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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사랑이란 붉은 신호등 - 모순 [도서/문학]

풍요와 빈곤, 안정과 불안 사이에서 진진이 발견한 행복의 기준

by 이수민 에디터
2026.08.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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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1998년 출간된 양귀자의 장편소설이다. 스물다섯 살의 안진진을 중심으로 가족과 사랑,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시장에서 내복을 팔며 살아가는 어머니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모는 일란성 쌍둥이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진진은 두 사람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그리고 자신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고민하게 된다.


같은 얼굴로 태어난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설정은 『모순』이라는 제목과도 닮아 있다. 가난한 어머니에게는 끊임없이 처리해야 할 일이 있지만, 그만큼 삶은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반면 부유한 이모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오히려 지루함이 삶을 채운다. 어느 한쪽을 완전히 행복하거나 불행한 삶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서로 다른 두 삶을 바라보는 진진


 

진진의 고민은 결혼과 함께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어머니와 이모가 서로 다른 결혼을 통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 것처럼, 진진 역시 자신의 앞에 놓인 선택을 통해 앞으로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 진진 앞에 나영규와 김장우가 나타난다.


나영규는 계획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약속 시간과 데이트 일정까지 철저하게 정하고, 앞으로의 삶 역시 구체적으로 계획한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를 미리 정해놓고 그 안에 맞춰 살아간다.


반면 김장우는 나영규와 정반대의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미래 역시 확실하지 않지만, 야생화 같은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진진 역시 김장우와 함께 있을 때는 자신의 부족한 모습까지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단순한 성격의 차이가 아니다. 진진에게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안정적이고 계획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불안정하더라도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모순』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


 

『모순』은 어느 삶이 더 행복한지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반대되는 삶을 보여주면서 행복을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고, 고단한 삶을 산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을 갖추었느냐보다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진의 선택 역시 단순한 '남편 찾기'로 볼 수 없다.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정은 자신이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한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인상 깊었던 문장


 

『모순』에는 사람과 관계를 바라보는 진진의 생각이 곳곳에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이 문장은 우리가 관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쉽게 잊지 못하면서도, 그 사람이 베풀었던 마음과 은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쉽다. 결국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이 받은 것보다 자신에게 남은 상처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붉은 신호등'에 비유한 표현 역시 인상적이다. 사랑은 언제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감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지금까지의 삶을 멈춰 세우고, 자신이 가려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위험을 알리는 동시에 그곳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게 해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진진이 나영규와 김장우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도 결국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에 가깝다.


그래서 이 두 문장은 『모순』이 사랑과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사람의 삶에는 상처와 은혜가 함께 존재하고, 사랑 역시 행복과 불안이 동시에 따라온다. 결국 완벽하게 좋은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까지 감당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양귀자가 바라본 '모순'의 삶


 

양귀자는 『모순』을 통해 삶이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행복과 불행, 풍요와 빈곤, 안정과 불안은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의 삶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특히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 출간된 『모순』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을 다시 바라볼 기회를 건넨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는 당시 작품에 대해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라고 이야기하며, 불안한 현실 속에서 소설이 사람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를 고민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모순』은 단순히 사랑과 결혼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

『모순』을 읽으며 제가 생각했던 행복의 기준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안정적이고 계획된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것 없이 원하는 조건을 갖추고, 앞으로의 미래까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삶이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진과 두 사람의 관계를 따라가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함께 있을 때 편안하고, 억지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관계.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삶. 어쩌면 제가 원하는 행복은 완벽하게 갖춰진 삶보다 그런 순간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모순』은 제게 ‘어떤 삶이 더 행복한가’를 묻기보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때 가장 나다울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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