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이 필요한 이유 - 예술과 나날의 마음 [도서]

선한 삶을 사는 데는 결심만으로 부족하다.
글 입력 2020.05.07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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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훈은 이 책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미학(美學)을 연구하며 아껴온 미술ㆍ음악ㆍ문학작품을 소개한다. 그에게 예술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말하기를 예술은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책의 초입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나날의 생활 속에 자리하고 있고, 또 나날의 마음속에 자리해야 한다. 그것은 더 높은 현실에 대한 갈망이고, 이 갈망의 바탕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선(善)에 대한 갈망이기 때문이다. 더 넓고 깊은 삶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도 무의미할 것이다.


p.10


 

이 책의 좋은 점을 나는 거의 첫 부분부터 알게 된다. 아래처럼 우리 삶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뒤 이와 관련된 예술가들을 알려 준다.

 


어느 쪽이든 삶을 그런대로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자기 삶이 처한 곳과 앞으로 나아가게 될 방향을 가끔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p.17


 

문광훈 덕분에 나는 소크라테스와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8.30~1825.12.29]를 이번 기회에 더 확실히 알게 된다. 다비드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역사화가이며 그림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남겼다.


그림 속에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혐의로 독이 든 잔을 마실 운명에 처한다. 그리고 그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진 세 제자, 크리톤·플라톤·아폴로도로스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각기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문광훈의 설명이 덧붙는다.

 

 

[크기변환]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jpg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87, 캔버스에 유채

 


아무런 이유 없이 고소를 당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부당한 죽음을 선고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모험을 비난하고 죽음을 거부할 것인가. 나는 죽어야 할 것이다. 만약 삶을 선택한다면 그때까지 품어왔던 신념을 버리고 진리를 부정해야 한다. 늘 그렇듯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한 삶을 사는 데는 결심만으로 부족하다. 소크라테스가 보여주듯이, 그것은 때때로 생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묻는 일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자기 자신을 아는'데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의 '모름을 아는 데' 있다.


p.19



한편 나는 루치지코바[Zuzana Růžičková, 1927.1.14~2017.9.27]라는 쳄발로 연주가에 대해 알게 된다. 피아노가 건반을 눌러서 줄을 치는 구조로 되어 있다면, 쳄발로는 건반을 누르면 줄이 당겨지도록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루치지코바는 전설적인 쳄발리스트로서 독일이 유대인을 대학살했던 시대에 살아남은 음악가이다.


그녀는 1927년 체코의 필젠에서 유대인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장난감 가게를 물려받았고, 그녀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루치지코바는 독일인 가정교사를 통해 피아노 교습을 받았고, 음악애호가였던 친할머니는 어린 그녀를 자주 오페라 극장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어 파리에서 유학하려던 그녀는 나치 정권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다. 루치지코바의 아버지는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에서 죽는다. 1943년 12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역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그렇게 가축운반열차에 실려 가던 사흘 동안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


마음속으로 「사라방드」를 연주하면서 그녀는 암담한 시간을 견뎠다. 루치지코바는 다른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한순간에 가스실로 끌려갈 운명에 처했으나 건강한 젊은 여성에 속했기에 함부르크 시가지 청소를 떠맡아 수용소에서 해방을 맞는다.

 

 

아우슈비츠 화장장.jpg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화장장

 

 

아우슈비츠와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그녀는 10년도 되지 않아 바흐 솔리스트로서, 그것도 저 잔혹했던 독일에서 큰 갈채를 받는다. 또 자신의 연주를 '히틀러의 건축가'로 알려진 슈페어가 자신의 연주를 경청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문광훈은 루치지코바의 인터뷰를 인용해 예술이 비참을 넘어서는 일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크기변환]jpg.jpg

89세이던 2016년, 루치지코바

 


"여기에 당신도 지금, 마치 땅 위의 작은 벌레처럼,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초월하는 보다 높은 어떤 것도, 하나의 질서로 거기에 함께 있습니다. 그 질서는 당신을 위해서 거기에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것을 정신적인 것으로 구원합니다." - 루치지코바의 인터뷰

 


나치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간의 현실은, 때로는 시의 종말과 문명의 파국을 선언해야 할 정도로 철저히 타락하기도 한다. 루치지코바의 삶은 그런 무자비한 현실속에서도 예술적 승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의 증거다.


p.57



아마도 우리는 현실의 잔혹과 저속성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길이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바흐의 음악이 히틀러의 정치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일 것이고, 더 적극적으로는 예술과 문화가 야만과 학살에 저항하는 일이 될 것이다.


p.58


 

이어서 나는 에드워드 호퍼·요하네스 페르메이르·장-시에몽 샤르뎅·제인 오스틴을 통해 일상의 평범한 일상의 고귀함에 대해 알게 되고, 미셸 푸코와 렘브란트 판 레인·칸트를 통해 시와 미와 철학에 대해, 푸생과 구에르치노·코로를 통해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낙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성실한 이가 몇 십 년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예술 취향을 기껏해야 몇 십 시간만을 써 알게 되었다. 루치지코바의 인터뷰를 보고 "부서진 마음을 추스르고, 예술로 승화시키세요"라고 말했던 메릴스트립의 인터뷰가 떠오르기도 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건을 다룬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기도 했으며 문광훈의 '지금 자기 삶이 처한 곳을 봐라' 한 줄에 영감을 받아 에세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러 가지의 인상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더 나은 세상을 일구려고 애쓴 예술가들을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알게 된다.

 

나는 예술이 하는 일을 문광훈처럼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를 통해 적어 본다. 예술은 수많은 삶을 보여주어 우리의 가난한 시야를 넓혀 주고, 선한 삶을 사는 데에 결심만으로 부족한 이 세상에서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도록 이끈다. 

 

 

도시에서는 삶이 더 작다

여기 이 언덕 꼭대기에 있는 내 집보다. 

도시에서는 커다란 집들이 열쇠로 전망을 잠가 버린다, 

지평선을 가리고, 우리 시선을 전부 하늘 멀리 밀어 버린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크기를 앗아 가기에, 우리는 작아진다, 

우리의 유일한 부는 보는 것이기에, 우리는 가난해진다.

 

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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