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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예술을 걷는 법 - 파리의 작은 미술관 [도서]

파리의 미술관으로 가는 가장 친절한 길

by 장유정 에디터
2026.06.08 12:03

 

 

2년 전, 교환학생으로서 독일로 떠났을 때의 목표가 있었다. 유럽의 큼직한 나라들을 반드시 모두 둘러보고 오는 것. 당연히 프랑스는 반드시 꼭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였는데, 그중에서도 파리는 조금 더 특별했다. 막연하게 파티시에를 꿈꾸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여러 예술가들이 등장하는 공연을 좋아하기 시작한 20대까지 쭉, 나에게 파리는 꿈과 낭만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빠듯한 일정에 프랑스에 머문 기간은 딱 2박 3일, 혼자 배낭만 챙겨들고 떠나 파리 한 도시만을 둘러보고 왔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뿐이다. 첫째날에는 파리 도심 투어를 따라 개선문부터 몽마르트 언덕, 에펠탑까지를 돌아보았고, 둘째날에는 온종일 루브르 박물관에 틀어박혀 회화관을 전부 둘러보았다.

 

그때는 그렇게 푹 빠져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는데, 지금 돌아보면 조금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다. 예술가들에 대한 지식이 조금 더 많았더라면, 프랑스에 대해 아는 게 더 많았더라면 그때 생생한 장면들이 많이 떠올랐을 텐데. 루브르에서 봤던 수많은 이름 모를 그림들이 더 큰 의미로 남았을텐데. 이런 생각들처럼 말이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책을 만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오랫동안 문학과 미술을 공부해 온 저자 김정화는, ≪파리의 작은 미술관≫에서 아주 편안한 분위기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파리의 작은 미술관] 입체표지.jpg


 

 

파리 토박이 친구와 함께 미술관 산책

 

한 가지 상황을 상상해보자. 파리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낯선 여행지에서 친해진 친구 한 명이 알고 보니 엄청난 예술 애호가였다면 어떨까? 나라면 박학다식한 그 친구에게 좋은 미술관을 추천해주지 않겠냐고 부탁할 거고, 그 친구는 덩달아 신나서 자신이 가이드로 함께하겠다며 앞장설 것이다. 신나서 뒤를 따라 걸으면 그는 눈을 빛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마구 쏟아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느낀 감상이다. 저자는 작품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미술관의 전경까지 모두 전해준다. 장소와 이야기가 얽히고, 예술가의 삶이 그려지고, 그게 묻어나는 작품들을 보게 되는 식이다. 재미없는 역사책이 아니라, 자기 전에 듣는 이야기책처럼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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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첫 챕터를 열자마자 모르는 화가의 이름이 나와서 당황했지만, 이내 아주 친절한 설명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놀랐던 건, 화가의 이름은 낯설지만 등장한 그림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작정 회화관을 돌아다니며 모든 그림을 뚫어져라 봤던 날, 그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분명히 봤던 그림들이었다. 페이지를 보자마자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난히 잔인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그림들,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혼란. 전쟁터의 모습.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걸 그린 걸까? 뭘 표현하고 싶었을까? 의아했지만 갈 길이 멀었으니 일단 넘어갔던 그림들이었다. 그 의문들에 지금에서야 답을 찾는다.

 

 

글을 쓰는 작가는 이해받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나 회화에서는 작품 속에 그려진 인물들의 영혼과 작품을 보는 사람의 정신 사이를 잇는 신비한 다리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그림 속 인물의 겉모양을 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갖는 사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p.35 들라크루아 미술관 / 외젠 들라크루아의 일기

 

 

갈등과 파멸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가 조명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인간으로써 마땅히 가질 수밖에 없는, 공통의 감정이었다.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연민, 안타까움, 혼란 속에서도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의 빛나는 의지와 그에 대한 동경은 모두 그림에 그려지지 않지만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감정이었다.

 

들라크루아의 핵심을 짚어준 저자는 이제 루브르 미술관에서 들라크루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들라크루아의 생애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 그의 인물화부터 개인적인 삶까지, 들라크루아 미술관에는 더 섬세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미술관도 작품의 일부다

 

‘공연은 작품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극장으로 가는 길, 함께 본 사람, 공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호작용들이 모두 포함되는 개념이다.’ 언젠가 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작품도, 그 환경도, 심지어는 그날의 날씨도 모두 작품과 함께 기억에 남으며, 그래서 주변 순간들까지 모두 작품의 일부가 된다고 말이다.

 

책을 읽어보니 미술품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주변이 조금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파리의 미술관들은 대부분 예술가가 직접 거주하거나 작업실로 썼던 공간이기 때문에, 그 주변을 걷는 것 자체가 예술가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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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저자는 미술관 안에만 머물지 않고,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 골목의 풍경, 건물 벽에 붙은 안내판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눈길을 보낸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어렵지도 두렵지도 않게 이끌어주는 아주 친절한 안내서다.

 

누구나 알 법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저자의 시선이 또 하나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 이런 게 안내판에 적힌 문구까지 눈 여겨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지. 너무 유명해서 진부할 법한 이야기에도 함께 픽 웃게 된다.


 

그리고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휘는 모퉁이에 54번지가 나온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살던 집이다. 대문 옆 작은 안내판에는 ‘이 건물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1886년부터 1888년까지 동생 테오의 집에서 살았다’고 적혀 있다. ‘동생과 함께 살았다’가 아니라 ‘동생의 집에서 살았다’라고 써둔 문장의 뉘앙스를 곱씹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p.193 몽마르트르 미술관 / 빛으로 가득 찬 몽마르트르의 반 고흐

 

 

 

낭만과 예술이 숨쉬는 곳, 파리에는 끝이 없다

 

인상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지저분한 지하철역도, 우연찮게 우중충했던 날씨도 괜히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던 파리. 한 번 다녀온 내게도 여전히 파리는 꿈의 도시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살 수 있었다면, 그 후 당신이 일생 동안 어디를 가든 파리는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파리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파리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누구이든 간에 파리로 돌아간다. 파리가 어떻게 변하였든, 혹은 그곳에 가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돌아간다.” 헤밍웨이의 말이다. 자코메티 사후 출판된 판화집의 제목도 ≪끝없는 파리≫다.


그들의 길을 따라 걷는 나의 길 또한 끝이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p.9 들어가면서

 

 

알게 모르게 남아있던 작은 아쉬움도 이 책을 읽으며 채워진 느낌이 든다. 만약 내가 다시 한 번 파리에 가게 된다면, 책의 흐름을 따라 미술관을 여행해보고 싶다. 마치 <아멜리에>에 나온 장면을 따라하느라 크렘브륄레를 주문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책을 들고 미술관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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