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잔잔한 힐링이 필요할 때 방문하세요, 카모메 식당으로 [영화]

글 입력 2020.06.13 23:3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바쁘고 시끌벅적한 세상 속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소소한 일상을 원하면서 그곳으로 회귀하려 한다. 잔잔하지만 울림을 주는 무언가를 마주할 수 있는 동시에, 진정한 휴식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그 어딘가로. 그 장소는 우리 주변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낯선 곳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삶도 왜인지, 그러한 단계에 서서히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보고 싶었던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며 나름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더하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거나 누워있으면서도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재미없어 보일지 몰라도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과 움직임을 소비하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아직 진정한 행복에는 도달한 것 같진 않지만, 방향을 설정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현재의 나와 같이, 카모메 식당의 등장인물들 또한 소소하면서도 가치 있는 나날을 각자의 방식대로 찾아 나간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다른 곳으로부터 왔지만, '행복한 삶'에 대한 비슷한 철학을 지니면서 연대하고 함께 힘든 인생을 헤쳐나간다. 그들은 알고 지내왔던 사이가 아닌데도, 서로를 보듬어주며 세상으로부터 비롯된 개개인의 상처를 자연스레 치유해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특정돼있지 않다. 다만,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다. 각자의 삶을 나름의 방식대로 거쳐온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을 어떻게든 잘 헤쳐나가려는 그들의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편안하고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려는 생각과 태도, 그게 바로 등장인물들이 지닌 가치관이다.

 

 

 

삶의 공동체가 된 낯선 사람들


 

d.PNG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카모메 식당. 이곳은 야무진 일본인 여성 사치에가 경영하는 조그만 일식당이다.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달 째 파리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 그래도 꿋꿋이 매일 아침 음식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언제쯤 손님이 찾아올까?

 

일본만화 매니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찾아와 대뜸 '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를 묻는가 하면,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이곳까지 왔다는 미도리가 나타나는 등 하나 둘씩 늘어가는 손님들로 카모메 식당은 활기를 더해간다. 사치애의 맛깔스런 음식과 함께 식당을 둘러싼 사연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는데.

 

 

핀란드의 어느 작은 항구도시에 식당을 연 사치에는 조그마한 일식당을 개업한다. 화려하고 비싼 음식이 아닌, 가정식처럼 한 끼 식사용으로 오다가다 먹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소박한 음식을 만드는 사치에는 가게 운영에 있어서도 사람들에게 일상의 가치를 전해주려 한다. 하루마다 먹는 끼니의 소중함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감, 혼자 먹든 여럿이 먹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는 '식(食)'의 본질적인 의미를 말이다.

 

카모메 식당을 마주한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가기를 망설이거나, 호기심은 있지만 바깥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그건 부정의 의미가 아닌, 탐색의 과정이었고 사람들은 카모메 식당의 온기에 서서히 스며들며 깊숙이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게에 방문한 사람들은 허기를 채운 뒤 그 자리를 떠나는 것에서 관계를 끝맺음하는 게 아닌, 인정 많은 주인 사치에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간다.

 

식당에 방문한 모든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한 가지씩은 반드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빠른 속도로 관계를 맺으며 삶의 공동체로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할 수 있었을 듯하다. 그들은 개개인의 마음속에 묵혀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거나, 혹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어 사적인 이야기에 대해 더 이상 묻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함께해줄 뿐이다.

 

 

q.PNG

 

 

카모메 식당의 주메뉴는 간단한 주먹밥이다. 조리법이 다른 음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쉽고 재료도 많이 필요하지 않은, 그래서 어쩌면 그리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주먹밥. 그러나 영화 전반에서의 주먹밥의 존재는 여러 사람을 환영하면서 한 식탁에 모이게 하고, 같은 맛을 느끼며 교류하도록 해준다. 그러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식(食)'을 충족해주며,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게끔 자연스레 유도해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보잘것없어 보여도, 사람들 간에 가장 필요한 가치인 소통의 원동력을 구현하는 데 비유적으로 주먹밥이 사용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순간적인 만족감을 주는 사치스러운 음식보다도 허기짐과 허전함을 동시에 채워주며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무르는, 진정한 소울푸드인 주먹밥이 사람의 마음을 보다 더 확실히 충족시켜주지 않을까?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등장 요소들은 하나같이 화려함과 보여주기식보다는, 진정한 행복과 가능성을 품어가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하고 섬세하게 풀어나간다.

 

 

 

담담하게 건네는 인생의 이야기


 

qqq.PNG

 

 

사치에가 담담하게 읊은 대사처럼, 외롭고 슬픈 사람은 세상 어디를 가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외롭고 슬픈 존재일지도 모른다. 기쁜 나날과 함께, 힘들고 지친 나날도 그만큼 많고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 뿐이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또한, 사람들은 개개인의 크고 작은 외로움을 지녔기에 각자가 느끼는 외로움의 정도가 다를지라도, 다른 이의 감정을 어느 정도 헤아리곤 한다. 그리고서 더 나아가 그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며 기꺼이 함께해주기도 한다.

 

위로하고 공감하며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더욱 돈독해지고 그렇게 공존해간다. '같이의 가치', 혼자가 결코 아닌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카모메 식당>의 잔잔함이 선사해주려 한 바가 바로 그러한 메시지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을 듯하다. 담담하게 건넸지만, 꽤 커다란 울림이 전달됐던 영화의 대사들은 인생의 주옥같은 언어이자 메시지로 다가왔다.

 

 

 

잔잔한 힐링이 필요할 때 방문하세요, 카모메 식당으로


 

qr.PNG

 

 

잔잔하면 지루하기도 하고, 큰 깨달음을 즉각적으로 전달받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더디게 전달되더라도 그 의미가 확실하게 다가오는 메시지가 있다면 기다려볼 만하지 않을까?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들도 하루마다 그에 따른 삶의 가치를 소소하게 축적해나가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본인의 철학에 부합하는 삶의 이상향을 찾아 나갔다. 비록 물질적이지 않아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 간에 나누었던 따뜻한 정과 이야기는 각자의 인생을 가치 있게 해주었다.

 

우리 역시 그들처럼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찾아 직접 실현해보는 건 어떨까? 그게 꼭 화려한 것이거나 물질적이지 않아도 된다. 또한, 그것을 탐색하고 실현해나갈 사람이 여럿이거나 혼자여도 상관없다. 그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이 직접 택하는 이정표일 뿐이다. 그렇게 각자가 생각하는 삶의 철학과 부합하는 그 무언가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면, 잔잔한 힐링을 마주할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개개인의 잔잔한 힐링을 위해 방문할 각자의 카모메 식당에는 과연 어떠한 모습이 자리하고 있을까? 영화를 볼 때의 감정과 같이, 저절로 기대가 되는 시점이다. 모든 이들이 날이 적당한 어느 날, 카모메 식당을 마주해 설렘을 가득 안은 채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길 고대하고 바라며 글을 마친다.

 

 

 

artinsight.jpg

 

 

[최세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