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을 향한 날갯짓 - 밴드 이상의날개 [음악]

글 입력 2019.08.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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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이상의 소설 「날개」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사람의 등에 날개가 돋는 마지막 장면만은 기억할 것이다. 물론, 알지 못한다 해도 이 글을 읽는 데에는 아무 상관 없다. 대신 이상의 「날개」가 음악이 된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금부터는 소설을 잠시 접어두고, 음악만을 생각하면 된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나서 이상과 날개에서 음악이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상의날개’. 간단하게 그들을 설명한다면, ‘이상을 닮은 밴드’다. 그로테스크함과 동시에 섬세함을 담고 있는 이상의날개의 음악은 이상의 작품과 비슷하다. 고집스럽게 침묵하는 모습에선 난해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난해함에서 청자는 매력을 느낀다. 무엇으로 표현하기에는 이 음악 앞에선 어떤 단어라도 모호함을 지울 수 없다. 명확한 것에서 떠나 모호함을 진하게 느끼고 싶다면 이상의날개의 음악을 들어보자.



[꾸미기]가장최근.jpg

출처 : 이상의날개 블로그



시간과 공간을 노래하는

밴드 '이상의날개'

Vocal/Guitar : 문정민

Guitar : 김태봉

Bass : 전민규

Drums : 이충훈



이상의날개는 원래 2인조 프로젝트 그룹 ‘Detuned Radio’로 활동했다. 이후 새로운 도약을 위해 밴드명을 ‘날개’로 하려고 했으나 주변에서 이상의 날개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이상의날개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여러 뜻이 담긴 ‘이상’이 날개에 더해져 풍부함이 느껴진다. ‘이상의날개’가 한 단어임을 나타내기 위해 두 단어를 붙여 쓴다.

그들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유튜브에 인간실격 애니메이션을 검색하다가 그 밑으로 나열된 <인간실격> 뮤비의 섬네일을 보게 되었고, 왠지 모를 힘에 이끌려 섬네일을 클릭했다.



<인간실격>은 동명의 소설 『인간실격』을 모티프로 한 곡이다. 기괴하고 우울하며 자기 파괴적인 곡으로, 깊은 내면을 헤집을만한 날카로움을 지녔다. 분노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그리고 그 분노는 자신을 향한다. 마침, 내 마음도 음악처럼 분노를 자신에게 쏟아부었던 상황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그 곡에 매료되었다. 이것이 이상의날개와의 첫 만남이었다.


**


‘이상’에는 여러 뜻이 있다.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의 ‘이상(理想)’, 작가 ‘이상(李箱)’, 더 많다는 뜻의 ‘이상(以上)’, 반대로 정상과 다름을 나타내는 ‘이상(異常)’.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이상’의 해석처럼, 이상의날개도 청자의 시선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지는 신비한 음악 세계를 갖고 있다.




이상(理想)적 :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이상의날개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날개’다. ‘하늘을 나는 듯한 광활한 음악을 해보자’라는 당찬 포부를 담고 있는 단어이기에 이상의날개를 이해할 때 놓쳐서는 안 될 단어다.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꿈들은

미래의 희망을 펼쳐가네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아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활기찬 음악과 가사가 희망을 노래한다. 이 곡을 들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휘몰아치는 일렉 기타가 날개를 달고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새처럼 자유로움을 나타낸다. 날개가 돋아 광활한 곳을 비행하는 모습은 그들이 그린 음악이자, 그들의 이상향을 나타낸다.


이상(李箱)적 : 이상을 닮은 밴드




늘 생각해

붉게 물든 하늘 넘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날개>라는 곡이 기존 ‘날개’라는 밴드의 정체성을 나타냈다면, <붉은하늘>은 ‘이상의날개’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붉은하늘>을 듣다 보면 이상의 소설 「날개」가 연상되는데, 옥상에서 비상하려는 마지막 장면과 <붉은 하늘>에서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비상하려는 장면이 겹쳐진다.

또한, 권태로움에서 극적으로 반전되는 분위기도 닮아있다, 「날개」에서처럼 <붉은하늘>은 고요함과 강렬함이 권태롭게 반복해서 교차하며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넘어가고 있을 때쯤 보컬이 힘 있게 등장하면서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한다. 이상을 바라보며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곳에 도달하기를 바라보는 인물의 고뇌가 느껴진다.


나는 걷던 길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 「날개」



             

그 이상(以上)의 이상(異常) : 음악 속 침묵



한 곡당 7분이 넘는 플레이타임에 반복되는 리듬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곡을 듣기에는 청자의 인내가 필요하다. (음악을 듣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또 별개다) 또한, 짧은 전주가 끝나면 노래가 나올 것을 기대하지만, 그들은 청자의 기대를 배반하듯 묵묵히 악기에 집중한다. 정말 이상한 모습을 한 밴드다.

하지만, 그들의 이상한 모습은 순수한 ‘음악’을 청자에게 들려주려는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컬이 중심이 되는 밴드에서 벗어나 악기가 중심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떤 때는 보컬을 과감히 생략하기도 한다. 보컬의 공백으로 생긴 여백은 오직 음악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다. 즉, 폭발의 강렬함을 끌어내기 위해 온 신경을 악기에 집중시킨 것이다.

또한, 그들의 침묵은 음악의 의미를 한정 짓지 않기 위함이다. 광활한 우주를 담은 음악에선 언어는 오히려 의미를 제한하기에, 최소한의 언어를 음악에 담았다. 이것은 이상의날개 음악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악기가 중심이 되기에 그들의 음악에 모호함이 피어난다. 그렇기에 이상의날개의 음악을 감상할 때에는 눈을 감고 들어보자.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모호함과 음악 속 작은 우주가 펼쳐질 것이다.




문학적인 밴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을 모티프로 한 <인간 실격>,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와 동명의 곡 <상실의 시대>, 그리고 이상의 소설 「날개」와 동명의 곡 <날개>까지. 그래서 그들에겐 문학적인 밴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들은 제목만 같을 뿐 연관성이 없다고 말하며, 겸손함에 ‘문학적’이 아니라 선을 긋지만, 나는 그들이 충분히 문학적인 밴드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문학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중충한 분위기에 잿빛으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며 듣는다면 심연으로 가라앉는 <상실의 시대>를 들으면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이 생각난다.



무엇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을까

수 많은 기억들로 가득 채워진 발자국


시간은 멈춤 없이 흘러가고

두 발은 목표 없이 걸어가네


미래를 위해서 많은 것을 버려야 했지

아무 것도 가질 수가 없었어


난 그저 바라만 보며 기억의 필름에

눈으로 사진을 찍어둬야만 했지


결국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걸어가네


 미래를 위해서 많은 것을 버려야 했지

아무 것도 가질 수가 없었어


남겨진 기억은 허탈한 감성 한 켠에

잘려진 필름으로 조각조각 남아있어


모든 게 꺼져가는 불꽃처럼 사그라지지

우리가 함께 했었던 소중한 시간들


자유로이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와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두 대상의 대비는 더욱 커진다. 미래를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지난 과거를 후회한다. 그렇지만, ‘결국’이라는 말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허무함이 느껴지는 곡이다.

소설 「비행운」도 또한 그렇다.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하며 사는 오늘은 곧 상실의 시대다. 비행운(飛行雲)을 꿈꾸는 비(非) 행운(幸運)의 사람들. 결국,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말로 희망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다루었다. 소설집 『비행운』과 곡 <상실의 시대>는 어딘가 닮아있다.

소설 『비행운』이 청년의 삶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되었듯이, 이상의 날개의 음악도 문학 작품처럼 인간의 삶을 음악으로 나타낸다. 그들이 만든 음악이 문학 작품처럼 마음속에 스며들어 위로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눈물 흘릴 때 함께 뛰고 소리쳐주지는 못할망정 '나는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억지로 그런 이슈만을 부각해서 홍보하고 알려지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누군가에게 저희의 음악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의 날개(문정민) 인터뷰 中



이 말을 증명하듯 그들의 음악은 타인을 향한다. 세월호 추모곡이자,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는 곡인 <향>,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곡 <오월>을 통해서 타인의 목소리를 음악으로 전달한다.





뮤비는 오직 말하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만 조명된다. 더 특이한 건, 라이브에서조차 밴드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관객들이 영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음악으로만 메시지를 던진다.

중반부까지는 광주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사람들의 표정은 암울하지도,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오히려 웃는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군인들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반전이 된다. 템포가 조금 빨라지며 불안정하게 휘몰아치는 일렉 기타의 소 불안감을 자극한다.

군인들이 무참히 시민을 구타하는 모습에 이어 관을 끌어안고, 사진을 붙잡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가사가 없지만, 영상이 던지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고, 혹여나 작은 소리가 음악과 영상을 방해할까 싶어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의 기능은 오직 유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못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소외된 자의 삶을 조명하고 밝히는 것이 바로 문학의 기능이자, 사명이다. 자신을 넘어 타인을 생각하는 그들의 정신은 문학적이라 말할 수 있다.


**


밴드마다 각자의 고유한 색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색깔뿐 아니라 밴드를 나타내는 색이라고 할까. 이상의날개, 그들의 색은 무채색이다. 처음 본 <인간실격>의 뮤직비디오의 영향인지 몰라도, 이상의날개를 떠올리면 무채색이 떠오른다. 광활한 우주를 표현한 앨범 커버 사진, 뮤직비디오의 전체적인 색감, 라이브 공연의 연출까지 그들을 표현하는 모든 것은 무채색으로 통한다.

혹, 누구는 그것이 단조롭다고 말할 테지만, 나는 그들의 단조로움이 꾸미지 않는 날 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화려함으로 꾸미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상태, 꾸미지 않는 영혼의 색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상의날개의 음악이다.

어느 날 마음이 검게 물들었을 때, 이상의날개의 음악을 들어보자. 검게 물든 당신의 마음을 음악이 감싸 안아 어둠 속에서 따스함을 느끼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지영.jpg
 



[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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