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에서 이함캠퍼스 소장 폴란드 포스터 컬렉션 전시, 〈침묵, 그 고요한 외침〉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의 대규모 폴란드 포스터전은 2024년 11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양평에 소재한 이함캠퍼스에서 열린 이후 처음이다. 해당 전시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활동한 ‘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빅토르 고르카, 〈인간 오케스트라〉
〈인간 오케스트라〉는 현대무용 극단을 운영하는 독재자와 같은 단장, 그리고 단장의 통제를 벗어나 몰래 사랑을 나누는 단원의 이야기다. …… 이는 1970년대 경제가 안 좋아져 더욱 억압적으로 변한 동유럽 사회를 닮았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통제와 억압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전시의 첫 부분부터 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빅토르 고르카’의 그림이 눈에 띄면서, 동유럽 사회주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프라하의 봄 이전 동유럽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낀 후 처음이었다.
폴란드라는 나라의 미술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듦과 동시에,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지닌 곳에서 억압과 검열 틈에 자라난 자유롭고 독특한 작품들이라 상상하니 한국인의 마음 역시 울리는 면이 있었다.
〈인간 오케스트라〉, 1970
작품 설명에서, 프랑스의 오리지널 포스터는 ‘젊고 아름다운 무용수들을 남자들에게서 보호하고 통제하는 단장의 다양한 얼굴을 부각하고 있다’라고 했다. 상단 포스터를 보면 권력이 느껴지는 남성 단장의 얼굴을 확대하여 희화화한 이미지가 중앙에 존재하고, 춤을 추는 여성들의 모습은 하단에 작게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반면 빅토르 고르카가 디자인한 포스터는 ‘절박하게 자유를 꿈꾸는 무용수, 또는 폴란드인을 표현하고 있다’라고 설명되고 있다. 사진 콜라주가 아닌 회화적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은유적인 표현을 극대화하며, 코미디보다는 예술 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강렬한 색의 무용수가 눈에 띈다.
중심인물로 단장이 아닌 무용수를 택한 점 역시 인상적이다. ‘독재자와 같은 단장’에 대한 풍자적 요소는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작품 설명 외에 별다른 배경지식은 없지만, 혹시 검열이 존재했을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프란치세크 스타로비에이스키, 〈유색 스타킹〉
많은 포스터 중 나를 끌어당긴 것은 프란치세크 스타로비에이스키의 〈유색 스타킹〉이었다.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처럼 배우의 명성을 보여주려는 용도의 이미지가 아닌 익명의 얼굴이며, 그림으로서, 또 포스터 소재로서의 얼굴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파스텔 내지 콩테와 같은 소재를 통해 스케치한 것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언뜻 부드럽고 포근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슬픔을 표현하는 파란색 배경과 소녀의 눈물이 그녀의 감정을 함께 느끼게 하고, 마지막으로 상단에 그려져 있는 ‘유색 스타킹’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본 글의 섬네일 이미지로 해당 포스터를 사용했다. 감정에 호소하는 인물은 확실히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면이 있지 않은가? 혹여 그림이 궁금해서 들어왔다면, 포스터가 포스터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제임스 몽고메리 플래그, 〈미합중국군은 당신을 원한다〉
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그림은 생소하더라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엉클 샘’이 그려진 신병 모집 포스터는 본 적 있을 것이다. 격동의 시기 폴란드에도 이런 포스터가 많았다. 게다가 신병을 모집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전쟁 프로파간다를 끊임없이 전파하는 등 다수의 선전물이 포함되었다.
포스터라는 매체가 시민의 가까이에 존재하는 만큼, 시민들은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폰을 보고 걷지 않고 앞을 보고 걸었던 1950년대의 사람들은 길의 선전물과 같은 포스터를 더 주체적으로 바라봤을 테니.
폴란드 - 소비에트 전쟁 프로파간다 포스터
알고 관람하면 더 재미있는 한 가지 포인트를 잡자면, 전시관에서 쇼팽의 피아노곡이 흐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쇼팽은 폴란드의 대표적인 음악가이자 독립운동에도 힘을 실었던 독립운동가였다. 내가 갔을때는 스케르초와 왈츠를 들을 수 있었는데, 전시의 완성도를 위해 음악까지 신경 썼구나 싶었다.
폴란드라는 국가의 특성상 한국 검색 자료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포스터를 마치 거대한 도록을 펼친 것 같은 설명과 함께할 수 있었다. 전문 도슨트와 함께하는 ‘특별 전시 해설 프로그램’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있다.
폴란드 포스터전, 〈침묵, 그 고요한 외침〉은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6월 21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