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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에겐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 여럿 있다. 학창 시절을 같이 한 학교 친구들과 같이 성장한 대학 동기들, 우연히 만난 인연들까지. 그중에서도 제일 자주 만나는 친구가 있다. 최소 하루에 두 번, 액정 속에서 만나는 ‘밥친구’다.

 

‘밥친구’. 말 그대로 밥 먹을 때마다 만나는 친구란 뜻이지만 한국인이라면 알듯이 무조건 인물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밥을 먹는 순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그 무엇이라도 밥친구가 될 수 있다. 실제 사람이든, 인형이든, 물건이든, 혹은 만져지지 않는 무엇이든. 덕분에 외국어로 번역하기에도 난감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보통 한국에서는 ‘밥친구’라고 하면 식사에 함께하는 영상 미디어 콘텐츠를 떠올리기야 한다.

 

이 단어를 굳이 풀어가며 설명하는 이유는 최근 이렇게나 실재적일 수도, 또 허상일 수도 있는 존재가 새삼 나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밥을 먹을 때 이 ‘밥친구’가 없으면 안 되었다. 조금이라도 나의 식사 시간을 같이 해줄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야 밥 다운 밥을 먹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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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향력을 깨닫게 해준 최근 나의 ‘밥친구’는 고로 상이다. 참고로 고로상 이전에는 백종원이 있었다. 나는 자주 ‘스트리트푸드파이터’를 시청하며 밥을 먹곤 했는데, 영상 속에서 보여지는 전세계의 맛과 향이 입맛을 자극했다. 자연스레 ‘맛있겠다’는 생각이 더해지니 내가 먹는 밥도 왠지 모르게 맛있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스트리트푸드파이터’를 몇 번이나 정주행하자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인물이 바로 고로 상이다. 특유의 유유자적함과 적당한 리액션, 독특한 비유를 겸비한 백종원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미식가. 그렇게 내 밥친구는 타국의 ‘고독한 미식가’가 되었고 나는 오늘도 그 영상을 틀고 첫 숟가락을 떴다.

 

액정 너머의 고로 상은 매 순간 정말 다양한 메뉴를 맛본다. 정통 일식부터 가정식, 이자카야와 길거리 음식을 거쳐 한식과 중식까지. 그 메뉴를 고르는 과정부터 정말 진지한데, 먹는 것에 진심인 나로서는 무엇보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먹어야 해서 먹는 게 아니라, 최대한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하는 부류. 어떨 땐 정말 피곤하지만, 이 과정을 거친 뒤 맛보는 미식의 세계는 무엇보다 만족스럽기에 언제나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크기변환][#고독한미식가] 밥까지 리필하게한 엄청난 프라이의 맛! 바닷가 근처의 한적한 식당 '하마베'  _ 갓튀긴 전갱이 프라이와 밥 _ 채소절임&감태 된장국 외 6-57 screenshot.png

 

[크기변환][#고독한미식가] 밥까지 리필하게한 엄청난 프라이의 맛! 바닷가 근처의 한적한 식당 '하마베'  _ 갓튀긴 전갱이 프라이와 밥 _ 채소절임&감태 된장국 외 8-2 screenshot.png



특히 좋아하는 회차를 꼽으라고 한다면 갓 튀긴 전갱이 프라이가 나오는 ‘하마베’편이다. 먹음직스럽게 튀겨진 커다란 전갱이 튀김을 먹고 있는 고로 상을 보면 배에서 절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보기만 해도 기름기 가득한 생선의 촉촉한 살과 바삭한 식감이 어우러져 입에서 사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다. 그 부담감을 덜어주는 싱싱한 양배추샐러드의 아삭함까지도 어렵지 않게 그 조화를 그려낼 수 있다.

 

그 감칠맛을 더욱 끌어올려 주는 것은 특유의 아늑하고 정갈한 영상의 분위기다. ‘스트리트푸드파이터’가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과 카메라 워킹으로 시선을 빼앗는 화려한 불맛이라면 ‘고독한 미식가’는 정직하고 담백한 채수의 맛이다. 적당한 소란스러움과 정감 가는 소소한 이야기들, 나직한 나레이션, 깔끔하고 미니멀한 플레이팅이 그 채수의 재료다.

 

그 흐름을 따라 밥을 해치우다 보면 마치 고로 상이 나의 푸드 페이스메이커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고로 상의 한 입을 바라보다 나도 한 입, 다시 고로 상이 음식을 푹 떠먹으면 나도 숟가락을 푹. 음식을 음미하는 그 저작운동의 리듬이 나에게도 옮겨붙기라도 한 것처럼 턱을 움직이다 보면 식사는 찰나의 마라톤이 되어있고, 영상이 끝나갈 때쯤이면 어느덧 비슷하게 한 끼 식사를 완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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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밥친구’는 누구에게서나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로 공유하고 추천하다 보면 서로의 취향도 자연스레 알아가게 된다. 누군가는 최신 예능을 보며 밥을 먹기도 하고, 누군가는 드라마를 보며 밥을 먹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나처럼 ‘먹방’을 보면서 밥을 먹고 있을 터였다.

 

그럼 우리는 왜 밥을 먹을 때마다 ‘밥친구’를 찾게 될까. 왜 밥을 먹을 때 무언가를 시청해야만 할까. 외로워서? 적적해서? 아쉽게도 ‘밥친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간단한 설문 정도는 가능했다. 몇 명은 예상대로 ‘심심해서’라 답했고 몇 명은 ‘그래야 안정감이 들어서’라고 답했다. 의외로 ‘밥을 먹는 행위에 집중하기 싫어서’라는 답변도 있었다. 이런 이유들은 ‘혼밥’이 유별나게 불리는 것과도 아마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대상들을 밥‘친구’라고 부르는 이유도 우리의 심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에 그러함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저 미디어 반찬이라고도 부를 수 있었는데 귀엽게도 ‘친구’라 불러주는 정다운 한국인들. 솔직히 일상 속 필수적인 순간마다 함께하는 존재이니 얼마나 소중한가. 그야말로 필연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기마다 그렇게나 애를 태우며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를 물색하는 것도 이런 심리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밥친구’에 많이 의존한다고 해서 굳이 ‘밥친구’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불쌍한 프레임을 스스로에게 씌울 생각은 없다. ‘밥친구’는 나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조미료와 같은 존재니까. 있으면 폭발하는 감칠맛에 입맛이 마구 돌지만 없어도 뭐 못 살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소중함이 느껴진다면 모순일까. 우리가 유기농이니 수제 천연이니 하는 것들을 내버려두고 미원과 다시다를 찾는 것처럼 그저 팍팍한 일상 속에서 약간의 쾌락을 추구할 뿐이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일각에서는 이런 행위가 결국 잘못된 식습관을 형성하며 신체에 좋지 않을 것이라 조언한다. 실제로도 그러한 것이 사실이다. 관련 자료들을 알아보다 보니 이 행위는 일종의 중독과 비슷했다. 더욱더 맛있게, 보다 더 재밌게 잠깐의 여유를 더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하는 이상한 효율주의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더불어 포만감의 정상적인 인지에 방해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스스로 인지하고 제어하지 못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건 순식간이다. 나의 ‘밥친구’가 아니라 내가 ‘밥친구’의 밥친구라도 된 것처럼 끝나지 않는 식사를 하게 된다. 한 입만 더, 한 입만 더 하다 보면 영상이 끝나있을 때쯤에는 되레 불쾌한 더부룩함이 몸을 덮친다. 자연스레 따라오는 혈당 스파이크는 어떠한가. 스르르 잠에 드는 순간에 드는 죄책감은 어떠한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이 ‘밥친구’에도 인간 만사의 교훈이 따라온다. 바로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정도’를 지키는 것이다. 충동과 인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교훈은 어디를 가나 만사형통임을 다시금 느낀다. 그러니 입 안 가득 차는 행복과 두 눈과 귀가 다채로운 만족감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씁쓸한 고독이 찾아오더라도 그 고독을 밥친구 삼아 새로움을 느끼는 묘미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난 뒤 다시 그 만족이 찾아왔을 때 몇 배로 즐겨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왜 몸에 나쁜 것들은 이렇게나 행복하고 편리할까. 탄식 섞인 아쉬운 소리가 따라 나오는 것조차 인생 교훈의 클리셰 같다. 이런저런 저울질 사이에서 나의 건강과 욕망이 오락가락한다. 그럼에도 결론은 역시 이런 교훈만 따라가는 인생은 무리다. 고로 상이 느끼는 행복을 나도 느끼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식사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까지 끌어와서라도 행복을 사수하고 싶다.

 

그러려고 사는 게 결국 또 인생이니 누가 말릴쏘냐 싶다. 다만 이제는 알았으니 잘, 조절하며 나의 페이스를 지켜야겠지. 그렇게 오늘도 결국 고로 상은 내 앞에서 밥을 먹었다. 어제보다는 조금 느리게, 꼭꼭 씹어서 음식을 삼키는 나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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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고독한 미식가 시즌8 01화

[#고독한미식가] 밥까지 리필하게한 엄청난 프라이의 맛! 바닷가 근처의 한적한 식당 '하마베'_갓튀긴 전갱이 프라이와 밥_채소절임&감태 된장국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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