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읽는 내내 신맛이 났다 -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도서]

레몬 조각을 넣은 탄산수를 삼키듯, 목이 조금 아팠다.
글 입력 2020.07.2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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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표지를 열고 저자소개를 읽었다.

 

‘김록인. 레몬-라임을 좋아해서 해마다 제주 레몬이 나는 겨울, 제주 라임이 나는 초가을을 기다린다. 소설을 많이 읽고 조금씩 쓴다. 꼭 필요한 낱말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없애기 시작하자 글이 점점 짧아졌다.’ 깔끔하고 명확한 글일 것 같아 기대가 됐다.

 

 

 

독특한 구성에 대하여



레몬라임_표지.jpg

 

 

책은 총 두 소설로 이루어진다. 표지가 앞 뒤로 다르며 중간에는 글쓴이와 그린이의 대화록도 있어 구성이 알차다. 깨알같이 김록인 소설, 노경무 그림 - 노경무 그림, 김록인 소설로 순서를 다르게 써놓는 것도 재밌다.

 

 

"줄곧 레몬이나 라임을 소재로 무언가를 쓰고 싶었습니다. 너무 시어서 괴로운데 동시에 맛있기도 하고, 그런 오묘함이 인생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 100p. 작가들의 대화 중

 

 

상큼시큼한 레몬과 라임을 담고 있는 제목이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레몬, 라임은 우리의 시고 맛있는 인생인가 보다.

 

 

 

핑거라임부터 읽어야지.


 

페이지를 슥슥 넘겼다. 이야기가 시작됐다. 핑거라임이라는 짧은 소설은 상담사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약속을 나가는 길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한 첫 몇 장에 빠져들었던 나는 친구들을 만나자마자 빠르게 말했다. “야, 나 이거 읽기 시작했는데 재밌다. 핑거라임이라고 엄청 충격적인 신맛의 과일을 먹이는 상담요법에 대한 글인데. 머리까지 고정시키고 먹게 한다는데?“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약물 치료, 인지 치료, 미술 치료, 언어 치료, 음악 치료를 두루 거치고도 차도가 없어서 상담사의 권유로 핑거라임 요법 시술을 받으러 온다. 시술을 할 때에는 먼저 의뢰인을 긴 의자에 눕히고 눈을 가린다. 의자에 설치된 헬멧을 씌워 머리를 고정한다. 태아 시절에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와 비슷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바로크 음악을 작게 튼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의뢰인에게 핑거라임 요법을 설명한다. 49p.

 

이실직고하자면 그 때까지 소설인 줄 몰랐다. 김록인 소설 이라는 글을 표지에서 봤지만 책을 읽는 동안 너무 실제에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와 진짜 이런 상담방법도 있나 보다 하고 순진하게 생각했을 뿐.

 

이 글의 마지막장에서야 소설이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에게 황당한 기분이 들어 ‘소설인 줄 몰랐다.’라고 연필을 들어 적어 놨다. 물론 중반부에서부터 슬슬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만 소설이 워낙 짧아서. 일반적인 단편 소설의 분량인 70매의 절반 가량이라고 하니.

 

 

소설인줄몰랐다.jpeg

 

 

이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면, 제한된 횟수의 핑거라임 요법 시술을 받은 의뢰인이 불청객으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토로하는 것. 작은 소음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가 몇 년 전 산 귀마개로 완벽히 소음을 차단하고 지냈다는 것. 어느 순간 귀마개에서 어머니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

 

듣고있으면 마음이 아팠지만, 귀마개를 빼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아 빼지도 못했다는 것. 그 굴레의 해결책은 핑거라임이라는 것.


라임을 먹으면.jpg

핑거라임을 먹었을 때의 감정을 그려보자

 

 

고통을 잊게 해주는 핑거라임. 작가는 고통으로 고통을 덮는다라는 주제로 쓴 세 편의 이야기 중 하나라고 <핑거라임>을 설명한다. 신맛에 질색하는 나이기에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래 그렇게 신맛이라면 정신이 번쩍 들고 아무 생각도 안 나겠지.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아 시다, 이거 정말 너무 시다. 너무 셔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정도가 아닐까. 지속되던 고통을 신맛이라는 고통으로 잠시 끊어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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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라임과는 다르게

핑거라임은 저렇게 알알이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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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라임 이렇게 생겼다.

 

 

 

이젠 레몬청 만드는 법 읽어야지.


 

책을 잠시 덮고 뒤집어 반대쪽 표지를 열었다. 이번에도 김록인 소설, 노경무 그림의 레몬청 만드는 법이다.

 

이 소설들은 영문 버전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레몬청 만드는 법>은 영어로 먼저 썼다고 한다. <핑거라임>은 한국어로 쓴 뒤에 영어로 옮겼다고. 그래서 그런지 <레몬청 만드는 법>의 영문 버전은 살짝 다르다. 첫 다섯 페이지 정도만 영어로 읽었는데 아주 조금의 설명이 더해진 정도.

 

<레몬청 만드는 법>은 태국식당에 일하는 사람이 지켜보는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아저씨는 음료 만들기에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었고, 태국식 커피, 태국식 홍차 그리고 레몬차가 메뉴에 있었다고 한다. 레몬청은 직접 만들기 때문에 화자 또한 이곳에서 일하며 레몬청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레몬라임책_내지8-9.jpg

 

 

일요일에 문을 여는 식당이 많지 않아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였다.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고, 커피를 담은 보온통이 비었다. 그녀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다시 계산대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보면서도 보지 않는 것처럼 텅 빈 표정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레몬청이 담긴 유리병을 가리켰다. 17p.

 

항상 연인과 오던 손님이 어느 날 홀로 가게를 찾는다. 그러고는 레몬차 한 병을 달라고 주문한다. 여지껏 그런 주문은 들어온 적이 없어 당황했지만계속 차를 따르고 그 잔의 수만큼 계산을 하자고 답한다. 그 손님은 혼자 앉아 열세 잔의 레몬차를 비웠다. 우두커니 앉아 비우던 열세 잔.

 

<레몬청 만드는 법>은 타인의 아픔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달고 신 레몬차 열세 잔에 담긴 아픔은 내가 짐작할 수 있을까. 윤동주 시인이 별을 하나씩 짚어보며 이러저러한 것들을 떠올렸 듯, 내리 비워내던 레몬차 한 잔 한 잔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진 않을까. 적어도 그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느낀 감정이라든가 생각은 조금씩 변했겠지. 안정을 찾았다든가 혹은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든가.

 

*

 

정말 상큼한 소재고, 상큼한 색의 표지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필요한 단어만 남은 글은 깔끔하게 읽힌다. 꿀꺽꿀꺽 레몬조각을 넣은 탄산수를 마시듯. 다 삼킨 후에 목에 걸리는 그 느낌처럼 끝이 따가웠다.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 나는 레몬 조각에 이를 깊이 박았다 -


지은이
김록인 글, 노경무 그림

출판사 : 바다는기다란섬

분야
한국소설

규격
118*177mm, 양장본

쪽 수 : 112쪽

발행일
2020년 06월 30일

정가 : 11,000원

ISBN
979-11-961389-2-9 (02810)





저자 소개


글쓴이_ 김록인
 
레몬-라임을 좋아해서 해마다 제주 레몬이 나는 겨울, 제주 라임이 나는 초가을을 기다린다. 소설을 많이 읽고 조금씩 쓴다. 꼭 필요한 말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없애기 시작하자 글이 점점 짧아졌다. <레몬청 만드는 법 / 핑거라임> 이후 동물 실험에 관한 짧은 소설을 작은 책으로 낼 예정이다.
 
 
그린이_ 노경무
 
자신을 돌보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했다. 그림책 <불에서 나온 사람>과 만화 <불안을 걷다>는 아픈 몸을 살아 내는 이야기다. 여행을 좋아해 틈틈이 쓰고 그려 여행 에세이 <남해여행자>를 내기도 했다. 현재 애니메이션을 공부 중이다.
 

 

 

 

[우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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