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토록 한국적인, 이토록 아픈, 이토록 근사한 - 새들의 무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뛸 거야, 연극 <새들의 무덤>
글 입력 2020.10.1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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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새들의 무덤>은 올해 초연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10년은 더 올린 극처럼 농익은 극이었다. 재연, 삼연, 사연 아니 돌아오는 해마다 만나고픈 이야기다. 아직도 극장에서 받은 충격과 설렘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글을 쓴다.

 

 

 

텅 빈 극장을 가득 메우는 심장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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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들어가면 보이는 무대이다. 소품 하나 없이 껌껌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펼칠 수 있으려나 싶다.
 
그러나 2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 깜깜한 무대는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가 되기도 하고, 샤머니즘이 가득한 마을 한복판이 되기도 하고, IMF로 힘든 미싱 사업장이 되기도 한다. 변변찮은 소품 하나 없이 공간의 마술을 부리는 배우들의 연기가 기가 막히다.
 
특히나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진도 씻김굿을 재연하는 현장에서는 오롯이 배우와 관객들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만으로 극장이 가득 찬다. 이전에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큰 홀에서 처음 들었을 때만큼의 경이와 황홀경이었다.
 
극 자체의 이야기도 좋지만 두근거림으로 가득 찬 현장의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단 이유로도 몇 번이고 추천하는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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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진도 씻김굿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뛸 거야

 

이야기는 딸을 잃은 한 남자가 ‘새섬’이 보이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을 과거의 기억으로 자꾸만 안내하는 작은 새를 만나 따라가며 이어진다. 계속해서 그의 기억에 등장하는 ‘새섬’은 새들이 다다르려 하는 공간이라는 사실과 그곳에서 자유로이 나는 새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자유와 희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자유와 희망의 상징인 ‘새섬’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새섬’으로 향하는 이들은 대개 죽거나, 아픔을 간직한 채 돌아온다. 관객들은 주인공 ‘오루’와 함께 1968년의 ‘새섬’부터 차근차근 알아가며 과연 오루가 찾아온 2020년의 ‘새섬’에는 어떤 아픔이 숨어있을지 내내 의문을 가지고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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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부터 이데올로기의 대립, 민주화를 위한 희생, 또 한창 가속화되는 산업화 시기에의 가치관 혼란, IMF의 절망, 그리고 주인공 ‘오루’의 딸이 죽게 된 사건까지. ‘새섬’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벅차오르는 슬픔의 가슴을 주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아픈 이야기임에도 계속 극을 생각나게 하는 데에는 해학과 풍자를 잃지 않은 세련된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베테랑급 배우들의 연기가 큰 몫을 한다.
 
각 사건이 끝나고 배우들이 이동하며 추는 우스꽝스러운 안무는 또 관객들이 사건에 과하게 몰입하거나 너무 심각해지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또 사건의 시간을 역순행적으로 연출한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오루’를 인도하는 아기 새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극을 따라가게 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모든 배우들 다 쫀득하고 농익은 연기를 펼쳐 보여줬지만 연극을 보았다면 특히 아기 새 역할을 소화한 박채린 배우의 연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관객들 모두 분명 그녀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를 완전히 ‘아기 새’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씻김굿에서 열연을 하는 김현 배우 역시 극을 몇 번이고 보고 싶게 하는 매력을 더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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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한국적인, 이토록 아픈, 이토록 근사한 연극은 처음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새섬’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또한 이제부터는 아무도 죽거나 아프지 않고 ‘새섬’에 다다를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tip_연극을 보기 전 무대 앞에서 파는 연극자료집을 구매하고 보면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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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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