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특한 ‘한국 뮤지컬’ 이야기 [도서]

“뮤지컬 사회학”을 읽고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
글 입력 2020.03.0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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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뮤지컬을 즐겨 보던 사람이라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엄청난 “컬쳐 쇼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처음으로 브로드웨이를 방문하여 뮤지컬 티켓을 구매하던 과정에서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티켓 가격부터 캐스팅, 티켓을 구매하는 과정, 뮤지컬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분위기까지 ‘한국 뮤지컬’과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나는 그러한 차이가 브로드웨이만의 특징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뮤지컬 사회학(최민우)”을 통해 그 차이는 ‘한국 뮤지컬의 독특성’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뮤지컬 사회학”이 다루는 수많은 ‘한국 뮤지컬의 특징들’ 중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고정된 티켓 가격과 ‘콰드러플(quadruple)’ 캐스팅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고정된 뮤지컬 티켓 가격, 득일까 독일까?


 

해외에서 뮤지컬의 티켓값은 그 뮤지컬의 인기를 즉각적으로 반영한다. 뮤지컬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가격이 올라가고, 인기가 떨어질수록 가격이 하락한다. 예를 들어,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의 경우, 2015년 처음 개막했을 때는 오케스트라 좌석(한국 뮤지컬의 VIP 좌석)이 128달러(약 14만 원)였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16개 부분의 후보로 올라 11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엄청난 인기몰이를 시작하면서 티켓값이 폭등했고, 현재 티켓 가격은 개막 당시 가격의 두 배가 넘는 270달러(약 32만 원)에 달한다.

 

반면, 한국 뮤지컬들은 뮤지컬 표 가격이 고정되어 있다. “뮤지컬 사회학”의 저자는 공연 개막 전 ‘VIP석 12만 원, S석 10만 원, R석 8만 원, A석 5만 원’으로 가격이 책정되었으면, 공연 중에 이 가격이 올라갈 확률은 0에 수렴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인기가 높아진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뮤지컬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는 이유로 이미 공연을 올리고 있는 뮤지컬의 가격이 올라가는 경우는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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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해밀턴> 브로드웨이 공연장

 


브로드웨이에서 <해밀턴>을 보기 위해 237달러라는 거금을 낸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뮤지컬 관객의 입장에서는 고정된 티켓 가격이 훨씬 좋아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고민해보니, 장기적으로 고정된 티켓값이 수반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눈에 띄었다.


티켓 가격이 고정되어 있으면 시장의 흐름(연말과 연초에는 사람들이 공연장을 많이 찾는다 등)이나 물가의 상승을 반영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고, 수익이 창출되지 못하면 장기 공연 또한 어려워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공연된 뮤지컬은 <라이온 킹>으로, 서울에서 1년 정도 공연을 올렸다. ‘1년이면 오래 공연한 게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같은 공연이 뉴욕 브로드웨이, 런던 웨스트엔드, 심지어 일본 도쿄에서조차 10년 넘게 오픈런으로 공연을 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분명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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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이언 킹> 포스터

 


하지만 미국이나 런던처럼 철저하게 시장의 수요에 따른 가격의 책정을 모방하기에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티켓 가격이 고정되어 있던 기간이 너무 길다. 또한, “뮤지컬 사회학”의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듯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뮤지컬 분야에 미국이나 런던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좋은 방법인지도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가격 경직성을 푸는 하나의 중간 단계로서 ‘성수기’ ‘비수기’ 제도 등을 뮤지컬 시장에도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워터파크의 성수기, 비수기를 나누어 가격을 서로 다르게 책정하듯, 사람들이 공연장을 많이 찾는 시기를 미리 규정하고, 이 기간에는 티켓 가격을 비싸게 파는 것이다.


기존보다 오른 가격을 지불하고 공연을 봐야 할 때는 (나를 포함한) 뮤지컬 팬들의 격한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또 다른 중간 단계로서 시행된 ‘주말의 표 가격 올리기’도 처음의 반발이 무색하게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결국 뮤지컬 팬이라면 우리가 사랑하는 뮤지컬들이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무를 방법을 지지하지 않을까.

 

 

 

왜 한국에만 ‘드라큘라’가 세 명이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는 ‘원 캐스팅’이 불문율이다. “뮤지컬 사회학”은 이 현상을 “하나의 배역에 가장 맞는 배우는 딱 한 명밖에 없고, 그 배우를 찾는 게 진짜 캐스팅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내려왔기 때문”(82쪽)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배우가 사고나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그날 공연을 올리지 못하면, 그 배우의 언더스터디(understudy)나 스윙(swing)이 역할을 대신한다.

 

반면, 한국 뮤지컬에서는 하나의 배역에 여러 명의 배우가 캐스팅된다. 최근에 내가 재미있게 관람하고 온 뮤지컬 <드라큘라>의 경우에도 드라큘라 역에 류정한, 김준수, 전동석 세 배우가 캐스팅 되었으며, 얼마 전 막을 내린 뮤지컬 <웃는남자>도 그윈플렌 역에 이석훈, 규현, 박강현, 수호 네 명의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뮤지컬 팬들에게 세 명 이상이 하나의 배역을 맡는 “콰드러플(quadruple) 캐스팅”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한국에서도 지금처럼 세 명 이상이 하나의 배역을 돌아가면서 공연을 올린 역사는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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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웃는 남자> 그윈플렌 역 캐스트

 


“뮤지컬 사회학”에 따르면 콰드러플 캐스팅을 시도한 첫 공연은 2008년 뮤지컬 <햄릿>으로, 당시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전에도 두 명이 하나의 배역을 돌아가며 하는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은 흔했지만 더블 캐스팅은 배우들이 장기 공연에 가지고 있는 부담감 및 컨디션 조절에 가지는 어려움을 고려하여 받아들여진 사안인 반면, 네 명 이상이 하나의 배역을 맡는 “콰드러플(quadruple) 캐스팅”은 같은 이유로 설명되기 어려웠던 탓이다.

 

당시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대형 스케일 뮤지컬은 3~5명의 배우를 하나의 배역에 캐스팅한다. “뮤지컬 사회학”은 이 현상을 “한국의 ‘스타 중심적’ 뮤지컬 관람 성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명 배우나 인기 많은 아이돌의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나 아이돌이 나오는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물론, 비교를 위해 다른 배우들의 공연도 본다. 이렇게 한 공연을 여러 번 관람하는 팬들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중요한 고객층이 되어 배우 캐스팅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콰드러플 캐스팅은 관객들에게 완성되지 않은 공연을 보여줄 확률이 높다는 문제를 수반한다. 예를 들어, 남주인공 역에 A, B, C, D 네 명의 배우가, 여주인공 역에는 X, Y, Z 세 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다고 하자. 이런 상황 속에서 공연은 A-X, A-Y, A-Z, B-X, B-Y, 등 총 열두 가지의 조합으로 올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열두 가지 조합의 캐스트는 합을 맞춰보며 연습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첫째, 일곱 명의 배우가 시간을 맞춰 다 같이 연습하거나, 둘째, 열두 가지 조합에 맞추어 열두 번 연습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에서 주연은 뮤지컬 배우뿐만 아니라 유명 가수나 인기 많은 아이돌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자의 상황은 불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감독이나 스텝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후자의 상황도 비현실적이다. 이에 따라 각자 개인 연습만 하고 상대 배우와의 합은 맞춰보지 못한 채 첫 무대에 오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이는 개막 2주 정도 동안 무대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 캐스팅이나, 적어도 더블 캐스팅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여러 명의 배우가 하나의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한국 뮤지컬의 현실 속에서 원 캐스팅(이나 더블 캐스팅)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러기에, 원 캐스팅으로의 점진적인 변화와 함께, 작년부터 한국 뮤지컬에도 도입되기 시작한 ‘프리뷰 공연’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길 기대해본다. ‘프리뷰 공연’이란, 정식 공연 전 2주 정도 올리는 공연으로, 배우들은 서로의 연기 합을 맞춰볼 수 있어 정식 공연에서 더욱 완성된 무대를 꾸밀 수 있게 된다. 또한, 관객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뮤지컬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뮤지컬 사회학”은 책의 부제목처럼 내게 ‘뮤지컬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사했다. 당연하게만 여겨온 현상들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장기적인 뮤지컬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해 보이는 크고 작은 변화들에 대한 생각거리도 던져주었다. 뮤지컬을 사랑하는 한 명의 뮤지컬 팬으로서 한국 뮤지컬이 장기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그 발전을 함께 이루어나갈 수많은 뮤지컬 팬들에게 “뮤지컬 사회학”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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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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