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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재조명 작업 - 14.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 그걸 사랑하는 거지.

짜파게티에 최선을 다하는 라순이의 이야기

by 한세희 에디터
2026.09.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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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짜파게티를 좋아한다. 못 먹어도 삼사일에 한 번 꼴로 먹는다. 한창 꽂혀 있을 때는 짜파게티를 아예 박스 채로 사다 놓고 먹었었다. 집에서 짜파게티를 가장 잘 먹는 사람도 나고 가장 잘 끓이는 사람도 나다. 라면 끓이기가 요리 축에도 못 낀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짜파게티는 그래도 정말 끝내주게 만들 수 있어서 꺼드럭대고 싶은 음식이다.


      고향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끓일 때의 마음으로 짜파게티를 끓인다. 실제로 된장찌개를 잘 끓이진 못하지만 된장찌개나 청국장을 만들 때 괜히 더 우러나오게 되는 진득한 정성을 짜파게티에 담는다. 자주 먹으면 좋지는 않겠지만 고향 짜파게티라고 부르면 왠지 이로운 느낌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 짜파게티를 먹으라는데 나는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짜장면은 짜장면이고 짜파게티는 짜파게티지. 둘은 판이하게 다른 것인데 왜들 그러는지 진짜 서운하다. 짜파게티는 하나의 고유 명사. 적당한 게 없어서 그와 비슷한 것으로도 절대 대신할 수 없는 것. 내가 사랑하는 음식이 꿩 대신 닭이라니 말도 안 된다. 이것은 치열한 존재의 영역이다.


      그동안 짜파게티가 가진 본연의 맛과 그 이상의 다채로운 맛을 구현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가. 눈물 겨운 시행착오들을 떠올린다면 짜파게티는 결코 짜장면이 될 수 없다.


      열한 살 때의 망작을 떠올려 볼까나. 라면 끓이기에 처음으로 성공한 다음 이상한 허세에 빠진 기억이 난다. 빨간 라면에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물 버리기가 있는 라면의 조리법을 가볍게 무시한 게 화근이었다. 얼마나 허술했는지 면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그제서야 짜파게티 봉지를 반대편으로 돌려 볼 생각을 했다. 짜파게티는 이토록 다른 영역임을 불을 대로 불어터진 면을 보며 깨달았다. 흡사 올챙이국수처럼 힘아리 없어 보였다. 불쌍한 면은 짜장가루와 만나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무지한 나로 인해 씽크대에 버려졌다. 그게 내 라면역사에서 첫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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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라순이가 되기를 자처했다. 망한 건 망한 거고 아직 제대로 된 짜파게티 1호의 맛은 못 봤으니까. 입문자는 늘 그렇듯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짜파게티 끓이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더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보통의 라면보다 감수해야 할 귀찮음이 많았다. 특히 면수를 버리는 타이밍에서 실패가 잦았다.


      항상 어려운 것이 이 ‘적당한’이다. 뭐든 정도에 알맞게 하는 것은 얼마나 모호하고 기 빨리는 일인가. 면이 적당한 쫄깃함으로 익은 상태일 때 면수를 따라내야 하는데 거기서 더 익어버리거나 덜 익으면 결과적으로 맛이 없다. 스프를 넣고 국물을 살짝 졸이는 시간까지 계산해 면이 알맞게 익는 바로 직전! 그때가 면 컨디션이 제일 좋은 때다. 그 다음부터는 걱정할 게 없다. 자박자박할 정도로만 면수를 남기고 동봉된 과립스프와 올리브 조미유를 넣어 골고루 섞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내게 있는 모든 센서를 총동원해서 완성해 낸 최상의 짜파게티! 정말로 봉지에 인쇄된 라면처럼 닮아있었다. 맛은 둘이 먹다 하나가 어떻게 돼도, 아니 옆에 애가 뭘 먹든지 말든지 상관없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강렬했다. 그 귀찮은 일요일에 왜 다들 요리사를 자처하는지 알 것 같은 맛이었다.

       

      기본기를 익힌 나는 원하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극강의 니글니글함으로 기분 좋게 치가 떨리고 싶을 때에는 노란 슬라이스 치즈 한 장을, 그게 지겨울 때에는 청양고춧가루나 캡사이신을 마음껏 추가했다. 면수를 조금 더 남긴 상태에서 다시다를 살짝 넣어 주면 짜장소스를 확보할 수 있어 2차로 짜장밥까지 가능하다. 평소보다 짭짤하기 때문에 밥을 비볐을 때 간이 딱 맞는다. 짜파게티를 어느 반찬과 곁들이냐에 따라서도 그 맛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단무지, 파김치,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무생채, 겉절이 등등 페어링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많다. 고만고만해 보여도 엄연히 다른 결의 맛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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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열정으로 공부를 했더라면 서울대를 갔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런 아쉬움은 딱 3초 간다. 허나 어쩌겠는가. 짜파게티에 영혼을 갈아 넣는 최선도 있는 것을. 냄비를 올리며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나중에 작은 집 짓고 살면 좋아하는 사람들 놀러오라고 해서 내가 만든 짜파게티를 야식으로 먹여야지. 스페셜 토핑을 듬뿍 얹어 줘야지. 나의 특급 장기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유감없이 발휘해야지.’


      자랑스러운 재주인 짜파게티 요리를 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상상하며 빨간 라죽에다 치즈를 넣어 만든 리조또를 먹고 있는 나. 이런 얘기를 할 때 뻔뻔해지는 나는 남들에겐 무용할지 몰라도 무언가를 깊게 사랑하는 이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게 내 안에다 차곡차곡 저장하고 있다. 설령 이 모든 게 무용할지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감각은 중요한 거니까.


      짜파게티를 끓일 때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짜파게티를 만들며 몸에 새긴 최선과 감동은 내게 그것을 언제든지 꺼내어 다른 무엇으로 얼마든지 구현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물론 사랑해도 종종 시험에 들 수 있다. 많이 사랑할수록 더 그럴 것이다. 때려치울까 말까 할 때, 다 내려놓고 싶을 때 그래도 한 번 더 붙들어 보고 들여다보는 것. 그래도 의심이 들면 ‘그래? 그럼 내가 더 사랑해서 의심도 덮어버릴게!’ 하는 객기도 발휘해 보는 것. 이런 게 내 삶에서 어떤 효력을 발휘할지 의심하는 일에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럴 시간에 더 많이 먹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치고 나가기로 했다.


      하찮아도 내가 믿는 것은 그러하다. ‘사랑하면 보인다’는 말에 늘 진심이면서도 잊는 날이 너무 많다. 그래서 무언가에 다가가려할 때 짜파게티를 자주 떠올린다. 짜파게티를 향한 나의 애정이 최초로 싹텄던 순간은 언제였지? 짜파게티 1호 맛은 어땠더라? 그때보다 지금 맛이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하지? 그런 걸 복기하다 보면 많이 좋아하고 사랑해서 뭐가 더 보이게 하자는 다짐만 남는다.


      그런 의미로 내일은 김치랑 어묵을 송송 썰어 넣어 김치우동 맛으로 만들어 먹을 거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들의 빅데이터를 구축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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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당연함에 가려졌던 익숙한 대상과 사건들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고

      그 가치를 기록하는 <재조명 프로젝트>의 작업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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