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니 핑크- 그냥 앞으로, 앞으로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6.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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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앞으로만 가 그리고 시계는 보지마 항상 몇시인지만 알리려 하니까 알겠지? 항상 "지금"이란 시간만 가져


우린 오직 '현재'만을 사는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가 "지금"이란 시간만을 갖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결국 우리 안의 '불확실함'때문이지 않을까. <파니 핑크>는 원제목으로 1994년도에 개봉한 도리스 도리 감독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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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찾지 못 하는 29살 파니는 '현재'보다는 '죽음'을 준비하며 나날을 보내는 여성이다.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그녀는 현재를 충분히 즐길 수 없다. 그녀가 보는 '세상'과 '자신'은 반쯤 '채워진' 물컵이라기 보단 '반쯤 덜 채워진' 물컵이기 때문이다.


   오르페오     이 잔을 봐 반이 찼어, 비었어?

   파니 핑크    비었어

   오르페오     봐, 그게 문제야. 없는 것이나 불가능한 것 잃을 것에 대한 불평 항상 부족해하는 마음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잖아. 일, 집, 가족, 좋은 피부색 대체 뭘 더 바래?
 

오르페오와 파니의 대화를 통해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에 만족할 줄 알며, 현재를 즐기는 삶'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식상하고 상투적인 이 말은 때때로 '그건 현재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만 하는 소리지'라는 불평을 만들 수도 있지만, 잊고있던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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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오르페오는 우리나라로 치면 '무당'과 같은 신통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아르마니 옷과 금발, 그리고 23이라는 숫자를 갖는 남자가 파니의 마지막 남자라고 예언한다. 확실히 믿음이 가는 예언은 아니지만, 사랑을 하고 싶은 파니는 그 말에 돈을 지불하고 운명을 기다린다. 오르페오는 영화 속 점성술사로 등장하지만 사실 그는 마이너리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의 '피부색'과 '동성애자'라는 설정, 그리고 변변한 직업 조차 없는 그의 '가난'은 편견이 가득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에는 힘든 위치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파니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파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는,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르페오는 아직도 어린아이같은 파니를 잘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후반 부에서 둘은 보통 이성들이 하는 사랑(예를 들어, 육체적 사랑)은 아니지만, 정신적 사랑을 하는 관계로 발전한다.오르페오의 예언대로 운명의 남자가 자신을 찾아 올 것이라 믿고 있던 파니는 어느 날 자신의 아파트에 새로 온 관리인 남자를 보고 운명을 믿게 된다.그는 아르마니 양복에 2323 제규어를 탄 금발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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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을 들어보고 싶어요..
'파니핑크, 널 사랑해. 내 인생엔 네가 필요해.. 같은'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다른 이에게도 사랑을 받을 수 없다. 매일 죽음만을 고려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그녀, 자기최면을 하지 않으면 자신을 믿을 수 도 사랑할 수 도 없는 그녀(파니)에게 있어서 사랑은 가장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자신의 운명인 줄 알았던 남자는 그저 매일 밤 옆에 여자가 없으면 두려움에 잠을 청하지 못 하는 겁쟁이일 뿐인 사람이었다. 자신에게도 드디어 사랑이 찾아 왔다며 들떠있던 그녀는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해 주지 않는 그 남자에게 상처를 받지만, 오르페오와의 관계를 통해 오히려 더 성숙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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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오는 자신은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말만 남기고 파니를 떠난다. 그가 말하는 행성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르페오와의 관계로 인해 파니는 한 층 더 성숙한, 자신감있는 '여성'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한 여성의 삶을 다루는 영화는 많지만 <파니 핑크>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다소 '나이가 많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사랑하지 못 하고 있는 소위 '노처녀'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당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 누군가를 통해서든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서든 나 스스로 반쯤 채워진 물컵을 '덜 채워진'이 아닌 ' 반이나 채워진'으로 생각하게 될 때, 우린 그 때서야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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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오르페오가 떠난 후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던 파니에게 큰 변화를 줄 일이 찾아온다. 23이란 숫자를 가진 남자가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이를 통해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운명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떠단다고 할 지라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저 당신은 현재를 살며 앞으로, 앞으로 가면 된다. 나 자신을 사랑하며 "지금"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이에게 '사랑'은 언제나 찾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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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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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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