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판권이 만료된다는 소식에 급하게 시청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은 ‘소니 보이(sonny boy)’였다. 흔한 SF 애니메이션일 것이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촘촘한 서사가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어렴풋이 이해하고 느끼며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들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끝을 본 소감은 ‘복잡하다’라는 형용사 하나뿐이었다.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고, 마음이 어지럽고 좋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복잡해진 이 상태의 이유는 무엇일까.
1. 이야기의 시작
Sonny Boy는 2021년 7월에 방영된 애니메이션으로, 여름방학 중에 학교에 모인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다른 차원에 표류하게 되며 펼쳐지는 내용을 담았다. 학교 건물과 함께 ‘이 세계’로 표류하게 된 그들은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되기도 한다. 물건을 주문해서 전달받거나 프로그램을 구현하거나 물건의 위치를 뒤바꾸고 중력을 조작하는 등 흔히 이야기하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한 능력의 발현으로 인해 권력이 생기고 위계로 질서를 다진다. 그렇게 시작된 학생회의 독재 체제는 ‘호시’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주인공 나가라와 노조미가 다른 세계로 뛰어들며 그 흐름이 반전된다. 그 과정에서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가라에게 텔레포트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렇게 그를 필두로 다양한 ‘이 세계’를 탐색하며 탈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2. ‘탈출’을 택한 그들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실이 밝혀진다. 다른 세계를 만들고 이동시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나가라의 능력은 가능성을 엿보고 그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었다. 라지다니가 필름을 보았을 때는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나가라가 본 이후에는 변화가 생긴 것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이를 활용하여 원래 세계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고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그들은 그저 ‘복제’된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세계’로 표류한 그들은 ‘현실’에서 실종된 것이 아니라 그저 평행선상의 다른 세계에 존재한 것이다. 현실 세계의 노조미는 죽었고 다른 이들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온 그들이 돌아갈 자리는 없었다. 끊임없는 시도에도 탈출은 계속해서 실패하기만 한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지다니처럼 ‘이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길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지’의 상태라 쉽게 죽지도, 늙지도 않는다. 평범한 인간의 사고에서 벗어난 세계는 환상적이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심지어 초능력을 가질 수 있는 세계라면 라지다니처럼 2000년을 탐험하며 ‘이 세계’에서의 삶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나가라와 미즈호는 돌아가길 택했던 걸까? 제삼자로서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제작자의 의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두 사람이 돌아가길 택한 이유에 관해 고민해 보는 것. 그들이 던지는 주제에 관해 깊은 생각에 빠진다.
1) 신념을 지키고자
단순히 그것이 두 사람의 신념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게 맞는 일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상이 아니었으니 되돌아간다는 선택지가 유일했을 수 있다. 라지다니처럼 그곳에 적응하는 것이 아닌 일상을 택했다. 이 부분에서 라지다니가 전한 이야기를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여러 세계를 누비며 겪었던 것 중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남자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의 일화가 있다. 어쩌면 그들처럼, 혹은 라지다니처럼 그곳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과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나가라와 미즈호는 탈출을 택했다.
그렇게 그들은 주어진 것에 적응하거나 현실에 안주하여 살아가지 않았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계속 도전했고 결국 그들만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그들의 선택은 강한 신념에 의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경험해 보지 못할 흥미로운 것들을 뒤로하고 회색빛 일상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행동에서 단단한 마음을 느꼈다.
2) 목표를 이루고자
신념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저 그곳에 발붙이고 살아갈 이유를 더는 찾을 수 없어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나가라가 의지하고 좋아했던 노조미는 결국 ‘이 세계’에서 죽게 된다. 소중한 이를 잃은 탓에 그곳에서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그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그와 함께 다졌던 의지, 함께 되뇌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서 탈출을 시도하고 노력한 것이 아닐까? 노조미가 사라졌어도 나가라에게는 그와 함께 그렸던 목표가 남아 있었다.
초반부의 나가라는 다소 소극적이고 세상과 삶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인다. 다소 초연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매우 적극적이어야 하고 품이 많이 드는 탈출이라는 목표를 좇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달성 여부가 불분명한 목표다. 기약 없는 일에 매달려야 하는 형세였다. 하지만 나가라는 노조미를 비롯해 친구들과 탈출 방법을 모색하며 계속 부딪히고 성장해 갔다. 어느새 그의 시도가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곳으로 도망치듯 탈출하기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목표 의식을 가지고 노력한 것으로 생각한다.
3. ‘탈출’의 끝에는,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의 탈출에 성공한 나가라와 미즈호는 ‘행복’해질까? 작품은 그렇게 단순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의 신념이 지켜지고 계속 좇던 목표를 이루었음에도 이상적인 행복을 보여주지 않는다. 미즈호는 두고 온 고양이들을 그리워하며 교내에서 다른 세계로 통하던 곳들을 다시금 살펴본다. 나가라는 미즈호를 찾아가 인사하며 ‘이 세계’에서의 일을 공유하고 싶은 내색을 보인다. 돌아온 두 사람 모두 ‘이 세계’에서의 일을 그리워하는 듯 보인다. 그토록 바라던 일상을 되찾은 그들의 모습을 ‘더 낫다’라고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의 일상은 여전히 무채색이며 나아진 것도, 별다른 희망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표류 전보다 더욱 단단해졌다. 웃고 즐거워할 줄 알게 되었고, 대화하며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 보기도 했고, 그것을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해 보기도 했다. 그들을 이루는 세상이 여전히 회색빛, 무채색 세상일지라도, ‘이 세계’에서 나눈 마음을 모두 잊은 상대와 재회하더라도 그들은 조금 더 대수롭지 않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 어쩌면 이러한 그들의 성장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한 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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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라, 노조미, 미즈호, 라지다니, 아사카제를 제외하면 분량이 많지 않은 조연 캐릭터가 많다. 그중에서도 각 서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는 캐릭터도 있으며 등장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인물 혹은 서사도 있다. 그러한 단점도 눈에 띄는 작품이지만, 그만큼 깊게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며 여러 인물과 서사가 등장하고 회차마다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그것을 하나씩 곱씹기에 버거울지 몰라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그것을 곱씹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정리되지 않는 만큼 그들의 성장을 보여주는 과정은 복잡했다. 그러니 그들의 성장을 복잡하게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복잡한 마음속에서는 어느샌가 그들이 잘 살아 나갈 것이란 믿음이 공존했다.
우리는 어떠한 비일상적인 경험을 마주한다고 해도 성장해 갈 것이다. 그것이 시련이든, 모험이든, 그리고 표류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