없이 검열하는 ‘나기’의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는 자기 자신 모습 일부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타인과 사회에서는 우리에게 눈치를 좀 챙기기를, 분위기를 잘 파악하기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요구한다.

 


“저는 여태까지 아무것도 안 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늘 내가 주변의 테스트에 붙을지 떨어질지 마음 졸이면서 저만 봤던 것 같아요.”
 

 

2화에 나오는 나기의 대사이다. 나기가 휴식기를 갖기 전 얼마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왔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주변의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세상과 타인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해왔을까. 회사와 집, 자신의 인간관계를 포함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온 나기의 선택은 ‘공기를 읽다’는 표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여정인 동시에 이 표현이 관용적으로 쓰이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나타낸다.

   

 

 

오로지 ‘나’로 서기



<나기의 휴식>은 여성 혐오적 표현과 여성연대가 공존하는 드라마이다. 이 측면들을 보여주는 두 개의 커다란 관계성은 (결과적으로) 나기의 성장을 돕는다. 먼저 첫 번째 관계는 주인공 ‘나기’와 전 남자친구 ‘신지’ 그리고 옆집 이웃 ‘곤’과의 관계이다. 이 셋의 관계는 나기를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의 긴장감으로 ‘과연 나기가 어떤 남자와 이어질까?’라는 로맨스 요소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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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는 나기를 사랑하지만 솔직하지 못한 인물로 그려지며 나기가 휴식기를 갖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인물이다. 대외적으로는 완벽한 ‘인싸’인 신지가 여자친구 앞에서는 폭군과 다름없다는 설정으로 인해 나기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은 일본 사회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전통적 여성성의 가치가 투영된 것으로 느껴진다. 곤은 신지로 인해 힘들어하는 나기를 보듬어주는 인물로 극 초반에 등장하지만, 결국 곤 역시 나기를 포함해 많은 여자를 가볍게 생각해온 바람둥이임이 드러난다.

 

이 둘이 나기를 대하는 언행은 다소 여성 혐오적 표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각자 자신이 나기를 대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성장하는 인물이다. 신지의 경우, 자신이 나기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곤 역시 나기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여태껏 자신이 느낀 적 없던 사랑임을 깨닫고, 과거와는 달리 나기를 가볍게 대하지 않고 진심 어린 방식으로 대하기 위해 변한다.

 

이 두 인물의 변화와는 별개로 나기가 결말에 이르러 홀로서기를 택하는 것은 나기의 성장을 의미한다. 나기는 신지와 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그동안 신지를 신지 자체가 아닌 완벽한 남편감을 만난다는 만족감을 바탕으로 바라봤음을 인정한다. 또 곤과의 (유사) 연애로부터도 자유로워지며 두 인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한다. 이는 나기가 드디어 누군가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홀로 섰음을 증명하며 나기가 더는 누군가의 ‘공기’에 맞추며 살아가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공기를 위해 살아가기 위해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나기의 휴식>에서는 악역도 성장한다. 물론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라고 함부로 그들의 사연에 이입하여 신지가 나기에게 했던 언어 폭력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기와 휴식>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이루고, 그 관계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든다. 이 공동체 안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며 그 공동체 안에서 결함을 보이던 인물들도 결국에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나아간다.

 

 

   

여자들의 연대 공간, 엘레강스 팰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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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나기의 성장을 돕는 관계는 바로 엘레강스 팰리스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엘레강스 팰리스’는 나기가 세상과 타인의 ‘공기’에 맞추다가 질식하지 않도록 돕는 공간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나기가 엘레강스 팰리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의 연대가 돋보인다. 나기가 가지고 있던 곱슬머리 콤플렉스를 극복하도록 도와준 초등학생 우라라,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워킹맘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우라라의 엄마 미스즈, ‘잔돈 찾는 할머니’라고 불리지만 말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와 함께 영화를 보여주는 미도리 할머니, 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나 서로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사카모토까지. 나이를 뛰어넘은 이들의 우정을 통해 위로받고 진정한 관계를 쌓아가는 공간인 엘레강스 팰리스 안에서 나기는 이들에게 위로받고 때론 도와주며 변화를 꿈꾼다.

 

마지막에 이르러 엘레강스 팰리스는 철거된다. 연대 공간이 무너지는 일은 분명 안타까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니다. 나기를 포함하여 각자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한때 한 공간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홀로 잘 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나기는 휴식기를 통해 과거의 인연과는 청산하며 변화를 꿈꾸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과 우정을 통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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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왔니?” 그건 선택받는 놀이가 아니라 원하는 아이를 선택하는 놀이라고 생각해. 두려워 하지 말고 네가 선택하면 되는 거야. 그러는 게 인생이 훨씬 더 즐거울 테니까.
 

 

소심한 어른, 나기의 휴식은 자신이 세상과 타인으로부터 선택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면서 끝이 난다. 우리 모두 절실하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에 과감하게 나기처럼 과감하게 떠나버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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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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