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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살아있는 죽음을 바라보다 [미술/전시]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by 박정빈 에디터
2026.06.11 19:10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 소식이 알려진 후로부터 얼리버드를 포함한 티켓이 줄줄이 매진되곤 했다. 현대 미술계의 거장이라고 불릴 만큼 큰 주목을 받는 작가인 만큼 빠르게 방문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둬야만 했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몇 개월간 지니고서야 더 늦기 전에 드디어 전시를 관람하러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가장 성공한 상업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데이미언 허스트’는 영국 출생으로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했다. 1988년 학생 전시회 ‘프리즈’에서 큐레이터를 맡게 되며 런던 미술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죽음과 부패를 표현한 포름알데히드 작품으로 터너상을 받았다. 이후로도 꾸준한 활동을 통해 미술과 과학, 대중문화의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하는 설치 작품, 회화, 조각을 선보이고 있다.

 

단연 그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일 것이다. 포스터에도 큼지막하게 등장하는 상어의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작품을 위한 상어 어획 등 윤리적인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작가의 시간을 과거부터 따라가보며 그 안에서의 기획 의도와 핵심 질문을 찾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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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허스트는 과거 미술을 처음 접한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욕망을 단계적으로 구체화하며 지금까지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자신만의 세상을 밖으로 꺼내려는 다양한 조형 언어적 시도들이 특히 눈에 띄는데, 그것을 ‘콜라주’의 형태로 조합하며 표현한다. 이름(Damien Hirst)의 철자를 재배열해 ‘a Denim Shirt’라고 명명하는가 하면, 옆집에 살던 노인의 죽음 이후 남아 있는 물건들로 재구성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흔적이 작품을 만들어내고 보존되며, 영생한다.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없는 걸까?

 

삶의 모든 장면은 알고 보면 ‘죽음’이다.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에서 찰나의 사진은 사라진 것(부재)을 뜻한다고 언급한 것처럼, 수많은 작품들은 생의 어느 한 순간을 전시하지만 이는 곧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설적으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상어 작품과 함께 볼 수 있는 <천 년>(1990)은 소의 죽음과 파리의 삶을 배치해두며 두 개념이 동시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소의 죽음은 파리에게 영향을 주고, 살아있는 파리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바로 그 역설적이면서도 신선한 사고는 생과 사를 넘어 생명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게 한다. 언젠가 모두의 죽음이 될 수도 있는, 영원히 살아 있는 그 ‘순환’의 모습을 말이다.

 

더 나아가 이를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 의학 기술, 종교적 믿음과도 연결짓는다. 두 키워드의 공통점은 ‘영생’이다. 3부 전시실에 빼곡하게 나열된 의료기기, 알약들은 삶을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이며, 인간의 욕망, 믿음과도 긴밀하게 맞닿아있어 이어지는 어두운 공간에서의 종교적 전시물들과 연계된다. 삶을 상징하는 천사를 죽음의 이미지와 엮거나, 인간의 영혼과 부활을 상징하는 나비를 활용한다. 멀리서 볼 때는 삶일지라도 가까이서 마주한 죽음이 곧 분리되지 않은 하나임을 일러준다.

 

또 다른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파레르곤(Parerg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예술 작품을 뜻하는 에르곤(ergon)과 함께, 이 단어는 ‘프레임’, 혹은 ‘틀’이라는 단어로 번역되며 작품의 외부인 액자를 뜻한다. 칸트는 “액자가 작품의 예술성을 가린다”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그 연장선에서 데리다도 액자는 작품의 외부에 있지만 동시에 그 작품과 더불어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즉, 내부(작품)와 외부(액자)를 분리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개념 없이는 반대편 개념이 성립할 수 없고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듯, 전시 속 죽음이 결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의 해골을 활용한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 프레임 외부에서 사진을 찍던 수많은 관람객이 기억난다. 묘하게 생과 사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데이미언 허스트가 “죽음을 섬뜩한 것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삶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생각한다. 둘은 불가분의 관계다.”라고 남긴 말처럼, 작품과 공간뿐만 아니라 전시장에 방문한 관람객들까지 포괄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의미를 이끌어낸다. 그렇게 하나의 언어로서 그의 작품 세계 전체로, 더 나아가 관람객들에게까지 그 의미를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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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와서는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데이미언 허스트의 현재를 만나볼 수 있다. 마티스의 작은 그림에서 영감받아 제작 중인 <리버 페인팅>은, 보고 있는 풍경을 그림처럼 담아냄과 동시에 추상 표현주의 회화처럼 거대한 크기로 그려볼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시작으로 3년째 연작을 그려내고 있다. 여전히 그는 자신과 우리 전체를 향한 답을 찾고자 한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지라도, 데이미언 허스트는 흐르는 강물처럼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낼 뿐이라고 말한다. 기존 사고를 대신할, 그 이상의 새로운 정답을 찾아가려는 그의 모습에서 전시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의 제목을 다시 곱씹어보고 있다. 어쩌면 살아있는 중요한 무언가가 저 너머의 세계에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사람은 강과 같고, 그 강은 모든 그림의 한가운데로, 그리고 우리 모두를 관통해 흘러간다. 어쩌면 그 강이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죽음일지도”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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