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검사 결과를 듣고 나오다 역 주변을 배회했다. 정확히는 지하도로 가려다 백화점 쪽으로 진입했고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가는 쪽을 따라가다 고속터미널로 왔다. 캐리어를 끌거나 배낭을 맨 사람들, 이제 막 버스에서 내려 밥집을 찾거나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사는 사람들.
그 중 대게는 플랫폼 앞 의자에 줄지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속 몸을 틀며 좌우를 살폈다.
이십 년 전 쯤이었을 것이다. 처음 고속터미널 버스에 몸을 실었던 때가 떠올랐다. 첫 백일장을 지방으로 갔고 이후로도 나는 여러번 버스를 타고 다녔다.
새벽같이 집을 나와 고속버스 창가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낯선 도시로 향하던 시간들이 조각이 되어 떠다닌다.
처음엔 모든게 낯설고 무서웠다. 엄마랑 같이 목포를 간 적이 있는데 다음날 대회를 위해 근처에 모텔을 잡고 낯선 식당에서 밥을먹고 일찍 잠이들었었다.
백일장을 다니며 글을 쓴다는 느낌보다는 여행을 간다는 기분 혹은 함께 글을 쓰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서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떤 가방을 들지 혼자 고민하기도 했었다.
가끔은 혼자였고, 가끔은 친구들과 함께였다. 당시 나는 세상이 아주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고 믿었다. 고속버스를 탄다는 건 단순히 지역을 이동하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더 큰 사람이 되러가는 일이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던 사람들, 휴게소 우동냄새, 손에 꼭 쥐고 있던 원고지와 펜.
모든 장면이 고속터미널이라는 공간에 엮여 있었다. 그러니 고속터미널은 비단 오고가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만남과 헤어짐의 교차로다.
스무살 초반까지 사겼던 남자친구는 지방으로 대학교를 다녀 일주일에 한번은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은 그와 함께 가던 식당도 카페도 가물가물하지만 고속터미널에서 기다리던 기억은 선명하다. 보면 반갑고 가면 아쉬웠던 내 한 시절들이 오고갔던 공간, 그래서 생경한 듯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던 것일테지.
영동 고속터미널역은 낡은 건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깔끔하게 리모델링 되어 있었다. 식당도 바뀌었고, 간판도 더 세련돼졌다. 그런데 공간은 변하지 않아서 옛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 잠시 멈춰서 있는 사람들의 공기,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과 무관심한 모습들까지.
고속터미널을 걷는 동안 나는 계속 열여덟의 나와 마주쳤다. 무언가를 꼭 이루고 싶던 아이, 세상이 아직 낯설고 커 보였던 사람, 어디론가 계속 가고 싶어 하던 마음.
지금의 나는 나이도 많고 제대로 이룬 것도 없다. 꿈보다 현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건강과 생활비를 계산하며 살아가는 나이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 고속터미널에 와 보니 신기하게도 과거와 현재의 내가 동시에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경계의 장소이기도 하다. 어딘가로 떠나기 직전의 사람과 돌아온 사람이 함께 머무는 곳. 설렘과 피로, 기대와 설렘 체념이 동시에 뒤섞여있다.
예전에는 저 행선지들이 내 미래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지나온 시간의 이름처럼 보였다. 그리고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삶도 결국 고속터미널과 같은 어떤 역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고 우리는 그 사이에 잠시 멈춰 서 있다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