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투, 온전한 나를 담다 [패션]

글 입력 2019.07.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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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타투를 한 친구들을 보면,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타투는 지우지 않는 이상 영구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예뻐 보인다는 이유로 새기기 쉽지 않다고 느꼈다. 작은 그림/글자에 상당히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투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 많이 관대해졌고, 타투를 하는 사람도, 관심을 두는 사람도 늘고 있다. 헤나나 타투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타투뿐 아니라 피어싱이나 유니크 컬러 염색 등의 유행은 자기표현에 있어서 전보다 많이 자유로워졌음을 보여준다.

타투를 해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나는 늘 걱정이었다. 타투를 할 때 그 순간의 감정이 타투의 영구성을 따라갈 수 있는가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늘 “에이, 나 결정장애 있어서 안 돼.” 하고 말았다. 훗날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영구적으로 새길 만큼 꽂히는 디자인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타투를 즐기는 한 친구가 그녀에게 타투가 지니는 의미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작은 타투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이 직접 디자인한 타투였다. 워낙 패션센스도 있고, 치장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기 때문에 그저 타투가 “예쁘다”, “스타일리쉬하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이야기를 들으니 전부 다르게 보였다. 타투가 가진 예술적 가치와 자기표현 수단으로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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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sun Tattooer의 걱정요정 타투.

요즘 젊은층은 주로 10cm 이하의

작은 타투를 한다.




상처를 예술로 승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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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타투를 했다.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알아줄 무언가가 필요해서라고 했다. 그녀의 타투는 전부 각각의 의미가 있었는데, 상처의 순간을 담은 듯한 타투도 많이 있었다. 타투는 영원히 남으니까 힘들었던 이 순간을 기억하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타인에게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아픔들이 있는데, 타투로 새기면 그래도 타투만은 자신을 알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과 아픔을 ‘위로’하는 건 조금 다르다. 순간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노래방에 가고 잠을 자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처를 위로받는 것은 아니다. 당장에 기분이 나질 수는 있지만, 속의 모든 아픔을 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내 상처를 위로할 때 글을 쓴다. 보통은 시를 많이 쓴다. 속에 있는 아픔들을 전부 시적으로 풀어내고 나면 조금 후련한 기분이 들고, 그 시는 나를 알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부분의 시는 비공개로 쓰고 어떤 시는 다시 읽지 않지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안아 주기 위해 쓴 것들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큰 의미를 지니는 행위이다. 시를 문학적으로 잘 썼건 아니었건, 그 시는 나의 상처의 순간을 담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가치가 있고, 내 아픔을 시에게 조금은 넘겨준 것 같아서 가벼워진다.

 

그녀에게 타투는 그런 의미였다. 그녀의 아픔의 순간을 봉인해두는 것. 타투에 새겨서 갖고 있으면서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그녀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타인의 타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저 멋있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쩌면 더 자유롭게 새겼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의미와 이유를 캐물었다면, 그녀는 아마 타투에 아픔을 봉인해 다니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은, 다른 의미로 둘러댔을 것 같다. 그녀는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이 물어보면 그냥 귀여워서, 예뻐서 했다고 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물론 그녀의 타투들은 단순히 멋을 위해 새겼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예쁘기 때문에, 미용의 목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자기 아픔을 예술로써 승화시킨 것이다. 그녀 자신을 매체로 예술 행위를 하는 것이다. 도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마주하고, 표현하며 예술로서 승화시켜 봉인해두는 것, 이 모든 과정이 그녀의 ‘타투철학’이다.

  



내가 보는 세상을 담다


 

그녀는 대부분 상징적인 것들로 타투를 했는데, 심볼들을 이용하면 표현의 한계 없이 원하는 의미를 담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특히 ‘달’을 좋아하는 그녀는, 달을 표현한 타투를 몇 개 가지고 있는데, 그 타투마다 가지고 있는 의미들도 전부 달랐다.

 

그녀가 들려준 각 타투가 지니는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특히나 달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의 여러 관점들을 알 수 있는 계기였다. 상징적 표현에는 (아주 보편적인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한 가지 대상을 가지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참 놀라웠던 건, 그녀가 달을 좋아하는 다섯 가지 이유 중에는 내 생각 속의 달의 이미지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달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많이 느꼈다.


또한, 스스로 빛날 수 없는 대상이라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달을 참 슬프게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에게 달은 내 생각보다는 희망적인 대상이었다. 여러 모습들을 가졌다는 점과 은은하지만 묵묵히 빛나는 모습을 말했던 게 그녀의 달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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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 속에 존재하는 달의 이야기와
그녀의 타투 속에 존재하는
달의 이야기는 참 다르다.

하지만, 상처를 서로 다른 방법으로,
달을 서로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는 우리가,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투는 의미를 담기에 참 좋은 수단이다. 도안을 자유롭게 짤 수 있고, 그 한계가 딱히 없기 때문에 다른 액세서리나 잡화들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원하는 대상을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모양으로 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200% 활용할 수 있다. 이 점은 그녀가 타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녀의 타투는 선 하나, 글씨 하나 전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앞으로 그녀가 새로운 타투를 할 때마다 그 속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것 같다.

 



순간을 기억하다


 

나는 그녀에게 타투의 영구성 때문에 망설여진다고 이야기했다. 그녀의 입장은 달랐다. 오히려 타투의 영구성이 가진 ‘불변성’에 집중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보통 ‘그 순간’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감정을 타투로 표현한다. 그 감정들은 주로 그녀에게 의미 있는 감정들이고 돌이켜본다고 다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 순간, 그 찰나에 타투를 새기려 한다고 했다. 사진이 순간을 담아내는 것처럼, 예술작품이 한 찰나를 표현하는 것처럼, 그녀의 타투 역시 순간을 담아두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영구성이 있어서 더 순간을 잘 담아둘 수 있다는 것이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그 순간에 포착해서 담아두는 것이 그녀의 타투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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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타투 중 하나는 숫자 ‘20’과 장미꽃이 얽혀있는 그림으로 되어있다. 그녀가 20살이 되었을 때 했던 타투였다. 장미가 가진 상징성인 ‘열정’을 돋보이기 위해 불꽃처럼 그려 넣은 꽃잎들이 인상 깊었다. 밑으로 거대한 가시 역시 그 의미가 있었다. 20살이 되던 순간 그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 새긴 타투였다. 나라면 훗날 남아있을 ‘20’이란 숫자를 감당하지 못한다며 하지 않았을 타투였지만, 그녀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참 좋았다.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타투를 새긴다라, 그 말은 참 설득력 있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타투로 남겨두면 영원히 그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목소리 타투’나 가족사진, 날짜나 손글씨 타투를 많이 하는 게 아닐까?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젊음도, 사랑도, 가족도 전부 영원할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 담아두고 싶고, 웬만하면 영구적으로 내 곁을 지켜줄 그런 것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 아마도 타투가 그래서 매력적이지 않을까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타투가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만큼 이해할 수는 없을 테지만.


***

타투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 관대해지며, 더 많은 사람이 타투를 하고, 더는 타투가 오랜 고정관념처럼 단순한 ‘힘의 상징’이 아닌 것이 되었다. 여러 의미 있는 타투들이 나오고, 사람마다 타투를 하는 이유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 모든 사람에게 ‘타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완전히 편안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개성과 표현의 자유는 확실히 확대되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 타투는 불법 의료 시술에 해당한다. 여러 타투이스트와 사람들이 변혁을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 내에서 타투는 예술과 불법 의료 사이 어중간한 곳에 있는 실상이다. 타투라는 작업 자체가 상처를 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만큼 안전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타투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적어도 안전 검사나 면허증 검증이 가능하게 타투 시술을 허용하는 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투를 하고, 많은 타투이스트들이 숨어서 일을 하거나 외국으로 가고 있는데, 타투에 관한 문제는 확실히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타투를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알지 못했던 타투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사람마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고,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없다. 무엇이든 책임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예술을 이해 못 한다고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게 하나라도 있을까 불확실한 세상에서,

영원을 창조하고 새기는 ‘타투’.


내가 알아내지 못하는 의미가, 타인에겐 무엇보다 소중할 수 있는 게 예술이다. 타투가 적어도 ‘불법 의료’가 아닌 ‘예술’로서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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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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