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지충 받고 설명충하겠습니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3.1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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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이 아닌 벌레로 불리는 날들이 늘어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충(蟲)’을 섭렵하고 있다. 말이 많아서 ‘설명충’, 감수성이 풍부해서 ‘감성충’, 이러한 단어들에 쓰이는 ‘충’이 ‘벌레 충(蟲)’자 라는 얘기를 진지하게 해서 ‘진지충’.


언어란 사고의 틀이면서, 동시에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화기를 쓰던 세대와 스마트폰을 쓰는 세대가 각기 다른 제스처로 ‘전화’라는 단어를 표현하는 것처럼 시대를 들여다보는 데 언어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 특히, 언어의 표면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언어가 쓰이는 ‘맥락’을 질서화하고 규칙화함으로써 시대를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나아가 우리는 시대에게 일종의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요즘은 ‘별다줄’이라는 신조어가 우스갯소리로 쓰이는 만큼 정말로 ‘별걸 다 줄이는’ 게 유행이다. 또 벌레라는 뜻의 한자인 ‘충(蟲)’을 특정 단어 뒤에 붙여 만든 합성어가 함께 유행하고 있다. 폄하적 의미의 ‘충’을 결합함으로써 특정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이라 볼 수 있다.

 

 


폭력을 교묘화하는 장난과 농담

 
웃자고 던진 말에 진지하게 덤벼들어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상황을 만드는 이를 비꼬기 위한 단어로 ‘진지충’이 쓰이기 시작했고, 자신의 지식을 늘어놓기 위해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는 사람을 비꼬기 위한 단어로 ‘설명충’이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타인의 무례함을 지적하기 위한다는 이 단어의 의도만으로 ‘폄하적’ 표현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기반이 되어야 하지만, 필자는 이 단어가 최초의 의도와 의미에서 나아가 이제는 악의가 없는 ‘농담’의 형태로까지 오남용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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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에게는 장난이 아닐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의 학교폭력예방 공익광고를 수도 없이 보고 또 배웠지만, 여전히 ‘장난’이라는 형식 앞에선 무례함을 지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장난과 농담은 폭력을 교묘화한다. 악의를 담아 던진 단어 ‘설명충’이었다 해도, 되려 불쾌감을 표하는 상대방에게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진지충’의 프레임을 씌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유머에 대한 올바른 지적에도 ‘진지충 등판’이라는 댓글이 달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최근에는 ‘~충’이라는 단어들도 언어폭력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러한 판결의 의의는 언어, 곧 말의 무게에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그 정도로 학교폭력이라니, 과하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판단의 결정권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있는 것은 물론, 폄하의 의미를 내포한 일종의 혐오표현은 그 강도 또는 정도와는 관련 없이 또 다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표현임을 명심해야 한다.
 
 

#확성기 #아아- #진지충 #등판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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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멸칭들이 또 다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문제점은 바로 ‘비난을 피하기 위한 불필요한 검열’에 있다. 최초의 의도와 의미에서 나아가 이제는 악의가 없는 장난의 일종으로 말이 많은 친구를 설명충이라 부르고, 진지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친구를 진지충이라 부른다.

하지만 앞서 언어란 사고의 틀이면서 동시에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라 말했듯, 악의가 없이 쓰이는 농담의 언어도 결국 우리를 가두는 파괴력을 지닌 언어라 말할 수 있다. 언어로 하여금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사회적으로 폄하되는 여러 가치를 내 안에서 지우거나 감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검열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요즘이다.

검열의 방식은 다양하다. 진지함을 예로 들었을 때, SNS에서의 검열방식에 붙는 이름은 ‘감출 수 없기에 유머로 승화시킨 나의 진지함’. 가령 SNS에 진지한 생각을 담은 일기를 써놓고, 작성자가 직접 ‘#진지충’과 같은 해시태그를 달아놓는 방식이다. 즉, 나의 팔로워들로부터 진지충이라는 비난을 받기 전에 선수를 쳐 내가 나를 비판하는 것이다. 비난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자학개그의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장난 섞인 대화보다는 조금은 건조하더라도 진지한 대화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기본적으로도 구구절절한 말하기를 애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악의 없는 ‘~충’들에 마음이 쿡쿡 찔리고, 결국 말을 줄이게 되는 날들이 많다. 또 무엇보다 진지함을 ‘감추는’ 사회에서 진지함이 ‘사라진’ 사회가 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된다. 밖은 아니어도 방구석 어딘가엔 숨겨두었던 진지한 고민, 구구절절한 이야기 한 편이 그마저도 사라지는 건 아닐지.

짧고 재미있는, 자극적이고 가벼운, 서론 없이 ‘본론만 말해’야 하는 분위기. 사회에서 쓸모 있는 가치들이 획일화되어가고 있다. 효율적이지 않다는 말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말이 무가치하고 폄하되어도 괜찮은, 조롱당해도 괜찮은 것과 같은 말로 통해서는 안 된다. 그런 언어들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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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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