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하늘은 푸른 바다만큼 파랗다. 꽃보다 나무와 풀이 돋보이는 이 계절은 자라나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때론 말라비틀어지게 하여 죽이기도 하는 심술궂은 신이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여름에 대한 기억은 그 어느 계절보다 선명하고 또렷하다.
청춘의 한 장면을 담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계절은 없다.

영화 <여름의 카메라>는 뜨거운 여름날 첫사랑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성장하게 되는 청춘 영화이다.
2025년 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농심 신라면상을 수상했고, 51호 시애틀국제영화제에서 웨이브메이커 베스트 퓨처 웨이브 장편 부문 심사위원 경쟁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2026년 6월 드디어 한국 관객을 만나며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여름과 카메라
아빠와 함께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한여름’은 초등학생 시절엔 일회용 카메라를 중학생 땐 자동카메라를 거쳐 고등학생이 되면 아빠가 사용하던 수동 카메라를 받기로 한다. 그러나 갑작스레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카메라를 놓고 몸에 맞지도 않는 백팩을 메고 다닌다. 영화 내내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지다가도 자신보다 더 커다란 가방을 지고 다니는 심경은 어떤 심경일까 생각하게 된다. 교복을 입은 여린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빨간 캠핑용 백팩이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여름을 짓누르는 느낌이 든다.
고등학생이 된 여름은 우연히 축구부 에이스 ‘연우’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고, 놓았던 카메라를 들어 다시 사진을 찍게 된다. 여름에게 카메라란 연우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딱히 이유가 없듯 상실감으로 잠긴 시간 속에서도 자유로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연우의 모습만으로도 다시 사진을 찍게 된 본능 말이다.

아빠가 쓰던 카메라에 남은 4장의 귀한 필름 사진을 모두 처음 보는 연우에게 사용한 뒤 여름의 표정은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보인다. 마치 영화의 타이틀이 뜰 때 세상이 뒤집히던 것처럼 연우로 인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여름에게 닥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요즘 필름 카메라에 대한 10대들의 인식은 마치 내가 어릴 적 아빠의 타자기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만 어딘가 낭만으로 가득 차 사용하는 시간 내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이 느껴진다.
감독이 첫사랑을 마주한 여름에게 카메라 중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수동 카메라를 쥐여 준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어렵고 자신이 상상하던 사진을 찍지 못할까 두렵기까지 하지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귀에 울리는 ‘철컥’ 소리가 심장을 관통한다.
여름은 연우에게 이유 없이 빨려 들어간다.

여름은 비밀을 숨길 수 없는 계절
여름은 운동장에서 찍은 연우의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필름을 현상하고, 그 사진들 속에서 고등학생 시절 아빠가 찍은 사진들을 통해 평생 알지 못했던 아빠의 비밀을 보게 된다. 인물사진을 찍지 않는 아빠가 정성스레 찍은 한 남성의 사진이 가득했고, 흔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남자가 운영하고 있는 미용실로 망설임 없이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빠의 옛 연인이 사진 속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감독은 아빠와 딸이 퀴어라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 내에서 사랑을 했던 여름과 연우, 아빠와 옛 연인 마루 모두 남자와 여자의 사랑으로 바뀐다고 가정해도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담백하고 세심한 연출을 통해 퀴어여서 특별한 사랑이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껴지게 된다.
연애를 하는 여름에게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말하는 마루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사랑은 숨겨지지 않는다.

같은 사랑을 해 왔던 마루도 여름의 연애 상담을 들을 때마다 여름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연우가 너무 빛나는 사람이라 무섭다는 여름의 말에 자신도 연우의 아빠가 너무 빛나는 사람이라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사랑 앞에 성장하고 있는 여름을 응원하게 된다.

성장하는 여름
아직 아빠의 텅 빈 방을 정리하지 못하는 엄마 앞에선 하염없이 씩씩한 딸 역할을 자처하면서도 여자친구인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는 온 신경을 써대는 여름의 의지가 너무도 가녀려 보인다. 그런 낯선 자신의 모습을 통해 여름은 여름날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혼란스럽고 불안한 날들을 마주한다.
주인공의 이름과 같은 한여름은 언제나 찬란하지만은 않다. 어느 청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매일 날씨가 화창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더 굳고, 녹음이 더 짙어지듯 계절도 사람도 변화를 통해 성장한다.
<여름의 카메라>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을 통해 관계와 나 자신을 복원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여름은 연우와의 시간을 정리하며 애써 묻어두었던 아빠에 대한 솔직한 마음과 의문도 용기 내어 바라보게 된다.
영화 내내 여름이 자신의 상처를 가리고 묻어두는 것이 성숙한 모습이 아닌 얼마나 다쳤는지 바라보는 것이 비로소 성장하는 길임을 알게 된 것 같아 너무나 안아주고 싶었다. 성장한 여름은 카메라를 내리고 떠나는 연우를 바라본다. 그런 여름의 모습이 너무나 찬란하다.
작은 씨앗이 커다란 옥수수가 되어 자라나 듯 뜨거운 태양과 거센 비바람 속에 자신을 놓지 않고 성장하는 여름의 여름 일기 같은 영화 <여름의 카메라>는 오는 6월 24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