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첫 유럽 여행지는 스페인이었다. 많은 장소를 방문했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구엘 공원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당시 나는 가우디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저 가이드님의 설명을 통해 19~20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건축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의 눈에 비친 구엘 공원의 화려하고 독특한 건축물들은 마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에 등장할 법한 모습으로 다가왔고, 신비롭고도 놀라운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에 돌아온 뒤 가우디와 그의 건축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았지만, 자연과 종교적 요소를 건축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건축가라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에 언젠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완공되면 다시 스페인을 방문해 구엘 저택, 카사 바트요 등 그의 다른 건축물들도 함께 둘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올해 가우디 서거 100주년을 맞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외관이 완성되었고, 그의 삶을 기록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는 오랫동안 가우디의 건축에 관심을 가져온 나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을 끝까지 읽으며, 그리스도교와 성경에 대한 나의 지식 부족이 가우디의 건축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로 인해 그의 작품에 담긴 상징과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왜 종교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으며, 그가 추구했던 삶은 어떤 것이었는 지에 대해 사유해보기에는 매우 좋았다.
타고난 건축가 가우디
그는 어린시절부터 뛰어난 예술적, 기하학적 재능과 더불어 약한 몸으로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나아가 건축학도생으로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며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고 공부하였다고 한다. 이런 끊임없는 탐구는 건축가가 되어서도 나타났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종을 연구하기 위해 악기들을 탐구하는 모습이나 건축에 다양한 재활용 재료를 사용한 이유, 현장 전문가와 관계자들과의 토론과 상의로 더 완벽한 모습의 건축을 만드는 모습까지 그가 왜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처럼 뛰어난 재능과 탐구심, 현재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하려는 노력이 어우러져 가우디를 타고난 건축가이자 예술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가우디는 항상 건물은 그 본래의 목적과 특성에 맞게 건물다워야 하며, 장식 또한 그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위대한교회란 무엇인지, 건축가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건축이 자연과 역사, 색채, 나아가 존재의 이유까지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러한 예술적 탐구모습이 어쩌면 철학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장식은 건물의 기능이나 '특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 - P.54
"우리는 과거를 바탕으로 삼아야만 가치 있는 작품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실수는 피해야 한다." 따라서 혁신이란 "독창적으로 되려는 것"이 아니다. ... "진정한 독창성은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건 창조, 즉 가장 근본적이고 최초인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 P.146
... 가우디는 이론가가 아니라 사유하는 실천가였다. ... - P.221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사람 가우디, 그러나 그가 가진 외로움과 고통
이 책에서 언급하듯이 가우디가 남긴 글은 많지 않다. 애초에 그의 개인적인 기록 자체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화재로 인해 소실되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내면과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우디가 아끼고 사랑했던 가족들과 든든한 후원자였던 구엘, 그리고 그를 지지해 주었던 주교와 친구들의 연이은 죽음이 그의 성격과 작품 세계, 나아가 종교적 신념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당시 겪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으로 남지 않고 사순절의 단식과 같은 자기 절제와 성찰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더욱 깊은 신앙과예술적 표현, 그리고 완벽함을 향한 집념으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건축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완벽주의와 강한 신앙심, 끊임없는 성찰은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를 만들어냈지만, 한편으로는 정작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열정과 고통을 쏟아부은 건축물들 가운데 구엘 성당과 마요르카 성당이 끝내 그가 의도한 모습 그대로 완성되지 못했을 때, 그는 얼마나 큰 상실감과 아쉬움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또한 그가 생전에 자신이 바라던 모습으로 완성한 성당을 단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진정으로 꿈꾸었던 이상적인 성당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다양한 건축들이 어느 시기의 가우디의 삶과 모습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나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건축보다는 인간인 가우디를 오히려 집중적으로 보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끝으로...

가우디의 삶에 늘 고난과 역경, 그리고 고통이 함께했던 것처럼 그의 작품들 또한 어느 하나 쉽게 탄생한 것이 없었다. 그의 마지막 건축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역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재정난과 화재, 코로나19, 지역주민간의 갈등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완공을 향한 긴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가우디가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며 위대한 건축가로 기억되듯, 그가 남긴 마지막 유산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그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교회이자 위대한 건축물로 완성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