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展》은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경험을 넘어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체험하는 여정이었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400년에 걸친 서양미술사의 주요 순간들을 대표작 143점을 통해 시대별, 사조별로 나누어 보여주는 구성이 돋보였던 전시다. '서양 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라는 주제로 거장 89인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의 전시라 할 수 있다.
주말 낮, 미술관에는 전시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다. 전시장에 입장해 작품을 보기위한 줄 서기는 해봤지만, 전시회를 자주 관람하는데도 입장하기까지 웨이팅을 해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전시장에 입장하기 전까지 1시간의 기다림, 입장하고 나서 작품을 관람하는 2시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의 양과 퀄리티를 마주할 수 있었다.
무료로 제공된 김찬용 도슨트의 오디오 가이드는 친근하면서도 전문적인 설명으로 관람의 질을 한층 높여주었다. QR 코드를 통해 헤드셋 마크가 새겨진 작품의 경우 해설을 들을 수 있어 편리할뿐만 아니라, 서양미술사에 문외한인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디 플로렌스 필립스
전시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작품에서 시작해 20세기 현대미술의 앤디 워홀로 마무리되는 구성이었다. 특히 라파엘 전파와 낭만주의, 큐비즘 등 미술사에서 중요한 흐름들이 각기 다른 9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어, 자연스레 시대별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143점의 전시 작품들은 시대, 작가가 각기 다르지만 모두 같은 장소에서 온 것이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ohannesburg Art Gallery, JAG)의 주요 소장품으로, 설립자인 레이디 플로렌스 필립스의 선구적인 미술 컬렉션에 속한다.
레이디 플로렌스 필립스는 20세기 초반, 유럽 미술품을 남아프리카로 들여와 요하네스버그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한 인물이고, 3만 점 이상의 작품을 보유한 국립미술관을 통해 그 목표를 실현했다.
전시장 초반에는 레이디 플로렌스 필립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인자한 미소, 품격있는 자세로 문화예술의 가치를 새로운 땅에 들여오려고 했던 그녀의 부드럽지만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듯했다. 문화예술의 향기가 존재하지 않는 땅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품 속 그녀의 눈을 자꾸만 응시하게 되었다.
레이디 플로렌스 필립스가 맺은 노력의 결실,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 89인의 작품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술적 정체성과 유럽 미술의 교차점을 발견하고 마주해보는 것도 좋겠다.
서양미술사의 방대한 흐름을 원화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전시장으로 걸어 들어가 원화를 마주하고, 그 원화에 담긴 질감과 색채, 화가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해보는 일련의 과정은 미술의 방대한 흐름을 따라가보는 행위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展》을 놓치기에는 아쉬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유명 거장의 작품뿐만 아니라, 비교적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오늘날의 미술 문화가 정착하기까지 그 시대에서 개성 있는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도 있다. 전시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미술가들의 사고와 감정을 경험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예술사적 맥락을 통해 관람자들이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서울 중심지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이라는 장소 또한 이 전시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도시의 활기가 느껴지는 공간 속에서 예술이 주는 정적인 에너지를 만끽하며,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쉼과 몰입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展》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관람객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술의 의미를 되새기고, 예술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초대하는 특별한 여정이다. 경주·부산·제주를 지나 서울에 상륙해 최초 공개되고 있는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展》은 8월 31일까지 계속된다. 몸도 마음도 풍족한 여름의 어느 날을 선사해 줄 전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