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타]

글 입력 2018.08.2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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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건
- '완벽한 이해'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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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첫 장면에서는 위와 같은 질문이 나온다. 평소에는 생각 없이 넘겨보았던 장면이 어느 날은 한없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

문장을 제대로 곱씹어 보기 전, 나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 보통 타인을 이해할 때 ―엄밀히 말해서 어떤 상황에 처한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해보고 공감하려고 시도할 때― 나의 경험 중 상대의 경험과 비슷한 것에 비추어 보곤 한다. 그래서 나는 공감과 이해가 아주 쉽고 간단한 것이라고 여기고 나를 잘 이해해주지 않는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은근히 섭섭한 마음을 품곤 했다.

나는 중요한 사실들을 놓친 주제에 그 습관을 당당하게도 사용해왔다. '나는 나 너는 너, 독립된 존재로 살아왔다는 것', '나와 비슷한 경험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비슷할 뿐이지 전적으로 같은 경험이 될 순 없다는 것', '아주 흡사한 경험을 했더라도 그에 대한 개인의 반응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 나는 여태까지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그저 잘 이해한 것 같다고 혼자 착각해버린 것이다.

정서적인 교감을 필요로 하는 대화는 친밀한 사이의 사람들과 나누게 되는데, 이때 나의 좋지 못한 습관이 불쑥 튀어나온다. ‘아, 알 것 같다’, ‘네 맘 다 알겠어’, ‘다 이해해’. 맞장구를 칠 때 나의 말버릇이다. 이 말버릇은 아주 게으르고 건방지며, 그래서 위험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진짜 다 이해했다고 스스로 단정지어 버린다. 상대의 입장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게 된다.

이해와 공감을 시도할 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는 것이 마냥 잘못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까. 문제는 말로써 이해를 표현해버린 후 나도 모르게 대화의 본질에 이미 도착했다고 단단히 착각하는 데에 있었다. 상대는 이제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는데, 나는 속도 좋게 '헤헤 다 됐다!' 한 꼴이다.

게다가 상대의 말 하나하나를 나의 경험에 자꾸만 비추어 보게 되면 더 깊은 이해의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앞서 말했듯 어디까지나 비슷한 경험일 뿐이지 나와 같은 경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대화에 성실하게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 내 경험만을 토대로 아주 좁은 시야로 상대를 짐작해버리니 나의 개인적 경험 안에서만 끊임없이 뱅글뱅글 돌며 해석하게 된다. 대화의 진전이 더딜 수밖에, 혹은 대화가 진전되지 않을 수밖에.





나의 경험이 이 세상 모든 일에 들어맞는 것도 아닐 텐데 저런 태도를 옳은 것이라고, 당연히 맞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의 어리석음을 감내해왔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했다. 앞으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고민할 즈음 <알쓸신잡 2>에서 유시민 작가의 말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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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다 이해한다고 넘겨짚는 경솔한 습관은, 타인이 나를 완벽하게 이해할 거라는 기대감과 맥을 함께 하고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니, 반대로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다가 내가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내심 실망하고 서운해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공감은 쉬운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의 오만함에 대한 부끄러움, 나를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 엉성한 위로에서 안정감을 찾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알아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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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
「다른 어떤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 끝에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불가능하다’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불가능하다는 말이 냉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불가능이 기본값이 될 때, 서로가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것 같다.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하기 힘든 영역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유 작가님의 말처럼 우리가 근본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나도 모두를 이해할 순 없지만, 모두가 나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완벽하게는 아니라도 나를 알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완벽하게는 아니라도 나를 더 깊이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조금 덜 외롭고 더 충만할 수 있지 않을까.

경솔한 맞장구는 넣어두고, 내가 상대에게 더 닿을 수 있도록 말의 비중을 질문하기에 더 많이 두고 싶다. 두 귀에 여태까지 씌워둔 필터도 빼고 경청하고 싶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를 제대로 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

여태까지 당연했던 것은 당연하지 않았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받지 못했다며 섭섭해하고, 스스로 외로운 사람이구나 한탄하며 슬퍼했다. 지금까지의 나는 대화의 첫걸음만, 공감의 시작만 무수히 반복했다.

지금까지 나를 알아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어 준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는 내가 그 사람들을 덜 외롭고 더 충만한 사람일 수 있도록 곁에서 노력할 차례다.




참고 자료 : 영화 <다가오는 것들>, tvN <알쓸신잡2>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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