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영화 "북스마트", 모든 학교 중독자들에게

글 입력 2019.11.22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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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학교가 좋은 점 중 하나는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던 미국 영화들을 매주 무료로 상영해준다는 것이다.

 

재학생들도 잘 모르는 사실인데, 파견될 학교가 정해지자마자 근처에 영화관이 있는지부터 알아봤던 나에게는 정말 중요하고 큰 혜택이다. 그렇게 본 영화 중 정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바로 <북스마트(Booksmar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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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이 영화는 제목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평가도 찾아보지 않고 바로 보기로 했다. `북스마트(Booksmart)`란, 수업시간에 배운 것, 책으로 접한 지식은 많지만, 경험은 적어서 정작 일상적인 일은 할 수 없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그 친구는 북스마트야. 성적은 좋은데 요리할 줄을 몰라!` 하는 식의 예문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어에서 비슷한 표현을 찾자면,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정도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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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너드(Nerd), 북스마트라고 정의하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어떤 내용일지 정말 궁금했는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만 해온 에이미와 몰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을 북스마트라고 깔본, 학교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던 친구들이 자신들과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 통보를 받고, 구글에 취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들만 고등학교에서 마땅히 해야 했을 경험들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래서 졸업식 전날, 처음으로 일탈을 결심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는 이야기다.

 

*


영화의 도입부는 내가 했던 경험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정말 많이 공감되었다. 고등학교,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늘 학교에서 해야 할 일, 학원에서 내준 숙제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과제를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명절에도 할머니 댁까지 학습지를 가져가서 풀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도 야간자율학습을 빠지면 성적이 떨어질까 봐 늘 자리를 지켰다.


에이미나 몰리가 그랬듯이, 나도 결코 좋은 성적을 위해 일탈을 `포기`한 건 아니다. 성적이 학교에서, 특히 우리나라의 학교에서는 가장 쉽게 인정받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가치이기에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다른 많은 것을 경험하기도 전에 학교에서 인정받는 것이 성공의 유일한 잣대라고 확신했고, 그렇게 점점 학교에 중독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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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의하는 `학교 중독`의 증상 중 하나는 이렇게 한 가지 잣대로 사람들을 줄 세우고 평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늘 장난치고 떠드는 친구들은 당연히 미래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몰리처럼, 나도 성적이라는 편협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려 했던 때가 있었다. 교실에서 보이는 태도가 그 사람이 가진 전부라고 생각하며 다른 면은 보지 못했고, 보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수많은 삶이 있음을 직접 보았다. 그들은 학교에서 제시한 길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이 정의한 성공의 기준에 다가가고 있었다. 공부하며 보낸 시간이 성공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렇듯 학교가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가치가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교육심리학 시간에 시청한, 무려 8년 전의 TED에서 영국의 교육학자 켄 로빈슨은 현재의 교육 체계가 산업혁명 시기에 등장한 과목 간의 위계를 바탕으로 한다고 말한다.

 

예술보다는 수학과 언어를, 예술 안에서도 춤이나 연극보다는 음악과 미술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며, 전 세계의 학교가 학생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을 억누르고, 대학교수를 만드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에세이를 시작할 때에도 밝혔듯이, 나는 모범생으로 살아가면서도 현재의 학교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고, 늘 학교라는 울타리를 자유로이 벗어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 좁은 울타리 안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유일한 성공의 길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내가 싫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투사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성취는 헛된 것은 아니었다. 교육에서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것은 더 다양한 성취를 인정한다는 것이지, 기존의 체계에서 성공한 이들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언뜻 보면 영화도 북스마트의 좌절과 실패를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는 북스마트나 그 반대의 경우 중 어느 쪽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서로 재미없는 사람들로, 무책임한 사람들로 간주하며 이해하려 하지 않았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평소 무시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대학교수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춤을 추고 노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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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보수적인 학교의 체계에 잘 따르고, 그 체계가 정의하는 성공의 기준을 그대로 수용했던 내가, 창의성과 일탈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건 모순적인 일이고, 설득력도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나는 영화의 힘을 빌려 공부가 전부라고 믿었던 과거의 나와, 아직도 한 가지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배우 올리비아 와일드가 감독으로서 내놓은 첫 영화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배우들이라 한국 개봉 여부는 보장할 수 없지만, VOD 서비스를 통해 이용해볼 수 있을 듯하다. 코미디 영화답게 재미는 보장되어 있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해서 찾아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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