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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낭만으로 포장된 폭력, 그 이면을 고발하다 - 연극 '로테/운수' [공연]

고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운수 좋은 날』 속 사랑의 재해석

by 소인정 에디터
2026.06.07 16:32

 

 

뮤지컬 <베르테르>의 넘버들을 즐겨 듣던 때가 있었다. 특히 '어쩌나 이 마음'과 '발길을 뗄 수 없으면'에 담긴 애절한 짝사랑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여운을 안고 원작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펼쳤을 때, 기대와는 다른 찝찝함이 밀려왔다. 넘버에서 느꼈던 아련함 대신 로테의 관점에서 바라본 베르테르의 사랑은 다소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구애에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사랑이 아름답고 숭고한 것으로 해석되는 지점에서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 괴테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고, 로테라는 이름까지 실존 인물에서 따왔다는 사실은 이 불편함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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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문이 가시지 않던 차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한국 근대문학 『운수 좋은 날』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연극 <로테/운수>가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이 작품은 시대와 배경이 전혀 다른 두 고전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여성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호명하며, 하나의 테마로 날카롭게 엮어낸다.


연극 <로테/운수>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수많은 폭력을 마주하다”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스크린에 명시된 '스토킹 범죄와 가정폭력 묘사 포함'이라는 주의 문구는 이 극이 다루고자 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예고한다. 공연은 <로테>와 <운수>라는 두 개의 극이 연이어 상연되는 옴니버스 형식을 띤다.

 

 

 

연극 <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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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극 <로테> 속 주인공 ‘김로테’는 젊은 나이에 대학교 미술사학과 부교수가 될 정도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지만 우울증, 공황장애, 망상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탄탄대로인 커리어,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남자친구, 완벽했던 삶은 1년 전에 시작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린다.


어느 날 로테가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매일 장미꽃 한 송이가 놓이기 시작한다. 남자친구의 깜짝 이벤트가 아닌 제3자의 행동임을 알게 된 로테에게, 가장 안전하게 느껴야 할 집으로의 귀가는 불안에 떠는 일로 바뀐다. 급기야 집 안 현관, 테이블까지 침입하는 장미꽃은 로테의 심리적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로테가 집이 아닌 호텔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범인은 로테의 수업을 듣는 1학년 학생 ‘베르테르’였다. 로테는 집 안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증거를 확보하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미적지근한 반응뿐이다. 경찰과 가해자는 로테의 남자친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과와 사건 처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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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가 스토킹 피해 및 2차 가해로 인해 심적인 불안감을 호소할 때마다 무대 위에 스태프가 등장한다. 새하얀 무대 바닥을 롤러로 밀어 검은색 페인트를 한 줄씩 칠한다. 이는 로테가 설 자리가 심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점차 잠식되어 가는 과정을 훌륭하게 시각화한다. 스토킹 피해로 인한 재판이 진행된 이후에도 로테는 시시때때로 공황에 시달린다. 교내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를 진행하던 중, 급기야 학과장으로부터 ‘이 정도면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라는 권고까지 듣게 된다. 안정을 되찾고자 휴가를 떠나도 불안감과 공황은 사라지지 않는다. 수업 시간 PPT 내용을 찍는 카메라 소리에도 공황을 느끼기까지 한다.


로테는 어떻게든 기존의 삶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자신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 뉴스 조회 수를 위한 “젊은 여교수를 향한 학생의 순정”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되어도, 수업과 학회 참여를 지속한다. 그럼에도 로테를 둘러싼 상황은 로테를 서서히 좁아지는 감옥처럼 죄여온다. 결국 베르테르의 투신자살 소식이 전해졌을 때, 로테는 검은 페인트로 칠해진 좁은 의자 위에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극의 말미, 가해자 베르테르의 일방적인 감정이 담긴 유고집이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미화되어 출간되고, 이를 홍보하는 영상을 마주한 로테의 절망적인 비명과 함께 막이 내린다.

 

 

 

연극 <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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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극 <운수>는 소설 『운수 좋은 날』 속 이름 없던 아내에게 '이운수'라는 가상의 이름과 도예가라는 직업을 부여한다. 남편 김첨지의 머리를 설렁탕 뚝배기로 10회 이상 가격하여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운수는 법정에 선다. 변호인은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의한 정당방위를 주장하지만, 검사는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냉철한 질문들을 쏟아낸다. 피해자는 폭력의 원인보다는 자신의 선택을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운수의 회상 속 진실은 참혹하다. 남편의 통제로 아파도 병원조차 갈 수 없었고, 경제권마저 빼앗겨 자립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남편 본인이 가정폭력을 자진 신고한 적이 있음에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경찰은 서에 찾아온 피해자 운수에게 가해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할 뿐이었다.


무대에는 운수의 억눌린 분노와 죄책감을 대변하는 듯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해당 인물은 남편에 빙의해 폭언을 지껄이고, 무대 벽에 무언가를 휘갈기며 운수를 몰아세운다. 극 내내 ‘말을 해 말을’이라고 적으며 운수를 압박하던 인물은 후반부에 운수를 끌어안으며 연대의 제스처를 취한다.


운수는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나를 지켰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결국 징역 4년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형을 선고받고 빛이 새어 나오는 좁은 문틈으로 퇴장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역설적이게도 묘한 해방감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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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로테/운수>로 완성되는 메시지


 

연극 <로테/운수>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스토킹과 가정폭력 문제를 조명한다. 작고 흰 무대는 두 여성 배우의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가득 메워진다. 대중에게 친숙한 원천 서사를 영리하게 활용함으로써 설명의 시간을 덜어내고,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관객이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두 고전이 현대적 관점에서 어떤 문제적 요소를 안고 있는지 반추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재창조다.


작품은 폭력이 어떻게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침묵하게 만드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스토킹을 '인기'로 치부하는 경찰, 사건을 덮으려는 학과장, 가정폭력 피해자를 단순 살인범으로 몰아붙이는 검사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응이다. 연극 속 두 가해자 남성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정작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악마화되는 것은 살아남은 두 여성 피해자다. 징역형을 받은 운수에게서 오히려 해방감이 느껴지는 비극적 모순은, 가정폭력이 자행되는 ‘집’보다 ‘감옥’이 더 안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뼈아프게 짚어낸다. 가장 편안해야 할 안식처를 빼앗긴 피해자가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서야 폭력이 중단되는 현실, 그리고 가해자가 되지 않은 피해자는 이미 죽음을 맞이한 듯한 현실 속에서 깊은 무력감과 분노가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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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올라왔던 연극이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무대에 오른 이유는 극이 가진 메시지가 여전히 사회에 유효하기 때문이다. 무대 벽면을 빼곡히 채운 ‘말을 해 말을’이라는 문장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는 피해 여성들에게 말할 기회를 제대로 주었는가?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연극이 끝난 뒤에도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침묵을 강요받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말하기’는 여전히 위험한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말하는 용기만이 아니라, 그 말을 끝까지 듣는 사회적 태도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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