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술덕후’가 맛본 문화 –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문학]

글 입력 2017.07.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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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SNS 계정 프로필은 ‘목표는 한량’이다. 역사적으로는 직분이 없이 놀고 먹던 양반 계층을 말하지만, 현대에는 다소 의미가 가벼워져 돈을 잘 쓰고, 잘 노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단어 정의 참고 – 네이버 국어사전)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의 저자 니시카와 오사무는 그야말로 내가 꿈꾸는 ‘한량’이다.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이후,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열흘이나 계속된 것은 내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이었다.(중략) 런던에 닷새 정도 체류하는 동안, 사막처럼 메말라 있던 몸 구석구석에 맥주가 서서히 퍼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닷새 동안 얼마나 많은 맥주를 마셨을까. 그 덕분에 결국, 사막으로 출발하기 전의 술에 젖은 몸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p.23-27)


 프롤로그의 내용을 참고했을 때, 그가 얘기하는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이후’는 대학 시절부터 일컫는 것 같다. 그 이후로 열흘 내리 금주한 경험이 없다니. 사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군대 시절을 제외하면 나 역시 열흘 동안 술을 안 먹은 기간은 없었지만, 그와 비교하면 나는 음주 경력이 한참 짧지 않은가. 다음 행선지에서 필자는 바로 맥주를 채워 넣었다. ‘몸 구석구석에 맥주가 서서히 퍼져나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다. 술을 정말 좋아하지 않고는 저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그 생각은 점점 확고해졌다. 이 책은 술에 대한 저자의 사랑고백이다. 술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하지 못할 경험, 쓰지 못할 단어들이 이어지며 술을 예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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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본문 p.150>
 
 

“내가 이탈리아의 비노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닥치는 대로 마시는 나의 술 습성 때문이다. (중략) 밀라노에 살았던 500일 동안, 과연 내가 마신 술은 얼마나 될까? 적게 어림잡아도 1400병은 넘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탈리아반도 북쪽에서 남쪽까지, 모든 지방에서 만들어진 각각 개성이 다른 다양한 종류의 비노를 마음껏 마셨다.”(p.101)
 
애주가인 나는 알코올이라면 무엇이든 사양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갖춘 사람이다. 그래서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는 달착지근한 메콩위스키를 컵에 듬뿍 따라 목구멍 안으로 흘려 넣고 라압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참을 수 없는 매운맛! 다시 자연스럽게 메콩위스키로 손이 간다. 정말 잘 어울리는 콤비다.”(p.112)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물처럼 가벼운 투명감이 아니라 인공적인 손길이 더해져 만들어낸 투명감이 느껴진다.. 그 때문인지 가벼움과 예리함과 순수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맛이 풍긴다. 그리고 몸 속으로 퍼지는 순간, 뿌듯한 충족감이 온몸을 감싼다.”(p.149-150)
 
술을 마실 때, 알코올의 작용은 입에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감각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온몸에서 희미한 취기가 느껴질 때에는 살아 있다는 것이 그다지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꽤나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아니,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즐겁다. 아니, 그게 아니라….. 술을 마시면 낮에 있었던 기분 나쁜 문제들도 모두 용해된다. 알코올은 인간을 만들어준다. 술과 맛있는 안주가 인격을 육성해준다.”(p.255)


 ‘덕후’가 각광받는 요즘이다. 저자는 진정한 ‘술덕후’다. 모든 애주가가 꿈꾸는 세계의 명주를 맛보는 진귀한 경험을 한 그야말로 ‘성덕’(성공한 덕후)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술을 마시며,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음주를 즐겼기에 그런 40년 세월을 담아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식견이 돋보이는 대목은 술집의 분위기와 술을 들이켜는 방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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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본문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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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본문 p.250>
 
 

재미있게도, 고풍스런 퍼브에는 어디나 문이 두 개씩 있었다. 따라서 문이 두 개 있는 퍼브는 꽤 전통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에, 영국은 상류사회에 속하는 사람과 노동자 계급이 엄격하게 구별되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속하는 계급에 맞추어 두 개의 문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들어가게 된다.”(p.25-26)
 
한국인은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 그릇을 들고 먹는 경우가 거의 없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먹는다. 그릇을 손에 들고 먹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지만 익숙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중략)어쨌든 그런 한국인의 음식문화에서 막걸리는 예외다. 남자들은 다시 사발을 손에 들고 남은 막걸리를 비우고 손등으로 입술을 스윽, 훔친다.”(p.166-167)
 
“오래 전부터 피지인들은 무덥고 힘든 일과를 마치고 난 후, 동료들과 이 카바를 마시며 기분전환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카바를 제공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손님을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환영의 의미이고, 또한 적대자들 사이에서는 화해를 상징하기도 한다.”(p.251)

 
 막걸리를 마시며 한국의 식문화에 대해 생각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저자의 이런 식견은 그가 단순히 여러 나라에서 일정기간 머물며 술로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 입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맛보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외국에서 지역 주민들의 행동을 따라하며 막연한 동질감을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p.112) 세계의 명주와 그에 어울리는 안주, 그것을 먹는 방식과 그렇게 먹게 된 이유를 살펴보며 저자는 문화를 수용하는 자신만의 관점을 구축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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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을 꼴딱꼴딱 삼켜가며 술에 대한 묘사를 읽어갔다. 펼친 자리에서 한 번에 책을 읽어나갈 수 있어 다행이다. 책 한권을 며칠 동안 술 마실 이유로 삼을 뻔 했으니. 책을 덮고 나는 그 날밤 친구와 소맥을 마셨다.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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