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권도연 개인전 : 시옷 Siot [시각예술]

익숙한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새로이 마주하다
글 입력 2020.03.1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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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서늘하지만 참 맑았던 3월의 어느 날, 마냥 집에만 있기가 답답해 밖으로 나섰다. 딱히 생각해둔 곳은 없이 그저 평소 자주 거닐던 길을 걸었다. 낯익은 곳을 지나가는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생경하게 와닿는다. 자주 들렀던 서울시청도서관의 무기한 휴관 안내문과 덕수궁의 수문장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씁쓸하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 전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고층 빌딩의 1층에서 개최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대한항공 빌딩에 자리한 갤러리다. 이전 같았으면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겠지만, 먼저 조심스레 빌딩 입구에 있는 경비원에게 전시회 진행 여부를 물었다. 들어가도 된다는 대답을 듣고 다시 조심스레,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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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우스페이스(一宇SPACE)는 대한항공 서소문 빌딩 1층에 위치한 사진/미술 전문 갤러리이다. 갤러리는 한진 그룹 산하 일우재단에서 운영하며 재단은 2009년부터 일우사진상을 개최하고 있다. 일우사진상은 사진 관련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현재 일우스페이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옷 Siot> 전시회는 제10회 일우사진상에서 출판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이다.

 

로비를 기준으로 1관, 2관으로 나누어진 갤러리 내부는 크지 않았고 방문했을 당시 관람객은 나뿐이었다. 조용히 혼자서 관람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팜플렛을 집어 들었다. 23점의 작품 및 작가에 관한 소개를 읽어보는데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인상적이라고 여긴 그의 이력은 전시회를 감상하며 분명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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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우리는 섬광기억이라고 한다. 다양하고 선명한 무언가를 담았지만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은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전시회는 작가의 섬광기억 시리즈로 시작하며 그의 또렷한 두 기억을 관람객에게 소개한다.

 

권도연 작가는 자신의 유년기 중 어느 여름방학과 콩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개와의 일화를 사진과 글로 소개한다. 전시된 사진들 옆에는 관람객이 자유로이 뜯어갈 수 있도록 걸어 놓은 A4 한 쪽 정도 분량의 글이 부착되어 있다. 처음에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홀로 생각해본 후, 작가가 적은 글을 통해 그의 “섬광기억”을 들여다본 후 다시 보는 사진은 전혀 다른 감상으로 마음에 닿는다.

 

위의 사진은 무언가를 잔뜩 걸어 말리는 것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니 걸려 있는 것은 물에 젖어 망가진 책들이다. 페이지가 서로 붙고 구겨져서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책에 풀잎과 들꽃이 마치 장식인 듯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 있는 작가의 글을 읽어본다. 12살의 여름방학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지하실의 도서관은 작가에게 작은 독립적인 세계였지만 어느 날 폭우로 책이 모두 물에 젖어버린다. 나를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일에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겠지만 권도연 작가는 이를 선명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관객에게 소개한다.

 

 

나의 여름 방학은 어둠이 흥건한 나무 냄새와 곰팡이 냄새, 물비린내로 범벅이 되어 있다. 서늘하게 젖은 공기, 흥건히 젖은 어둠, 나무의 수액 냄새가 진하게 번져 있는 캄캄한 잡풀 속에서 밤새우는 풀벌레들. 이 이미지들 속에서 내 유년은 금이 가며 흩어졌다가 가까스로 모아지며 흘러갔다. 그토록 찬란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그 후에는 경험하지 못했다.


- 섬광기억<여름방학>(2018)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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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1,000만 명이 다녀가기도 했다는, 거의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만큼의 수가 찾을 정도로 북한산은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다. 동시에 북한산은 우리에게 위협의 존재로 여겨지는 들개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전시관에서는 작가가 포착한 북한산의 전경과 더불어 그 안에 머무르는 들개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론 친밀한 듯, 때론 경계하는 눈빛으로 렌즈를 바라보는 들개들과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자신들의 터전에서 머무르는 모습을.

 

북한산과 그 안의 들개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옆에는 작가의 글과 함께 윤원화 비평가의 글이 나란히 벽에 걸려 있다. 윤원화 미술 비평가는 북한산 시리즈에 대해 권도연 작가의 사진은 사회 문제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야생 개에 대한 지식을 수립하기 위한 과학적 목적을 담은 것도 아닌 그저 개의 초상을 비춤으로써 인간에게 익숙한 북한산의 풍경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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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연 작가는 자신의 집 근처 북한산에서 야생 초목을 관찰하던 중, 우연히 들개 무리를 마주한 것을 계기로 야생화된 들개들을 촬영했다고 한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버려진 개들이 생존을 위해 자리한 북한산에서 사람에게 위협을 주는 대상이 되었다는 글을 보고 다시 북한산 전경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우리에게 여전히 익숙한 그것일까?

 

 

북한산의 개들은 인간과 함께 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사실상 함께 살지 못한다. 관찰을 하면 할수록 이 산의 풍경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생명의 풍경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 성취 그리고 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커튼.


- 북한산(2019)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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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모습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사물을 원래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예 다른 모습만이 남아있다면 그 사물은 본래 지니고 있던 가치를 잃었다 할 수 있을까. 작가의 고고학 시리즈의 사진들은 본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진 속 사물들이 서글픔과 상실을 표하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의 본래 모습과 쓰임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대체로 서글픈 감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처음의 모습이 없는, 그로 돌아갈 수 없는 사물들을 권도연 작가는 유쾌하고 명랑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의 사진 속 사물들은 상실이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것으로 자리한다. 그 장소는 신비의 놀이터이다.

 

사진이 걸려있는 맞은편에는 5분 남짓의 비디오가 재생되고 있다. 고고학 시리즈 작업 과정이 담겨있는 영상으로, 작가는 작업실 주변의 땅을 삽으로 파서 발견한 물건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원래 모습과 기능을 잃은 물건들을 관찰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했다는 시도는 그의 말대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탐색하는 고고학자의 작업을 보는 듯하다.

 

 

사물의 효용성에 무심한 체 그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집중했다. 나는 기능이 퇴화된 사물을 붙잡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었다.


- 고고학(2015)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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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를 방문하더라도 때론 전시 및 작품에 대한 설명의 부족으로 마음에 남은 것이 없는 듯한 감상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작은 두 관으로 구성된 갤러리에 담긴 사진들과 시리즈마다 자리한 글은 우리 주변의 풍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친절히 보여준다.

 

권도연 작가가 직접 한 시리즈별 작품 옆에 자신의 이야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 글은 수필을 읽는 듯했다. 익숙한 풍경과 사물을 전혀 다른 시선과 시도를 통해 새로이 마주하며 계속 떠올릴 계기를 갖게 되는 것은 항상 즐겁다.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 <시옷 Siot>은 4월 4일까지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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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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