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토록 폭력적인 고요라니 - 고요한 인생 [도서]

작은 바람도 용납되지 않는, 출구 없는 절망의 기록
글 입력 2020.09.13 14: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20200813221105_rsakgzsv.jpg

 

 

신중선의 단편 소설을 모은 <고요한 인생> 속 작품들은 그야말로 전망이 결여된 삶의 이야기의 나열이었다. 각 단편에 나름의 제목을 달아 감상과 해석을 전한다.

 

 

 

'고요한 인생' - 이토록 폭력적인 고요라니


 

읽는 내내 천사의 얼굴로 자신만의 고요를 위해 악마 같은 짓도 서슴지 않는 주인공 ‘수은’이 더 폭력적인 걸까, 아니면 자식을 원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제대로 사랑 한 번 받지 못한 수은의 삶의 고요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더 폭력적인 걸까 생각해야 했다.

 

수은이 원하는 삶의 '고요'를 위해서는 많은 제거가 필요했다. 얄미운 언니가 그랬고, 자신에게 바비인형을 사준 고등학생 오빠와의 부적절한 장면을 목격한 같은 반 학우가 그랬고, 걸림돌만 되는 구질구질하게 가난한 부모가 그랬고 새로이 만난 부모가 아끼는 강아지들이 그랬다. 그래서 수은은 고요한 삶의 걸림돌을 아주 조용히 차근차근 처리한다.

 

주인공의 여러 만행을 접하고 나니 그동안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수은'이 치명적인 금속원소 중 하나인 '수은'과 겹치게 들렸다. 수은을 '너'라고 일컬으며 내내 이야기를 들려주던 서술자의 독특한 관찰시점도 독자로 하여금 수은에게 거리감과 동시에 기분 나쁜 친밀감을 느끼게 해 묘한 감정이 든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목소리가 들려주는 수은의 행동을 따라가며, 나는 작품 속 다른 인물들처럼 수은이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작 고요한 삶을 위해? 이 친구 완전 사이코패스인데?

 

물론 수은이 고요하게 잔혹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에 잠기고 나니, 사실은 수은을 이렇게 고요한 폭력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더 폭력적인, 우리가 폭력이라 느끼지 못해서 더 폭력적인 환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많은 것들, 예컨대 부모의 무심함이나 학우들의 은근한 따돌림, 보장되지 않은 생활환경 등이 사실은 수은의 행동들보다도 더 폭력적일 수도 있었음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은이 다쳤다는 사실보다는 부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목단이 수놓아진 옥당천이 찢어진 것을 더 슬퍼하고 도박에 눈이 멀어 가정일을 소홀히 하고 소아마비로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딱하게만 보는 그런 행위들이 얼마나 고요하게 폭력적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또 그동안 어려운 환경을 딛고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를 쓴 사람들과 비교하며 불우한 환경 '탓'을 하며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해온 나의 가볍고 고요한 판단의 폭력이 부끄러워졌다.

 

너는 많은 욕심은 없었다.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면서 책 읽으며 아주 고요한 삶을 영위하는 것, 엄마 돈을 몰래 훔쳐내는 아버지 없이, 단지 다르게 생겼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 따돌림당하지 않고 교양 넘치는 식탁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것, 그 정도만 충족되면 더 바랄 게 없었다. _28쪽

 

그러니까 나는, 이런 '너'의 바람을 '많은 욕심'이라 치부하는, 어쩌면 '너'보다도 더 고요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아들' - 담담하고 꿈결 같은 성장의 서사



서커스의 공중그네를 소재로 해서인지 꿈결처럼 환상적이고 주인공 아버지의 구두에 쌓인 뽀얀 먼지처럼 아련했다. 개인적으로는 작품들 중 가장 따뜻했다.

  

얘야, 나는 겁이 났다. 겁이 난다는 것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얘기지. 잃을 것이 없는 사람한테 겁이란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내게 소중한 것은 바로 너였다. 내 육신이 네게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까 봐 나는 그것이 정말 겁이 났다. 너를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 떠났으며, 떠한 네 기다림을 종식시켜주기 위해 돌아왔다. _66쪽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도망쳤다고 했지만, 그건 본인 스스로에 대한 도망이기도 했다. 네 기다림을 종식시키기 위해 돌아왔다는 구절에서 아버지는 결국 네가 자유롭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자유롭지 못했다.

 

소리개의 비유가 기억에 남는다. 전에 어떤 동물로 환생하고 싶냐는 엉뚱한 질문에 지인이 소리개(솔개)로 답한 적이 있다. 이유는 작품에서 나온 대로 마흔이 되면 죽어가든가 고통스러운 갱생 과정을 거쳐 새로 태어나든가 하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는 늙어서까지 살았지만 그것은 사실 죽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결정의 마흔의 순간에 도망쳤기 때문에.

 

하지만 아들의 인생은 다를 것이다. 어머니를 죽게 하고 아버지를 다치게 한 공중그네를, 다시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트라우마를 이렇게 섬세하고 세련되게 다룰 수 있다니. 작품들 중 단연 최고였다.

 

 

 

'언니의 봄' - 죽음과 삶, 봄과 여름이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코미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작품은 기가 막히게 묘사한다. 작품 속 '언니'의 가족들은, 언젠가는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지, 하고 미루며 산다. '언니'는 점점 죽어가는데 가족들은 그것도 모른 채 계속 산다. 가족들이 '언니'의 묘지에 가는 길도 의외로 생기롭다. 산 사람은 또 어떻게든 산다, 는 그 담담하고 냉정한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여름은 늙어 지쳐서

잔인한 두 손을 축 드리우고

허하게 산야를 바라본다

이제는 끝났다

여름은 그의 불꽃을 다 날려 버리고

그의 꽃을 다 태워 버렸다.


(중략)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단념하고

드러누워, 창백한 손을

싸늘한 죽음에게 주어

이제는 듣고, 보지 않으며

잠들어...... 사라져...... 가는......


_91쪽 헤세의 「여름은 늙어」 부분

 

잔인한 삶. 늘 봄의 이사를 꿈꾸며 성실하게 살아온 언니의 잔인한 삶. 봄의 이사는, 죽음으로나 이루어질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언니에게 희망의 봄은, 늘 그렇게 절망으로 지나가고 결국 헤세의 시처럼 죽음 같은 여름만 내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언니는 어쩌면 다시 그 늙은 여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봄에 마지막 이사를 간 모양이다.

 

 

 

'언더독' - 개보다 못한 인생


 

주인공의 모습에서 한복남의 노래 '빈대떡 신사'가 들리는 듯했다. 주인공 '갑석'의 어머니는 아들들이나 남편의 부름에 늘 '개밥 줘야 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가지 않는다. 그녀는 그 핑계를 무척 뿌듯해한다고 묘사되어 있는데 아마 본인의 삶이 가족들에게 희생당한 것에 대해서 그들을 개보다 못한 존재라고 은연중에 표현한 것으로 작은 복수를 했다고 희열을 느낀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주인공 갑석은 출국하는 형의 달라진 아우라에 개보다 못한 기분을 느끼며 술을 마신다. 취기가 오른 그는 개보다 못한 짓인 도둑질까지 하게 된다. 어설픈 도둑질. 결국 잡히게 되고 그에게는 도둑질마저 허락되지 않는다. 이후 복권을 사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떤 시도로도 개보다 못한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작품은 주인공이 아들의 콘택트 렌즈만은 해주리라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맺는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아들의 콘택트 렌즈를 바꿔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언더독(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약자)'이기 때문에.

 

 

 

'낮술' - 낮술을 기울일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은 오징어처럼 두 팔을 뻗어 사랑하길 바라고


 

평일 낮,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 하는 처지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 백수나 프리랜서 정도 일 것이다. 작품에선 전자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러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백수들은 모여 그럼에도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꿈꾼다.

 

크게 바라는 거 없이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주인공에게 그건 운 좋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지인의 목소리가, 마치 절망을 익숙하게 세뇌시키는 세상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러던 중 생뚱맞게 오징어에 대한 열띤 토론이 오고 간다.

 

"그게 아니래요. 오징어 다리는 열 개가 아니라 여덟 개라고 해요. 유독 길게 뻗은 두 개는 다리가 아니라 더듬이 팔이라던데? 오징어 팔은 먹이를 잡을 때나 사랑을 나눌 때 사용한답니다." _127쪽

 

오징어의 꿈은 먹이(일)와 사랑이었을까? 긴 두 팔로 그러안고 싶어 하는 먹이와 사랑. 그러니까 백수도 사랑을, 삶을 꿈꿀 수 있다. 하물며 오징어도 꾸는데!

 

 

 

'아이 러브 유' - 그 한마디가 그렇게도 간절했던


 

주인공이 원한 것은 현관 참의 인형만이 해주는 '아이 러브 유' 한 마디. 그러나 인형이 아닌 사람의 온기가 깃든 한 마디의 '사랑' 뿐이었다. 결혼이라는 최대 희망이 스러진 그녀는 남편이 주지 못하는 사랑에 허기져 밤마다 채팅창 너머의 누군가에게라도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다 그녀는 그 모습을 들켜 남편에 의해 '본성이 독사'인 여자가 되고 만다. 남편은 채팅창이 아닌 육체로 다른 사랑을 느끼고 다니면서도 '본성이 독사'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남편의 아이를 뗀 그녀가 도피하듯 찾아간 곳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환상의 술집 '1129'였다. 술집 간판이 1129인 이유는 아마 112,119 즉 도움을 갈구하는 시그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꿈꾸는 1129 술집은 사실 11층 1129호, 본인의 집이었고, 그녀가 열어젖힌 문은 아마 바깥으로 향하는 창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달려오는 트럭에 치여 몸도 마음도 산산조각 난다.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의 구원이 있었다면 그녀는 그렇게 산산조각 나지 않았을까? 그러나 함께 뛰어든 현관문 앞 인형의 동강 난 허리에서 무의미한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소리만이 그녀를 위로하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의 구원이 허락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집 앞' - 어쩌면 환청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작품은 철저하게 사회에서 외면당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지만 어쩌면 자기 자신을 고립시킨 것이 다름 아닌 남자 본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그를 소외시킨 것은 분명 세상이 맞았으나 점점 그는 자신이 만든 '불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가 전화 벨소리 환청에 훔친 것은 시집 두 권이었다. 좀 돈 되는 걸 훔칠 법도 한데 그는 시집을 훔쳤다. 그의 삶에는 의미가 비어있었던 것이다.

 

남자의 오랜 부재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전화는 걸려온 것이 없었다. 남자는 절망했으며 절망하는 자신에게 재차 절망했다. _185쪽

  

‘의미 있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는 걸 보면 의미 없는 전화는 수없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앞서 그가 환청이라 생각했던 전화벨들은 실제로 울렸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에게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기다리던 의미 있는 전화가 왔을 때에도 남자는 자신을 고립시키느라 전화벨을 듣지 못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소외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스스로의 고립을 낳았다. 삶의 의미가 간절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만든 고립으로 다가온 의미마저 차단한다. 결국 그는 그가 바래 마지않던 의미마저도 놓친 채 또다시 떠돌게 된다.

 

*


책 <고요한 인생> 속 모든 작품들은 작은 바람도 용납되지 않는, 출구 없는 절망의 기록 같았다. 주인공들은 작은 희망조차도 철저히 좌절되는데 작품은 고요하게, 담담하게 때론 환상적으로 그 좌절을 기록한다.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익숙해져 절망 인지도 몰랐던 일들을 고요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희망을 쫙 뺀 절망의 서사는 독자로 하여금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리얼리즘적인 전망의 결여는 현실을 이겨낼 힘을 주진 못하긴 해도 고요하고도 잔인한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데에는 아주 즉효다.

 

 

※ 대표사진은 김환기의 작품 <고요(Tranquillity) 5-IV-73 #310>로 본문과는 무관한 사진이다.

 

 


다운로드.jpg

 

 



[이강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20442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