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버스를 타고 서울을 여행 중에 있습니다 [공간]

낯선 이방인에서 어엿한 구성원으로, 나의 서울생활기
글 입력 2022.12.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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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나는 지하철을 참 좋아했다.

 

내가 직접 느끼는 것들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응축될 빛 바랜 노을 빛의 색감과 차가운 듯 따스했던 어떤 날들의 온도, 먼지 쌓인 장롱 속 냄새처럼 오래된 것들에서만 풍기는 퀴퀴하지만 그리운 그런 향.

 

문득 떠올리니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린 순수한 나의 어린시절의 이야기이다.

 

유년기의 내게 평범한 일상의 무대였던 그 시절의 우리 동네와 비록 어렴풋한 사진 몇 조각에 불과하지만 행복했을 추억 속의 여행지들, 그리고 TV 만화 주인공들이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있을 거라 믿었던 막연한 상상 속의 공간들까지.

 

현실적임을 논하자면 지극히 소소하지만, 그 두텁고 견고한 렌즈에는 미처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무한히 확장되던 그 공간이 나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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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무한한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 건 내 나이가 두 자리 수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서울 땅을 디뎠던 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나의 인식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TV나 책에서 보던 것만으로는 전부 와 닿지 않는 다소 벅찬 규모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커다란 고층 빌딩들은 너무나 아찔했고, 내륙의 공기는 해풍에 길들여진 시골 소녀에게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미지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설렘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터미널을 벗어나 지하철 역사로 들어서는 순간 나의 세상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느리다고 정평이 난 충청도의 어느 소도시에 사는,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와도 그리 친하지 않았던 내게 지하철이란 정말 별세계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낯선 지명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노선도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단 한장으로 요약하고 있었고, 신속하고 정확한 체계는 약간의 헤맴은 애교로 넘길 수 있을 만큼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로 이동시켜 주었다.

 

그렇게 지하철은 내게 서울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로 있던 또 다른 서울 여행들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서울이라고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서울에 대한 동경은 지하철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과 지도 어플이 없었던 시절 나에게 ‘서울 사람’의 이미지는 지하철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지하철에 타는 것은 매번 신나는 이벤트였지만,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출발과 환승을 거쳐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노선도를 끊임없이 의식 했어야 했던 내게, 지하철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승객들은 진정한 서울인(人)처럼 느껴지곤 했다.

 

시골 출신들이 으레 그렇듯, 상경의 꿈을 가지고 있던 내게 지하철은 언제나 환상의 공간이었다. 진심으로 나는 지하철에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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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로서의 서울과 생활 공간으로서의 서울은 전혀 달랐다.

 

그토록 기대했던 ‘서울살이’였지만, 막상 피부로 와 닿게 되자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언제나 처음은 내게 어려움 투성이였지만, 서울이라는 공간에 정을 붙이는 데는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생에 처음 서울의 공기를 마셨을 때와 같이 고층 빌딩숲과 수많은 인파 속에 홀로 남겨졌을 때, 스쳐 지나가는 낯선 풍경들이 내게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항상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수많은 하루들을 버텨내야 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야 할 때마다 문득 외로움이 느껴졌다. 미지의 공간에서 헤매는 순간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크고 작은 도전들을 꺼리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조금 우습다고 느껴지지만, 버스를 타는 것이 꽤나 큰 도전으로 느껴졌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기에 방향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시간을 맞추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나의 일상을 지배했다.

 

더 이상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고, 지하철을 타는 일도 그다지 설레지 않았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지하철은 안도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혹시나 길을 잃더라도 지하철만 있으면 최소한 돌아가는 데는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는 조금 벗어났지만, 점차 나는 지하철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서울인(人)’이 될 수는 없었다. 그 공간에 속해 있는 나의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했다. 기숙사는 하루 끝에 내가 돌아갈 곳이 되어주었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집이 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어도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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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여파로 인한 비대면 강의로 중단되었던 서울살이가 거의 2년 반 만에 재개되었다. 동생의 상경과 함께 자취 생활이 시작되면서, 서울은 이제 정주하는 공간이 되었다. 어떠한 공간을 책임진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낯선 도시에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안식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행동 반경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지하철만으로는 미처 닿지 않는 장소까지 접근하기 위해서는 버스 이용이 불가피했다. 몇 년 사이 익숙해진 지도 어플리케이션은 ‘스마트’라는 명성에 걸맞게 최단거리와 추천경로를 똑똑하게 제안했고, 괜한 편견과는 달리 버스는 때론 지하철보다 훨씬 안락하고 편리했다.

 

그것만이 변화의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서울 버스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서울이라는 공간도 덜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서울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완벽한 이방인도 완전한 구성원도 아닌 그 애매한 중간 어딘가에 내가 있었고, 여전히 내게는 지하철이 훨씬 익숙했다.

 

예전과 다름없이 지하철을 타고 있으면 ‘서울’이라는 공간의 존재감이 새삼스레 피부로 와 닿았지만, 더 이상 지하철은 설레거나 즐거운 공간은 전혀 아니었다.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 안은 때론 숨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팍팍한 도시 생활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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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은 꽤나 의외의 공간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순간에 이루어졌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막히는 도로 사정은 버스를 국도로 인도했다. 평소라면 늘어난 소요 시간에 투정 어린 잠에 들었겠지만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을까,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칙칙한 고속도로의 회색 빛과는 다른 노랗고 푸른 색감의 아늑하고 정겨운 시골 전경들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답게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픈 곳도 없는데 괜스레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 도시 생활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도착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정작 가는 길목에 놓인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내 삶 역시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르겠다. 20대의 반절이 지나는 동안 목적지도 모르면서 항상 초조했다.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방향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기분이 들었고, 빠르게 나를 지나쳐 가는 또래들을 보며 정체되어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삶은 남들보다 천천히 가는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속도로 향하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잘 도착하는 것이며, 설령 그 길목에 내가 남긴 모든 발자국들이 본래의 방향을 상실하더라도 무언가 흔적을 남겼다는 그 자체로 의미 있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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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좋아한다.

 

빠른 이동이 필요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시간이 보다 소요되거나 조금 돌아가더라도 버스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일상의 작은 취미가 되었다.

 

서울이라고 전부 화려하지도 않으며,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기에 그리 낯설어 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닫는 중이다.

 

나의 마음가짐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지하철보다 버스에서 사람냄새를 많이 느낀다. 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자신만의 세계로 각자 분절되어 있는 듯한 지하철과 달리, 버스를 타고 있으면 낯설지만 묘한 친밀감이 드는 누군가와 진정으로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가는 버스가 보여주는 풍경 역시 인간미가 느껴지기에 좋다.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건물들과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만들어 내는 거리. 그리고 멀리서는 항상 똑같은 듯 보이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매일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풍경까지.

 

살아내야 하는 곳이 아닌 살아 있는 서울을 마주하며, 비로소 나는 진정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에 소속되는 중이다.

 

여행의 묘미가 설레는 감정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나는 서울을 여행 중인 것 같다. 다만 지하철에서 느꼈던 설렘이 마냥 새롭기만 한 동경에서 비롯됐다면, 버스에서 느끼는 설렘은 익숙함에서 오는 잔잔함 떨림에 가까울 것이다.

 

요즘 나는 버스를 타고 일상을 여행 중에 있다. 이와 함께 나의 세상 역시 넓어짐과 동시에 나날이 깊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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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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