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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혈연관계, 계약을 종료하시겠습니까?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 <상자 속의 양> 리뷰

by 조은서 에디터
2026.06.25 11:21

 

 

오래전부터 SF 장르를 좋아해 왔던 사람으로서 그중에서도 유독 좋아하는 소재는 바로 AI,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 같은 키워드들이었다. 인간과 비인간의 모호한 경계, 묘한 섬뜩함 때문에 이러한 소재가 등장하는 콘텐츠들은 영화가 끝나면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침, 이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에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고 해 잔뜩 기대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 A.I > 같은 느낌을 기대하고 갔으나 그보다는 '안드로이드물의 탈을 쓴 가족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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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부부는 리버스(Re-birth)라는 회사로부터 죽은 아들과 똑 닮은 안드로이드를 렌탈하게 된다. 리버스는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죽은 이를 재현하는데, 이때 아내 오토네는 물, 음식 섭취 등 로봇이 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기억이나 부정적인 기억은 걸러내고 행복한 기억을 위주로 전송한다.

 

카케루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안드로이드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가족들이 선별한, '편한 기억'들로 재구성되어 그들이 기억하는 떠난 이의 좋은 면만을 재현한다. 그 때문에 카케루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카케루의 유치원 친구는 단번에 알아보지만, 인간 카케루가 싫어했던 것들은 알지 못한다. 결국 영화 속 등장하는 어린아이 모습의 안드로이드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들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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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부부의 집에 온 안드로이드의 외형은 놀라울 정도로 아들 카케루와 닮았고,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남편 켄스케조차 생전 카케루가 그랬듯 철도 역 이름을 줄줄 외는 것을 보며 정을 붙인다. 이처럼 자신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를 받아들이고 아끼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범주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그들의 관계에는 금이 간다.

 

카케루와 함께 놀이터에 간 오토네는 청소년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가 카케루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안드로이드는 카케루에게서 GPS 칩을 제거해 주고,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다른 안드로이드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 준다. 카케루에게 '자유'를 알려준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녀는 부모보다도 친구에게서 더 많은 동질감과 위안을 얻는다. 카케루와 다른 안드로이드들에게는 '죽은 자식의 대용품'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고, 그들 무리에는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인간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부모에게서 상처받은 아이들은 더욱 자기들끼리 결속하고, 자신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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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카케루에게 애정을 퍼붓던 오토네는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다녀간 이후로 태도의 변화를 보인다. 오토네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엄마를 향한 원망의 감정이 있다. 갑작스레 찾아온 엄마에게 정작 자신이 원할 때는 엄마로서 곁을 지켜주지 않고, 원하지도 않을 때 불쑥 찾아와 갑자기 엄마 노릇을 하려 한다며 쏘아붙이기까지 한다.

 

이후 카케루가 이제는 더 이상 쓸모없어진 집 모형을 왜 놔두냐고 묻자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며 이전과는 달리 그를 로봇으로서 대한다. 오토네의 기분을 알아챈 카케루가 자신이 없는 편이 더 낫냐고 묻자, '멋대로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말라'며 화를 내며 '엄마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이 장면에서 카케루는 묻는다. "계약을 종료하시겠습니까?" 이 말은 관객과 오토네에게 카케루가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동시에 그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형성하게끔 한다. 내 아이가 문득 너무나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감각. 오토네가 안드로이드 카케루에게 느껴왔던 이질감은 바로 이 부분에서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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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갈등을 겪던 오토네와 켄스케는 안드로이드 카케루가 죽은 카케루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오토네와 인간 카케루가 태어났을 때 각각 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 것처럼 로봇 카케루를 위한 올리브 나무를 심는다. 하지만 카케루는 여전히 다른 안드로이드, 그리고 학대받은 인간 아이들과 떠나고자 계획을 세운다. 건축가인 오토네를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며 저와 친구들이 살 집을 직접 설계하기까지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슬퍼하면서도 카케루와 친구들이 히로시마에 새로 정착하는 것을 돕는다. 다시 한번 아들을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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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햇빛을 보여주고 물을 줘가며 애지중지 키워도, 자식은 나무가 아니다. 오히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홀씨와 같다. 어디에 터를 잡게 될지, 자라서 무엇이 될지, 하물며 무사히 땅에 안착하기는 할지 감히 예상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카케루와 그의 사촌이 어른들에게 '어째서'라는 물음을 던지면, 어른들은 '어째서든'이라고 답한다. 어쩌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훌쩍 멀어진 아이에게 '어째서'라고 물으면, 부모에게 돌아올 대답은 '어째서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때가 되면 부모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설계도를 손에 꼭 쥔 채 숲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때가 되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토네와 켄스케처럼 아이의 독립을 응원해 줄 수 있을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 '나'는 양을 그리는 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에게 상자 하나를 그려준다. 상자 속에 양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때부터 어린 왕자의 머릿속에서는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양의 모습이 상자 속에 나타난다.

 

아이들 역시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 상자를 하나씩 품게 된다. 부모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를 조금씩 키워나간다. 부모의 시점에서는 그들 스스로 지어낼 집에 대들보 하나 없어 걱정이 앞서도, 오토네와 켄스케가 그러했듯 부족한 부분을 보강해주며 자신만의 집을 짓는 것을 응원해주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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