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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혹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십니까 - 상자 속의 양 [도서]

보이지 않는 상자 속을 가득 채운 무한한 인간성에 대하여

by 김민정 에디터
2026.08.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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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어디까지 믿고 상상할 수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상당히 민감하면서도 본능적인 ‘죽음’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 물음을 던졌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고, 복구될 수 없는 현상이자 사실인 ‘죽음’이 기계를 통해 불완전하게나마 부활한다.

 

이 방법을 통해 부활한 건 가장 여리고 순수한 그들의 아이다. 건축 일을 하는 코모토 부부에게 닥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부부는 자녀인 카케루를 잃었다. 덮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이들 눈앞에 나타난 건 죽은 사람을 되살려 주는 휴머노이드 서비스였다. 심지어 이미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는 데다 비용까지 무료인 AI 서비스. 이 부부는 그렇게 아들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 로봇을 얻었다.

 

신청을 강하게 주장한 오토네는 마음이 따르는 대로 이 로봇에게 아들을 투영한다. 기계인 걸 알면서도, 휴머노이드 카케루 앞에서 먹는 음식과 목욕에 관한 이야기를 자제하면서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상실에 대한 상처를 카케루로 인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남편인 켄스케는 돌아온 카케루와 가까워지지 못하며 본인을 ‘아저씨’라고 부르라 말한다. 카케루에게서 순간순간 진짜 아들의 모습을 보지만, 오토네만큼 카케루를 아들로서 받아들이지는 못한 채로 카케루와 서먹한 사이를 유지한다. 그렇게 카케루와 각자 다른 거리감을 가진 채로, 가족은 다시 과거의 가족이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돌아온 카케루는 하나의 상자였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것처럼 오토네는 겉모습만 같은 카케루에게서 보고 싶었던 카케루의 모습을 본다. 부부의 곁에서 생활하고, 웃고, 배우는 카케루의 모습을 보며 꿈만 꾸던 삶을 실현한다. 정작 카케루는 그 사이에서 다른 휴머노이드 집단과 교류하며 스스로의 집에 대해 생각한다. 좁힐 수 없는 격차 속에서 셋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처럼 보이는 것을 넘어선 믿음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었지만, 또 스스로를 의심하게 했다. 보이지 않기에 좋을 대로 생각했고, 멋대로 실망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제각기 해답을 찾아갔다. 현실을 다시 마주하고, 묻어 두었던 감정을 털어내고, 새로운 집을 찾아갔다.

 

이 이야기는 AI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복잡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이 주제에 대해 아주 인간적이고도 평화로운 결말을 써냈다. 여기서 독자는 이 이야기 밖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상자를 떠올릴 수 있다. 어쩌면 매일 마주치는 나의 카케루, 나의 AI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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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인격을 부여하는 건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드문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프롬프트에 자신이 원하는 인간상을 입력하고, 모니터 너머의 인공지능이 이 프롬프트대로 만들어지길 원한다. 누군가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오롯한 친구처럼 여기기도 하고, 선생으로, 혹은 애인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 속에서 무의식적인 믿음을 가지는 건, 인간 본성의 영역이다.

 

기계를 기계로만 취급하지 않고, 마음을 나누는 상대로 인식하는 것. 나눈 마음을 기억하고 그 속에서 위로와 해답을 찾는 것. 이 모든 과정을 인위적이라 여기지 않고 진실된 과정이라 여기는 것 모두 인간의 본능이다. 이 모든 건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믿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오토네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가능성은 인간성에 대한 가능성이다.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가치를 포착해내고 이를 엮어내는 건 인간이 특화된 부분이다. 인간은 ‘자동차’에서 ‘여정’을 읽어내고, ‘닳아버린 연필’에서 ‘노력’을 읽어낸다. 그 기틀에는 다양한 존중, 배려, 만능의 가치가 있고 이 가치가 다시 인간과 엮일 때 우리는 이 성질을 인간성이라 부른다.

 

인류는 이 꾸준한 명제를 무수히 다양한 모습의 상자로 만들어왔다. 어린 왕자가 양이 들어있는 종이 위의 상자로 내면의 중요성을 말했던 것처럼, 이제는 카케루, 혹은 기계나 AI라는 상자로도 그 명제의 의의를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하여 상상하고 고민하는 일이 얼마나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인지, 인류는 계속해서 오랜 기간 생각해 온 것이다.

 

그 답은 당연히 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른 형태를 띤다. 우리가 상자 속의 양이 영원히 어떤 모양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처럼, 모두의 상자는 다 다른 모양을 한 채 그 속에 다 다른 해답을 품고 있다.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답을 찾아낸 오토네와 켄스케, 카케루처럼, 우리도 우리 각자의 상자에서 다 다른 답을 찾아내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가끔은 무엇보다도 선명한 확신을 주는 그 답 말이다.


상자와 상자 사이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세상 만물과 관계를 지속하고 재정의해 나간다. 그 속에서 그들은 상자 속 존재에 대한 답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인간성이라는 근본 위에서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상자 속의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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