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그리고 덤벙댐
프랑스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적 근간으로 자주 언급되는 ‘톨레랑스(Tolérance)’는 흔히 ‘관용’이라는 말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타인의 실수를 너그럽게 눈감아주는 심리적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톨레랑스의 본질은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 방식, 혹은 다른 신체적·정신적 특성을 가진 타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 있다. 즉, 타인을 나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교정하려 들지 않는 태도를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용의 가치는 우리 주변의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공간에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네이버 웹툰 <덤벙덤벙 내 인생>은 성인 ADHD를 진단받은 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관리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만화 속에서 작가는 이러한 고백을 한다. ‘자신이 직접 덤벙대 보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덤벙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조금 더 관대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이다. 이는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의 경험이 오히려 타인의 실수를 포용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의 글에서는 이 <덤벙덤벙 내 인생>이란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는 관용과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시스템에서 벗어난다는 것
현대 사회가 촘촘하게 규정해 놓은 이른바 ‘정상성’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개인에게 대단히 두려운 일이다.
오늘날의 사회 시스템은 정확하고 신속한 효율성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 정교한 톱니바퀴 속에서 남들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거나, 주의력이 부족해 자주 실수하는 성향은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규격화된 사회에서 기준 미달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오직 그 궤도 밖으로 밀려나 본 사람만이 그 구조적 두려움을 온전히 이해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성향이나 인지적 특성은 그 자체로 현상일 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왼손잡이로 태어난 것이 틀린 것이 아니듯, 조금 덤벙대거나 한 곳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성향 역시 본질적으로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기질 중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이 자본을 축적하고 대중을 관리하는 편의를 위해, 특정 행동 양식만을 정답으로 정해두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들을 '비정상'이나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는 점에 있다.
다양성과 ‘덤벙대는 것’의 가치
사회의 관용은 바로 이 지점, 즉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정상성의 기준이 사실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편의주의적 결과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때의 관용은 여유가 있는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시혜적인 시선이 아니다. "내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 너의 덤벙댐을 이해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또 다른 권력 구조를 낳을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존중은 지금의 주류 시스템 혹은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언제든 뒤집히고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생태계의 원리를 보면 하나의 품종만 빽빽하게 심어놓은 농지는 작은 기후 변화나 단 하나의 바이러스에도 쉽게 전멸하고 만다. 반면 다양한 생물이 얽혀 사는 숲은 어떤 위기가 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다양성은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필수 생존 조건이다. 지금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나 효율성의 기준과 조금 다른 모양새를 지니고 있더라도, 서투르고 규칙에서 어긋난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타인의 서투름을 용인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모습대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