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붉은 벽돌 [공간]

푸른 하늘과 초록 나무 그리고 붉은 벽돌
글 입력 2022.10.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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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버스를 타고 대학로를 가곤 한다. 처음엔 단순히 뮤지컬이나 연극 따위만을 목적으로한 방문이었다. 내가 그곳에 상주해야 하는 시간과 목적이 뚜렷했기에 그곳의 다른 건 관심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다가 익숙한 조각상이 너머로 보이면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리고 공연장을 향해  직진했다. 마치 불도저처럼 말이다.  대학로는 나에게 무색무취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공연을 보는 횟수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그 주변의 곳곳에서 머물러야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학로의 향취를 보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목적'에만 의존한 방문을 뛰어넘게 된 것이다.


그 향취에 취해 요즘은 정신 차리면 마로니에 공원이나 근처 카페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할 일이나 사는 곳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곳임에도 오는 것 자체만으로 안정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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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그렇게 느낀 부분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바로 보이는 붉은 벽돌이다. 파란 하늘과 초록 나무와 함께하는 붉은 벽돌은 대학로의 상징이라고 여겨질 만큼 상당한 어울림과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나는 비로소 이 조합으로부터 따뜻함을 느낀다.


도시에서 이러한 하늘과 식물 그리고 건물 간의 아름다운 조화를 본 기억이 거의 없는 듯하다. 온통 회색빛인 고층 건물들에 파란 하늘과 초록 나무들의 그 빛깔마저 거대한 건물들에 빼앗긴 것처럼, 나에게 생기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회색빛의 높게 솟아오른 건물들을 도시 한가운데에서 보고있자 하면 절로 위축되고 금방이라도 건물의 파편들이 나에게 쏟아져 내릴 것 같아서 이제 더이상 건물을 고개 들어 위로 올려다보지도 않는다. 어린 시절, 마냥 멋있고 웅장하게만 보였던 그 높은 건물들은 이제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꾸역꾸역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닭장 같은 회색빛 오피스텔을 나와 회색빛 학교에 들어가 수업을 들은 후 찾아가는 다양한 색이 어우러져있는 대학로는 나에게 오아시스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붉은 벽돌의 저층의 건물들이 주는 감싸는 듯한 아늑함에 벤츠에 앉아 부는 바람은 맞고 있으면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곳 역시 도시 한가운데이지만 그곳의 색이 그것을 잊게 해준다. 그것은 바로 붉은 벽돌이 내게 주는 힘이었다.


 

 

역시 완벽한 벽돌



벽돌은 세계 4대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강 등에 퇴적된 진흙더미를 손을 빚어 만들어 사용하였던 벽돌은  콜로세움, 만리장성 등 수천 년이 지난 현대에 이르러서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미 수천 년 전에서부터 곳곳에 벽돌을 사용했었던 서양과는 다르게, 한국의 벽돌 사용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라고 한다. 벽돌은 여러 사건과 사고에 의해 훼손된 건축물들을 쉽고 저렴하게 복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데에 탁월한 건축 자재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우리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그 시절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하기만 했던 벽돌은 안타깝게도 다양한 건축 자재들의 출연으로 한동안 우리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있었던 것 같다. 그저 조금 오래된 동네의 작은 주택단지에서만 간간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벽돌' 다시 각광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거리를 거닐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벽돌 집과 벽돌 카페로 요즘 그에 대한 관심의 척도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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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벽돌들은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어 질감, 색상 등 다방면으로 많은 선택지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며 그로 인해 때로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때로는 뉴트로의 분위기를, 때로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준다. 한마디로 벽돌 자체가 트랜디해진 것이다.


평생을 도시에 살아 채도 없는 건물들에 파묻혀 살아서 그런지 그런 벽돌 건물들을 보면 그냥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 정도로 무척이나 반갑다. 내가 좋아하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붉은 벽돌을 활용해 정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내기도 하고 다른 색을 섞어 생경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기도 한 건물들을 보면 벽돌을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또한 벽돌은 천연재료인  흙의 불순물을 걸러낸 후 1200도 이상의 뜨거운 열에 구워 사용된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유해 물질 없이 변형과 오염에도 강해 널리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 환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지금 너무나도 적절한 자재인 것 같아, 나의 탁월한 안목에 확신이 생긴다. (웃음)

 

 

 

붉은 벽돌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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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딱딱한 아파트와 오피스텔에 살아 그런지, 어느덧 나의 꿈은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독립하는 것이 되었다. 닭장 속 닭과 같이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얼굴도 모르는 이웃과의 색 없는 인연이 아닌, 마주 보며 인사할 수 있는 색 있는 인연이 있는 곳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벽돌, 그것도 꼭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곳에서 나의 독립된 삶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요즘이다. 이러한 다짐이 현실이 되기 전까지, 아마 대학로가 그 자리를 대신해 줄 것 같다.


 

p.s. 무던한 도심 속에서 다채로이 숨통을 트이게 하고 싶은 날은 푸른 하늘과 초록 나무 그리고 붉은 벽돌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는 대학로 벤츠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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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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